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자본의 논리를 미학의 시선으로 해부하는, 더 소스 랩(The Source Lab)의 소장 이안입니다.
주말에 성수동을 걷다 보면 돈 타는 냄새가 납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들이 '2주 뒤면 부숴버릴 예쁜 쓰레기(a.k.a 팝업스토어)'를 짓기 위해 수억 원을 태우는 냄새죠.
이 공간과 재화의 낭비의 현장에, 힙하다는 젊은이들은 기꺼이 자신의 주말을 바쳐 구름 떼처럼 몰려듭니다. 흡사 성지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처럼 말이죠.
도대체 왜 브랜드들은 멀쩡한 매장을 놔두고 가건물을 짓고, 사람들은 그 좁은 곳에 갇히지 못해 안달일까요?
오늘은 성수동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굿판'을 설치 미술(Installation Art)과 종교적 메타포로 해부해 봅니다.
1. "지금이 아니면 구원은 없다" 시한부 종말론의 대두
현대 미술에는 일시성(Ephemeral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크리스토-잔느 클로드(Christo와 Jeanne-Claude)라는 부부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건물이나 대지(자연)을 천으로 포장했다가 2주 뒤에 철거해 버리는 작업을 하는데, 사라진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 작품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듭니다.

성수동의 팝업스토어는 이 예술적 문법을 아주 영악한 세속적 현대종교로 치환해 버립니다.
만약 그 매장이 365일 언제나 열려있는 곳이라면, 소비자는 '다음에 가지 뭐'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주 일요일까지' 라는 데드라인(Deadline)은 평범한 소비 행위를 긴박한 종교적 미션으로 바꿔버립니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트렌드라는 구원열차에 탑승하지 못하고 낙오할 것이라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죠.
극단적인 예로, 만약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이번 달까지만 전시하고 불태웁니다" 라고 공표한다면 파리 전체가 마비되지 않겠습니까? 팝업스토어는 바로 그 광기를 설계합니다.

성수동 팝업스토어는 당신을 안달 나게 하기 위해, '문을 닫는 날짜'라는 시한부 종말론을 던집니다.
2. 매장은 '신전'이고, 포토존은 '제단'이다
지난 1호 레터에서 다뤘던 도넛과 베이글 가게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아주 이쁘고 화려해야 하죠.
비주얼이 곧 권력이 된 시대에, 팝업스토어는 물건을 파는 상점이 아닙니다. 브랜드라는 신(God)을 영접하는 임시 신전(Temple)입니다.
냉정하게 말해봅시다. 브랜드가 수억 원을 들여 만든 화려한 포토존은 고객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증샷이라는 공물을 바치기 위해 마련된 '제단(Altar)'과 같습니다.

고객들은 이 제단 앞에서 가장 경건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보정까지 마친 고퀄리티의 성화(Icon)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무료로 배포하며 간증을 합니다.
과거의 기업은 매체에 광고비를 냈지만, 지금의 기업은 포토존이라는 제단을 제공하고 고객의 팔로워를 십일조로 징수합니다. 이제 팝업 스토어라는 공간 비즈니스의 핵심 지표는 '평당 매출'이 아니라 '평당 인스타 업로드 수'가 되는 거죠.
3. 웨이팅은 현대판 '면죄부'다
광화문에서 회사를 다닌 적이 있는데요. 여의도의 화목순대국 이라는 가게가 가수 성시경의 유투브에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광화문 지점이 있어 화목순대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평일에는 오전 11시에 가도 웨이팅을 해야하는데, 한겨울에 오들오들 떨면서 30-40분 이상 기대리다가 순대국을 한숟가락 뜨면 이곳이 천국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추운날 웨이팅이 국밥의 맛을 올리는데 기여하는 것이죠

성수동 팝업스토어의 종교행위의 핵심은 바로 웨이팅 입니다. 더운날엔 양산을 써가며, 영하의 날씨에도 몇시간을 떨면서 기다리는 행위는 경제학적으로 명백한 손실행위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보면 이것은 신심을 증명하는 고행(Penance)입니다. 본디 억압이 있어야 자유가 있는 것이고, 고통이 있어야 진정한 구원 이 있기 마련 입니다.
우리는 이 고행을 치러냄으로써 소비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합니다. 2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간 곳은 반드시 맛있고 멋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나의 고생이 헛되지 않으니까요. 이것은 일종의 인지 부조화를 이용한 믿음의 강화입니다.
쉽게 얻은 구원에는 감동이 없듯, 쉽게 들어간 매장에는 도파민이 없습니다. 브랜드는 아주 교활하게도, 고객을 적당히 고생시킴으로써 그 안의 평범한 굿즈를 일종의 성배(Holy Grail)로 둔갑시킵니다.

결국 성수동 팝업스토어의 긴 줄은, 단순한 대기 행렬이 아닙니다. 그 줄 자체가 브랜드의 권위이자, 예배자/순례자들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예배행위 입니다.
🧠 Ian's Note : 당신은 상인입니까, 교주입니까?
성수동의 팝업스토어는 21세기의 가장 정교한 설치 미술이자, 가장 탐욕스러운 가짜 신전 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우리 제품이 좋으면 알아주겠지" 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죠. 사람들은 이제 제품과 기능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 곧 브랜딩을 믿습니다.
고객이 숭배할 수 있는 환상의 무대(Context)를 제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꺼이 헌납할 시간(헌금) 을 비싸게 책정하십시오.
대중은 기꺼이 줄을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확실한 교리(Concept)만 있다면 말이죠.
Q. 이번 레터는 성수동 팝업스토어에 숨겨진 의미를 미학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다음 레터에서 보고 싶은 내용에 투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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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nago1224
잘 봤어요 ㅎㅎ
THE SOURCE LAB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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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보호자
저런 장치들을 제가 묘하게 싫어하는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네요! 잘봤습니다. 보고싶른 주제로는 오마카세는 쿨하게 가면서 미술관은 아까워하는 이유에 한표요!
THE SOURCE LAB
오마카세와 미술관 비교 다음레터에 작성해 볼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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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원빈
인사이트가 놀랍다야
THE SOURCE LAB
감사합니다. 원빈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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