내가 아프리카에서 9년을 살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마 나 역시 누군가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흔히 ‘미지의 땅’(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살았다고 말한다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잠비아에서 20대를 마무리 했고, 30대의 절반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직업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활동가로 시작했다가 회사원이 되었고, 이후에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예술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9년이라는 잠비아에서의 시간은 삶에 아주 풍성한 경험을 선물해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이었던 2019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 2019》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잠비아의 이웃 국가인 말라위의 한 마을의 어린아이가 가뭄과 기근 속에서 바람으로 전기를 충전하는 풍차를 만들고, 그것이 공동체의 생존을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내가 충격을 받은 지점은 기근을 해결한 어린아이의 천재적인 기발함이나 영웅적인 서사가 아닌, 내가 몇 년이라는 시간을 마을에서 살았음에도 볼 수 없었던 ‘무언가’ 때문이었다. 그 무언가는 바로 ‘옥수수’ 였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주 밭에 나가 농사를 짓기도 했고, 옥수수를 다듬고 손질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면서 몇 년을 살았다. 그런데 왜 나는 옥수수 농사가 단순한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치안, 나아가 정치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영화에서 흉년으로 인한 기근 때문에 일어났던 정치적인 다툼, 그리고 목숨을 내놓고 싸우러 가는 군중들의 모습에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삶의 치열함이 투영되었다. 그리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들이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과연 이를 뒤늦게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잠비아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들을 다시 의심하고 되돌아 볼 수 있었을까? 나는 이 글에서 나의 무지함이나 경험의 얕음을 이야기하기보다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직접 경험하면,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경험은 생각보다 불완전하다. 내가 어떤 장소에 있었다고 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며, 어떤 사건을 겪었다고 해서 그 사건의 의미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경험은 언제나 내가 서 있던 시간과 공간, 몸의 위치, 언어, 문화, 기억을 통과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내가 경험했다고 믿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전체가 아니라, 나의 위치와 감각을 통해 해석되고 번역된 일부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역시 언제나 특정한 위치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은 결코 순수한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 있었고 어떤 몸과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따라 구성된다. 그래서 경험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부족했다는 고백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이해해온 방식을 돌아보는 일이 된다.
이 지점에서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들(Situated Knowledges), 1988」을 떠올릴 수 있다. 해러웨이는 모든 지식이 특정한 몸과 역사, 문화적 위치 안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눈으로 세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고 믿는 객관성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객관성은 자신의 위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예술이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보이지 않던 감각을 드러내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매개체로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이 경험의 한계를 완전히 없애거나 세계에 대한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기억, 이미지, 감각, 언어를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은 내가 이미 보았지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잠비아의 시간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계기였고, 내가 마을에서 보았던 주민들의 일상 안에 생존, 치안, 정치의 문제가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감각하게 해주었다.
나는 이 성찰 이후, 그 깨달음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의 영상을 촬영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는 부끄러울 만큼 무지했던 어린 나 자신에 대한 독백이기도 했다. 동시에 나와 그곳의 사람들이 함께 쌓아왔던 몇 년의 시간이, 10년도 훌쩍 지난 지금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사색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나는 일상적인 장소 안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굳이 말해지지 않는 감각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관심이라기보다 의심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감각들, 그리고 그 감각을 통해 이해해왔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과연 얼마나 온전한 것이었는지 되묻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믿고 있던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입장을 취하고, 때로는 설득하는 방식으로 세계에 개입하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사랑과 평화에 대해 직관적으로 말하고, 그것을 이미지와 기호를 통해 풀어내는 일이 나의 작업이라고 믿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경험들은 내가 예술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예술은 반드시 어떤 이상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더 원초적인 감각의 자리, 말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 불안과 직감, 그리고 일상 속에 잠재된 균열을 감지하는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믿음을 너무 쉽게 ‘이상’이라는 말로 포장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평화라는 단어가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존재할 때, 그것은 현실의 긴장과 불안, 그리고 우리가 매일 몸으로 감지하는 미세한 위험들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점차 거대한 구호보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감각들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보고, 감각과 사색을 통해 그것을 애써 표현하는 일이 작업의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나는 이른바 ‘둠스크롤링’에 빠져 있었다. 둠스크롤링은 전쟁, 재난, 참사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와 정보를 끝없이 스크롤하며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당시 유튜브에는 우크라이나 곳곳에 설치된 공공 CCTV 화면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많았다. 나는 밤새도록 침대에 누워 그 화면들을 바라보았는데, 카메라는 멀리 떨어진 도시의 거리, 광장, 건물, 어두운 밤의 불빛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그 정적 때문에 오히려 그곳에 잠재된 위험과 긴장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밤새도록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는 나의 행동을 애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애인은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듯 한국도 결코 안전한 장소는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도 전쟁의 가능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문득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전쟁이 나면 우리 어디서 만날래?”
나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애인의 집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 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한티역 2번 출구에서 만나”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에도 이미 전쟁, 재난, 위험에 대한 감각이 다양한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은 뉴스 화면 속 먼 나라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주 사소한 대화 속에서, 익숙한 지하철역의 출구 이름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정하는 만남의 장소 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한티역 2번 출구에서 만나》라는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하철은 평소에 도시의 교통수단이지만, 특정한 상황에는 대피 공간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이동하고 약속을 정하며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어느 순간 생존을 위한 장소로 전환될 때, 우리가 평화롭다고 믿어온 공간의 의미도 함께 바뀐다. 평화의 공간은 위기의 순간 다른 의미로 전환될 수 있고,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일상 역시 이미 보이지 않는 긴장과 불안의 감각을 품고 있다.
결국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거대한 전쟁의 이미지 자체라기보다, ‘전쟁과 재난이 일상의 표면 아래에 어떤 방식으로 잠재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평화로운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그 평화는 언제나 깨질 수 있는 가능성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예술은 어쩌면 그 가능성을 과장된 구호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감각하고 있었지만 미처 말하지 않았던 불안, 약속, 장소, 기억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2023, 이랜드 갤러리)>


요요진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지만 자꾸 본분을 지키지 않고 설치나 사운드, AI등을 건드리며 작업하고 있다. 유네스코 파견을 계기로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생활하며 예술 활동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매일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꿋꿋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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