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실험 휴재 공지

그리고 유튜버의 책임에 대한 생각

2025.11.29 | 조회 4.4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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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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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운의 사고실험

계속 질문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0  안녕하세요, 최성운입니다. 지난 10월 3일 발행했던 새섬님 에피소드 이후로 두 달 동안 채널 업데이트가 없었는데요. 오늘은 사고실험 채널이 당분간 운영을 멈춘다는 소식과 함께, 최근 제가 겪은 고민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글을 씁니다.

1  사고실험의 휴재 자체는 원래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1년 동안 채널을 운영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래서 1주년을 기점으로 3개월간 채널을 멈추기로 결정하고, 10월 7일부터 11월 4일까지 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지에서 영상을 촬영해 1주년 회고 겸 휴재 소식을 말씀드리려던 계획이었습니다.

2  그리고 10월 27일에,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셨던 고 정효원님께서 과로로 세상을 떠나셨던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사고실험이 창업자 료님의 이야기를 깊게 조명했던 만큼 많은 분들이 비판적인 댓글을 남겨주셨는데요. 영상에 대한 비판부터,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에 대한 비판, 채널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점의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3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고 모든 내용을 소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과정 어딘가에 제 책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처음부터 한눈에 다 들어오지는 않았거든요. 그 책임이 무엇이고, 어떻게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4  이번에 가장 많이 받은 비판 하나는, 사고실험이 ‘띄워주기’용 콘텐츠라는 것이었는데요. 사실 이전까지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던 의견이었습니다. 게스트분들과 저 사이에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고, 제가 그분들을 띄워드릴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에게 호의를 갖고 영상을 시청해주시는 분들의 신뢰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제 의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5  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콘텐츠를 만들어온 방식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최대한 게스트분과의 감정적 거리를 좁히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왔습니다. 그게 제가 잘하는 방식이었고, 또 좋은 인터뷰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공감과 비판적 수용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6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점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요. 저는 비공개 처리 자체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충분한 설명과 책임질 방법이 준비되었을 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생각이 짧아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10월 28일에 저는 대륙간 이동을 위해 비행기를 두 번 탔고, 경유지 공항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그때 좀 더 차분히 후속 행동을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7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는, 영상이 내려간 걸 발견한 분들이 채널의 최신 영상인 새섬님 에피소드에 댓글을 수십 개 남긴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방어기제가 발동했던 것 같습니다. 댓글 속에서 이미 저는 책임질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그분들에게 욕을 덜 먹는 것을 목적으로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져야 하는 책임을 다한 뒤에 입을 열고 싶었습니다.

8  며칠 동안 생각을 정리한 뒤, 과로사 사건을 최초로 보도하신 매일노동뉴스의 기자님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사과드려야 할 분들은 고 정효원님의 유가족분들과 이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애쓰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영상 두 편에서 발생한 조회수 수익금 400만 원은 ‘직장갑질 119’라는 공익단체에 후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11월 3일,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의 일입니다.

9  그렇지만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일을 계속 해도 되는가.

10  이번에 받은 수백 개의 댓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댓글이 하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제가 해석한 바는 이렇습니다. ‘한국에서의 성공은 대부분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 그 현실을 외면하고, 성공한 이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어 우상화시키는 콘텐츠는 사기에 가깝다. 사고실험 또한 그렇다.’ 그 말씀이 참 아팠습니다.

11  제가 사고실험을 만든 의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의도 타령이 공허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지키고 싶은 채널의 성격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감수한 대가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고실험이 성공 비결 콘텐츠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보다는 삶에서 자신만의 벽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길 바랐습니다. 비슷한 얘기처럼 들려도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구별해내기 위해서 제 모든 역량을 다했습니다.

12  그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사고실험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는 콘텐츠라고.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더하기 빼기 다 해서 계산해보면 총합은 양수일 거라고.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눈을 돌리면 저와 다른 창작자들이 보였습니다. 사회의 연약한 부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 전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앞에서 저의 쓸모를 주장하는 게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13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사고실험은 분명히 한계가 많은 콘텐츠고,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계를 지적받았다고 해서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은 제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지 못한 일에 대해 변명하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겠다고요. 관성에 의존하지 않고, 매번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실수를 저지르면 책임을 지고 만회하겠다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섣불리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않겠다고요. 제가 만든 콘텐츠가 정말 쓸모 있었다는 증명은, 평생이 걸려서 마지막에 받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14  그러니 비판적인 눈으로, 꾸준히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은 이 채널을 운영하는 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물론 당장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마음은 복잡하고, 솔직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이상의 구조적인 해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준비에 걸리는 시간도 있으니 빠르면 3월쯤 채널을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쩌면 저 혼자 모든 일을 결정하고 제작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서, 그때쯤엔 함께할 팀원을 한 분 모셔야 할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15  그리고 지난 두 달 동안 채널로 보내주신 제안메일에 대해 회신을 드리지 못했는데요. 늦었지만 이제부터는 성실히 답변드리도록 할 테니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채널 관련 제안이 아니라, 혹시나 이 글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choi.experiment@gmail.com (개인메일)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고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독감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최성운 드림


@cloud.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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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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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수라발발타의 프로필 이미지

    아수라발발타

    0
    7 days 전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은 제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요.’라는 문장이 참 솔직하게 많은걸 내려놓고 글을 쓰셨구나 느껴지네요. 아무쪼록 힘내십쇼 비판이 있다는건 그만큼 사랑 받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싶어요 토요일 밤은 따듯하길 바라요

    ㄴ 답글
  • 별다킴의 프로필 이미지

    별다킴

    0
    7 days 전

    인간은 결국 유토피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모두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성장통 잘 지나가시고 얼른 또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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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TP입만동동의 프로필 이미지

    ENTP입만동동

    0
    7 days 전

    이 또한 지나갈 거예요. 나중에 '아 이런 일이 있었지'라고 회고할 순간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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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향의 프로필 이미지

    사과향

    0
    7 days 전

    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돌아와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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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한의 프로필 이미지

    유한

    1
    6 days 전

    성운님의 깊은 통찰을 참 좋아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에게 어떻게 성공했냐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던 것 같아 성운님의 채널의 의도가, 그리고 성격이 성공만을 주목하는 채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 덕분에 성운님의 영상을 즐겨보았는데 이번 일을 보니 그 세상이 성운님께 오히려 독이 되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이 글을 쓰셨을지 그 고민의 깊이를 제가 헤아리긴 어렵습니다. 옳은 비판을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무지성으로 비난하는 사람이 더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비난이 최성운님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또다른 사고실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원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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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urijuwa의 프로필 이미지

    durijuwa

    0
    6 day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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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호아빠의 프로필 이미지

    현호아빠

    0
    6 days 전

    사람에게 실패와 성장은 양 축이고, 그게 평생 반복되는 게 인생인 듯 싶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많은 고민과 함께, 그래도 제가 이 채널은 왜 팔로우해야 되는 지 이유는 알겠더군요. 고민도, 갈등도, 노력도 충분히 하시고 돌아오세요. 응원하고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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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피카의 프로필 이미지

    스피카

    0
    6 day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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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lle의 프로필 이미지

    lille

    0
    6 days 전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더 깊어진 고민을 담아 많이 늦지 않게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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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영의 프로필 이미지

    이지영

    0
    6 days 전

    항상 인간이 진심을 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깨달음을 주는 성운님. 이번 레터 잘 받았습니다. 저도 답을 전하고 싶어, 로그인을 하고 댓글을 남깁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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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ANDEX의 프로필 이미지

    BRANDEX

    0
    5 days 전

    아고...힘내세요....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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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ena의 프로필 이미지

    Siena

    0
    4 day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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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비오꼬의 프로필 이미지

    아비오꼬

    0
    2 days 전

    이런 경우들 막을 수 있는 일도,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인터뷰에 항상 자극받고 때론 위로 받고 있습니다. 행여 자책하지마시고..!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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