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더소스랩 소장 이안 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당 20만원 짜리 스시 오마카세 예약은 누군가에게는 "스강신청"(학기 초 수강신청 만큼이나 어렵다해서 붙여진) 이라고 불릴만큼 예약이 쉽지 않았습니다. 예약이 가능하다면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었죠.
일식셰프가 건네주는 섬세한 미식의 향연과 대접받는 분위기,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까지 올릴 사진 몇 장까지. 이 2시간 남짓한 미식경험에 20만원은 합리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오마카세를 갔던 다음 날, 친구가 2만 원짜리 미술전시를 보러 가자고 하자 잠시 주저합니다.
"입장료가 2만 원이나 해? 영화보다 비싸네...?" 라고 말이죠.
우리는 왜 '사라지는 것'에는 관대하고, '남는 것'에는 인색할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소비의 아이러니를 미학적 렌즈로 들여다봅니다.
1. 접시 위에 놓인 ‘쾌적함’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감각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쾌적함(The Agreeable)'과, 욕구와 무관하게 대상을 관조할 때 느끼는 '아름다움(The Beautiful)'을 구분했습니다.

20만 원짜리 오마카세는 완벽한 '쾌적'의 세계입니다. 자본은 우리의 미각, 후각, 그리고 대접받는다는 촉각적 쾌락을 극대화하여 즉각적인 만족을 줍니다. 이것은 동물적 욕구의 세련된 충족입니다. 자본주의 미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너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것이 곧 행복이다."
반면 미술관은 '아름다움'을 다루지만, 칸트가 말한 미적체험은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을 전제로 합니다. 당장 내 배를 불리거나 내 삶에 실용적 이득을 주지 않아도, 그 대상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능력. 현대인에게 2만 원이 아까운 이유는, 우리가 이 '무관심한 관조'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실용적 목적(포만감)이 없는 대상에게 지갑을 여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죠.
2. '매끄러움'의 사회와 '저항'하는 예술
철학자 한병철은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현대사회를 '매끄러움(The Smooth)'을 숭배하는 사회라 정의했습니다. 스마트폰의 액정처럼, 제모된 피부와 같이, 걸리는 것 없이 매끄러움에 대한 소비를 선호합니다.

오마카세는 매끄럽습니다. 셰프는 가시를 발라내고, 가장 씹기 좋은 식감으로 앞에 놓인 접시에 한 점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저항 없이 그저 주는대로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부정성이 제거된 긍정의 과잉, 그것이 오마카세가 주는 안락함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좋은 예술작품이란 본질적으로 나에게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거칠고, 뾰족하며, 저항하죠. 2만 원을 내고 들어간 전시장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질문, 이해되지 않는 형상, 응시하기 힘든 고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예술은 매끄러운 감상이 아니라 우리를 멈춰 세우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매끄러운 소비'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나의 사유를 가로막고 찔러오는 예술은 불편한 비용일 뿐입니다. 아무도 돈을 내고 고뇌를 사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3. 소비되는 기호 vs 해석해야 하는 알레고리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현대의 소비는 사물이 아닌 '기호(Symbol)'의 소비입니다. 기호는 형태와 의미가 달라붙어 있어서 직관적이고 일시적 입니다. (하트모양을 보면 사랑을 의미하죠) 오마카세 20만 원은 '미식의 정점'이라는 기호를 사는 행위입니다. 이 기호는 명확하고 교환 가치가 높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순간, 그 가치는 '부러움'으로 즉각 환전됩니다.
반면 미술관의 작품들은 명확한 기호가 아닌, 숨겨진 의미를 품은 '알레고리(Allegory)'에 가깝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해독되지 않습니다. 2만 원의 티켓값은 작품을 보는 비용이 아니라, 그 앞에서 내가 스스로 의미를 길어 올려야 하는 '해석의 권리'를 사는 비용입니다.

위의 작품을 볼까요? 기호의 세계로 보자면 비너스와 큐피드가 키스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알레고리의 세계로 보자면, 무서운 인물들이 숨어 있죠.
- 시간(노인): 오른쪽 위에서 이 모든 쾌락이 순간임을 폭로하며 커튼을 걷어냅니다.
- 기만(소녀): 뒤에 있는 소녀는 얼굴은 예쁘지만 몸은 뱀이고, 손은 뒤집혀 있습니다. 쾌락의 이중성을 경고합니다.
- 질투(고통받는 노파): 왼쪽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습니다.
결국 비너스와 큐피트의 사랑이 아님, 육체적 사랑(쾌락)은 달콤해 보이지만, 결국 시간 앞에 덧없고 기만과 질투를 동반한다는 알레고리를 읽어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죠.
자본은 '정답'을 파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영원히 '질문' 상태로 남습니다. 정답을 빨리 확인하고 다음 소비로 넘어가야 하는 속도의 시대에, 멈춰 서서 해석해야 하는 그림은 '가성비 떨어지는' 텍스트일지도 모릅니다.
4. 에필로그 - 20만원의 위로와 2만원의 성찰
오마카세가 주는 일시적인 위로를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즉각적인 쾌락과 대접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니까요. 하지만 20만 원의 식사가 우리를 '오늘 하루 잘 버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면, 2만 원의 미술관은 우리를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사라지는 것에 쓰는 돈은 쾌락을 남기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에 쓰는 돈은 취향을 남깁니다. 자본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18만 원의 차액,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야말로 당신만의 고유한 '미학'이 시작되는 지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를 읽고 난 뒤, 이번 주말 나를 위해 ‘가장 선물하고 싶은 시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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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보호자
그림 작품 하나도 대충 볼 때, 자세히 볼 때, 설명을 듣고 볼 때 전부 다르고 새로운 게 보이는 점이 예술의 매력인가 봅니다. 재밌는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SOURCE LAB
맞아요. 이런 저런 질문들로 다가오고, 사람마다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똑같은 삶의 루틴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게 예술의 긍정적인 부분이죠. 늘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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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P
풍부한 컨텐츠와 담백한 문장이 참 좋습니다.
THE SOURCE LAB
댓글 감사합니다. 누군가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되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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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오우 소스님 식견이 깊으시다..! 참고문헌 궁금해서 찾아보고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THE SOURCE LAB
감사합니다~ 석사전공이 인문학이라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 사실 회사원으로 산지 오래되어서 미천합니다. 글 작성할 때 참고문헌 신경써서 올려보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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