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더슬래시

불안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정감을 찾아갈 수 있을까? / 홍주리

2024.12.31 | 조회 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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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불안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집도, 학교도, 직장도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나는 안정감을 찾기 위해 멀리멀리 떠나기로 했다. 엄마의 고향이자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 섬에서 살기로 서른 살 무렵 마음먹었다. 

제주에 내려가니 엄마의 삶이 더 잘 보였다. 엄마는 5남매 중 막내였는데, 큰이모, 작은이모, 큰외삼촌, 작은외삼촌이 있었다. 큰이모, 작은이모, 큰외삼촌 집에서는 모두 집이나 방에 틀어박혀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외사촌오빠들이 한 명씩 있었다. 반대로 일찍부터 집에서 나와 독립해서 자기 가정을 이룬 외사촌언니, 오빠들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원가족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내가 자란 집은 무척 엄한 분위기였다. 단 한시도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늦게 귀가를 한다거나 방이 조금이라도 어질러져 있으면 종아리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으며 폭언을 들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가출을 하는 꿈을 꿨다. 반대로 5살 아래의 남동생은, 조금이라도 자기 몸에 회초리가 닿을 것 같으면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보다 훨씬 크게 혼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느라 잘못을 빌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동생은 나보다 빨리 잘못을 인정했고 나보다 덜 맞고 덜 혼났다. 

그래서 나와 동생의 집에 대한 기억은 다르다. 동생은 집보다 바깥이 더 무서웠고 나는 집이 너무 무서워서 바깥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4년 전인 2019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은 집으로 틀어박혔고 나는 오히려 밖으로 더 나돌아다녔다. 이런저런 시민사회단체 활동들을 하면서도, 내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냥 나와 내 가족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는다거나 직면하려 하지 않았다. 

2021년쯤 코로나와 장기적인 경기침체 상황을 겪으며 집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이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고, 이 문제가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나의 외가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건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큰이모에게 자기 위로 두 명의 형제가 더 있었지만 모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60년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에서 체포되어 결국 오무라수용소에서 병사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나와 내 가족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사실은 더 커다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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