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더소스랩의 소장 이안입니다.
프로이직러로 살며 다양한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문화라는 게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나뉘는 게 아니더라구요.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부터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오늘은 제가 관찰한 두 가지 유형의 회사를 건축 양식에 빗대어 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회사는 어느 쪽인지 한번 생각하면서 읽어보시죠
1. F형 조직 : 관계라는 예쁜 덩굴 속에 갇힌 사람들
19세기 말 산업화에 대한 반발로 그야말로 갑툭튀한 건축양식은 아르누보 입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우리가 잘 아는 스페인의 가우디가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죠.

이 아르누보 건축물들은 식물의 줄기처럼 유기적으로 얽혀있습니다. '관계'라는 덩굴이 건물의 구조를 뒤덮고 있어, 어디가 기둥이고 어디가 장식인지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름답고 부드럽지만, 이 덩굴 때문에 이 건축물의 구조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파악을 위해서는 얽힌 줄기(관계)들을 잘라야 하는데, 아르누보의 세계에서 '절단'은 곧 파괴를 의미하기에 아무도 가위를 들 수 가 없죠.
F형 조직, 즉 '감성'과 '관계'가 지배하는 회사들이 딱 이렇습니다. 미국의 위워크(WeWork)는 사무실 임대업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인 키부츠와 같은 형태의 '커뮤니티'를 판다고 했습니다. 네온사인, 무료 맥주, Do what you love라는 감성적인 슬로건은 전형적인 아르누보의 장식과 비슷합니다.

한국의 카카오 초기 문화 역시 비슷했습니다. 영어 이름을 부르며 위계를 없앤 수평적 문화는 아름다웠습니다. "서로 기분 상하게 하지 말자"는 배려가 조직을 감쌌습니다.
하지만 아르누보의 치명적인 단점은 그 아름다운 덩굴양식이 기둥의 균열을 가린다는 점입니다. 위워크의 방만한 수익 구조, 스타트업의 문어발식 확장 속에서 발생한 도덕적 해이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 속에 묻혔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이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테러'로 간주되었으니까요.

결국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고, 덩굴은 무너지는 기둥을 지탱해주지 못했습니다.
2. T형 조직: 숨을 곳 없는 유리 감옥
반면, 제조업 기반이나 시스템이 견고한 대기업의 조직은 20세기 초에 시작된 바우하우스 양식과 같습니다. 양식적인 것은 배제하고 기능에만 중점을 두었고, 선을 중시하는 편이죠.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Less is More(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철학처럼, 이곳은 감정이라는 장식을 철저히 제거합니다. 남는 것은 철골(Logic)과 유리(Data)뿐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아마존(Amazon)의 조직이 이 바우하우스 같습니다. 제프 베조스는 PPT라는 양식을 금지하고 6페이지 보고서(오로지 텍스트만 있는)로만 소통하게 했습니다. 물류센터의 동선은 그리드(Grid) 위에서 데이터로 통제됩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별명처럼, 이곳은 철저한 감사와 수치로 움직입니다.

보통 제조업 기반의 회사가 이런 직선형 중심 입니다. 삭막하고 군대조직 같다는 비판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양식을 가진 건축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중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이익이 어디서 나는지가 적나라하게 보인다고나 할까요? 문제를 알아차리기도 쉽죠.
3. 미학적 역설 "누가 진정한 휴머니즘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합니다.
사람 냄새를 강조하던 아르누보 양식의 조직들(위워크, 스타트업 등)은 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사람을 정리했습니다. 구조가 없었기에 붕괴는 처참했고, "우리는 가족"이라던 구성원들은 하루아침에 어떻게 내몰았는지를 기억합니다.

반면, 피도 눈물도 없다던 국제주의 조직들은 위기 속에서도 시스템의 힘으로 회사를 지켜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차가운 시스템이 아이러니하게도 직원들의 월급과 고용을 유지하는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입니다 (물론 T형 조직이 더 좋고, F형 조직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회사가 이 프레임에 들어맞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웃으며 인사하는 매너(Manner)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구조(Structure)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4. 장식을 걷어내라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장식은 죄악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비즈니스에서 인간관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비즈니스의 본질은 건물을 지탱하는 것이지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 당신의 속한 조직을 생각해 보세요. 혹시 썩어가는 기둥을 가리기 위해 '원만한 소통'이라는 화려한 덩굴을 심고 있지는 않습니까? 서로에게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건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실은 우리 조직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장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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