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 Insight 자본미학

[올드머니룩] 우리는 '부(Wealth)'가 아닌 '태도(Attitude)'를 훔쳤다

계층 사다리가 끊긴 청춘들의 슬픈 미메시스(Mimesis)

2025.12.05 |
from.
Ian
THE SOURCE LAB의 프로필 이미지

THE SOURCE LAB

자본의 논리를 미학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더 소스 랩(The Source Lab) 입니다

첨부 이미지

 

안녕하세요, 더소스랩 소장 이안입니다.
여기, 인스타그램와 핀터레스트의 피드를 장악한 여자들이 있습니다.

올드머니룩의 아이콘들이죠. 소피아리치와 제너자매 입니다
올드머니룩의 아이콘들이죠. 소피아리치와 제너자매 입니다

남프랑스의 호텔에서 샤넬드레스를 입고있는 소피아 리치, 로고 하나 없는 '더 로우(The Row)'의 롱 코트를 걸치고 무심하게 뉴욕 거리를 걷는 뉴욕의 켄달 제너. 그들이 증명한 올드머니룩(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유서 깊은 상류층의 패션)의 문법은 오늘날 전세계의 메트로폴리탄을 살고있는 젊은이들에 의해 오독(Misreading)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따라입는 올드머니 룩의 여유로운 코트는 지옥철에 구겨지고, 손에는 값비싼 명품 클러치 대신 생존을 위한 저가형 대용량 커피가 들려 있습니다. 

상속받을 것이라곤 불안 밖에 없는 세대가, 왜 거리에서 만큼은 상속자를 연기할까요? 오늘 더 소스 랩은 이 현상을 계층 이동이 봉쇄된 시대의 가장 슬픈 미메시스(Mimesis) 로 읽어보려 합니다.

 

1. 로고의 삭제와 침묵의 구별짓기

지난 몇 년간 패션을 지배했던 것은 브랜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로고플레이 스타일의 세상이었습니다. 구찌와 발렌시아가의 로고는 누구나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과시의 수단이었죠.

MSG가 조금 첨가되었지만 이런 느낌이었죠
MSG가 조금 첨가되었지만 이런 느낌이었죠

하지만 올드머니룩의 문법은 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구별짓기(Distinction)가 시작됩니다.

 

  부르디외는 어렵게 말했지만, 사실 저 유리벽 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카드할부 입니다  
  부르디외는 어렵게 말했지만, 사실 저 유리벽 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카드할부 입니다  

부르디외는 "취향은 인간을 분류한다" 고 했습니다. 올드머니룩은 로고를 지움으로써 이 분류 작업을 수행합니다. "브랜드 딱지가 없어도, 소재와 스타일만 보고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겠다"는 폐쇄적인 메시지. 이것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로고보다, 타인을 배제하는 훨씬 더 우아하고 냉정한 방식입니다.

 

 

올드머니룩 브랜드로 유명한 '로로피아나'의 니트의 가격은 사악합니다
올드머니룩 브랜드로 유명한 '로로피아나'의 니트의 가격은 사악합니다

 

대중은 이 침묵의 코드에 매혹되었습니다. 화려한 로고가 졸부(New Money)의 상징으로 전락하는 순간, 사람들은 돈보다 더 상위의 자본, 즉 알아보는 눈, 그 자체가 권력이 되는 판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은 기어코 그곳까지 따라갔습니다. 비싼 캐시미어를 살 돈은 없지만, 비슷해 보이는 폴리에스테르와 아크릴로 그 올드머니 무드를 복제하기 시작한 것이죠.

 

2. 닿을 수 없기에 연기한다

 

한국은 물론 북미와 유럽도 마찬가지로 현 세대의 청춘들은 부모 세대보다 스펙은 뛰어나지만 더 가난한 첫 세대가 되었습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걷어 차여버린 세상에서,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신화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슬픈 미메시스(모방)의 욕망이 싹틉니다. 존재(Being, 자산)가 바뀔 수 없음을 깨달은 청춘들은, 보임(Appearing, 태도)을 바꾸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피드(Feed) 속에서는 상속자인데, 프레임 밖에서는 세입자 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생존을 위한 메소드 연기죠
피드(Feed) 속에서는 상속자인데, 프레임 밖에서는 세입자 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생존을 위한 메소드 연기죠

그들은 부(Wealth) 자체를 가질 수 없기에, 부의 태도(Attitude)를 삽니다. 여유로운 표정, 구김 없는 옷차림, 관리된 외모.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코스튬 플레이입니다. 현실의 6평 원룸과 잔고없는 통장은 철저히 숨기고, 거리에서만큼은 상속자의 여유를 연기하는 것. 이것은 허영심이라기보다, 무너지는 자존감을 지키려는 생존 본능에 가깝습니다.

 

3. 3분 안에 결제하는 3대의 헤리티지

 

이 트렌드의 가장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은 시간성의 모순에 있습니다.

올드머니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실 시간에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입던 코트를 손자가 물려 입어도 낡지 않는 견고함, 대대로 내려오는 취향의 축적. 그것이 진짜 올드한 헤리티지의 가치입니다.

 

 3분만에 결제가 가능한 '인스턴트 귀족주의' 배송 출발!
 3분만에 결제가 가능한 '인스턴트 귀족주의' 배송 출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올드머니룩은 가장 빠르고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 시스템 위에서 작동합니다. 자라(ZARA)같은 브랜드와 쉬인(SHEIN)같은 플랫폼은 수십 년이 걸려야 만들어지는 헤리티지의 아우라를 단 2주 만에 복제해 냅니다.

 

우리는 오래됨(Old)이라는 가치를 가장 빠른(Fast) 방식으로 구매하는 거대한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스턴트 헤리티지 입니다. 역사가 없는 세대가 돈으로 산 가짜 역사인 셈입니다.

 

4. 눈으로만 입는 캐시미어

더 잔인한 진실은 감각의 영역에 있습니다. 비주얼 컬처의 관점에서 이 현상은 시각이 촉각을 압도해버린 시뮬라크르(Simulacra)의 승리입니다.

진짜 올드머니의 권력은 사실 눈에 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피부에 닿는 물성(Materiality, 소재의 질감)에서 나옵니다. 로로피아나의 베이비 캐시미어나 에르메스의 가죽이 주는 압도적인 부드러움은 만져본 사람, 즉 경험해 본 계급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죠.

2D세계의 피드(Feed)는 로로피아나, 3D세계의 현실은 폴리에스테르 입니다
2D세계의 피드(Feed)는 로로피아나, 3D세계의 현실은 폴리에스테르 입니다

하지만 SPA 브랜드가 찍어낸 인스턴트 올드머니룩은 어떤가요.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완벽한 귀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거칠고 얇은 합성섬유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촉각은 배제된채, 오직 이미지만이 실재를 대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진짜 부(Real Wealth)는 없어도 되지만, 부유해 보이는 이미지(Rich Image)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세대에게, 패션은 더 이상 옷이 아닙니다. 아픈 현실을 스마트폰 필터로 가려주는 가장 가성비 넘치는 알약인 셈이죠. 


5. 나가며 : 올드머니룩 사례로 배운 비즈니스 인사이트 3가지

여기까지 본 올드머니룩의 유행을 단순히 청춘들의 허세로 치부한다면, 시장의 가장 중요한 시그널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미메시스의 현장 속에서 비즈니스로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Insight 1. 동경심을 팔지 말고, 안도감을 팔아라
지금 소비자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날개가 아니라, 추락하지 않기 위한 안전벨트를 원합니다. 올드머니룩은 그들에게 '나도 주류에 속해있다'는 심리적 안전지대를 제공합니다. 당신의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은 과시욕입니까, 아니면 불안을 잠재우는 세련된 소속감입니까?

 

Insight 2. 기능이 아닌 태도(Attitude)를 브랜딩 하세요
사람들은 이제 따뜻한 코트를 사지 않습니다. 여유로워 보이는 코트를 삽니다. 제품을 사용했을 때 고객이 원하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제안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물건이 아닌, 물건이 만들어줄 '이상적인 자아의 이미지'를 결제합니다.

 

Insight 3. '접근 가능한 환상'을 설계하세요
진짜 헤리티지는 너무 멀고 비쌉니다. 대중은 진짜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라(ZARA)가 성공한 이유는 명품의 아우라를 접근 가능한 가격과 품질로 빠르게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진정성보다는, 진정성 있어 보이는 무드를 빠르고 가볍게 제공하는 영리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투표

Q. 다음 레터에서 보고싶은 주제를 선택해 주세요

1. [키링의 사회학] 500만원짜리 명품에 왜인형을 주렁주렁 달까?  28.6% (2표)
2. [텍스트 힙] 읽지도 않을 쇼펜하우어는 왜 20대의 악세사리가 되었나? 28.6% (2표)
3. [MBTI 바코드] 우리는 왜 타인을 분류하려 드는가? 28.6% (2표)
[조각투자의 허상] 당신은 예술을 소유했는가, 영수증을 소유했는가? 14.3% (1표)

총 7명이 투표했습니다.

 

※ 투표는 이메일로 레터를 수신한 구독자에 한해서 가능합니다. 
     구독하지 않으신 분은 댓글로 의견주셔도 좋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THE SOURCE LAB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5 THE SOURCE LAB

자본의 논리를 미학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더 소스 랩(The Source Lab) 입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