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황이 찍어준 유망주 리뷰(치킨 아님)

What’s in my [ 아날로그 ]

안녕하세요, 오늘의 썰풀러 에디터 사이프입니다.

오늘의 썰을 시작하기 전, 최근 저희가 직접 취재하고 발행한 뉴스레터를 한 번 살펴보았어요. 지난 달 블랭크인부터 AIX 클럽 소식까지, 역시나 AI와 관련한 내용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근래에는 AI를 빼놓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절이 왔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팁스터를 읽는 구독자 여러분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테고요.

그래서! 오늘은 AI와 가장 거리가 먼 주제를 한 번 다뤄보고자 합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의 엄밀한 반의어는 아니지만, 넓은 범주에서 대척점의 의미를 지니는 ’아날로그’(Analogue)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요! 그럼 레츠 기릿🏃‍♂️

오늘의 주절주절

아날로그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우선 ‘아날로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볼까요?

예전엔 자료 또는 정보를 이진수로 표현하고 전송하는 ‘디지털’의 반의어로써 주로 쓰였다면, 최근엔 ‘디지털화되지 않은 고전적인 기술이나 물건’ 그 자체를 대표하는 넓은 의미의 단어로 자주 쓰이고 있죠.

이러한 고전적이고 덜(?) 디지털화된 아날로그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혁신으로 이뤄낸 디지털 세상에 지나치게 몰입한 탓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온 세상이 AI 열풍, 끝없는 숏폼 콘텐츠로 도배된 데다가 그 호흡도 빨라서 이 흐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느낌이 든달까요?

출처 : Axios-Share of articles that were written by humans or generated by AI 

올 여름을 강타(?)했던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대표 캐릭터인 ‘트랄랄레오 트랄랄라’와 같이 큰 의미가 없는 ‘AI 슬롭’들이 우리 SNS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 ‘AI 슬롭’ 사이 한층 정교해진 생성형 AI로 만든 또다른 이미지, 영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을 흐리게 했죠.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서로 공유하는 수많은 아티클 중 사람이 직접 쓴 것이 아닌 AI가 작성한 글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해요. 내 온라인 공간 속 콘텐츠들이 AI에게 절반 이상 잠식 당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죠.

그럼 ‘우리 윗 세대는 수십년 전 처음 도입된 디지털 공간에 적응을 하지않았냐,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게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요. 그 때 디지털 공간의 낯섦 속에서도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어쨌든 그것이 인간의 개입과 판단이 필요한 ‘도구’로서 작동했고, 적응할 시간 역시 충분했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좀 다릅니다. AI가 화두로 떠오르기 전부터 스마트폰 중독과 알고리즘이 불러온 몰개성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학습 능력과 인지 속도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AI가 이 문제들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죠.

이러한 배경이 레트로, 웰니스 등의 트렌드와 결합하여 ‘오래된 것’, ‘느린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행동과 사물에 대한 관심을 크게 키우고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아날로그의 매력

1. 서툴고 어색하더라도 내 손으로

출처 : 인스타그램 @gwangjin_nolja

뜨개질은 2024년부터 빠르게 관심도가 올라간 취미 중 하나에요. 여러 백화점에서 뜨개 관련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가 연이어 열리고 있고, 올 9월 성수동에 자리 잡은 뜨개 브랜드 ‘SEVY’의 7층짜리 오프라인 스토어가 그 인기를 방증합니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뜨개질로 만든 물건이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뜨개 관련 용품을 구매하여 직접 제작하는 행위의 선호가 높아졌고, 그 트렌드를 주도하는 연령층이 소위 말하는 ‘MZ’ 세대라는 점이에요. 취향을 공유하는 방식도 매우 적극적입니다. 뜨개 관련 소모임에 합류해 정보를 공유하거나 직접 도면을 만드는 이들도 적지 않죠.

또한 뜨개질 외에도 ‘O꾸’로 일컬어지는 공예 계열 취미의 인기는 꽤 오래 지속되고 있어요. 물론 이러한 트렌드는 단순히 ‘디지털 디톡스’만으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팬덤 문화와의 결합과 SNS를 통한 확산 등 다양한 배경을 전제로 살펴봐야 하죠.

출처 : 유튜브 설뜨

최근 뜨개질을 취미로 시작한 에디터 한분을 취재해봤는데 회사 일에 지쳐서 리프레시 할 수 있는,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을 찾다가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회사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협업해야 하고,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안 보이는 아쉬운 날도 있는 반면 뜨개질은 집중하기 좋고 무엇보다 내가 투자한 노력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빨리 확인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단순한 작업 사이에서도 나름의 치밀한 계산을 한다는 반전 매력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스마트스토어에서 만들고 싶은 용품 키트로 구매할 수 있어서 접근성도 굉장히 좋다고 해요. 보통 뜨개질에 필요한 도안을 같이 주기 때문에 초기 도안 읽는 법만 숙지하면 쉽게 아날로그 세상에 진입할 수 있죠.

2. 활자가 주는 만족감, 텍스트힙

영상 콘텐츠의 홍수에 더해 어떠한 정보든 AI가 씹어서 뱉어주는 요즘 세상에서, 활자의 매력이 높아지는 건 매우 의외의 일 같습니다. ‘텍스트힙’(Text Hip)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독서는 권장하는 고상한 교양을 넘어, ‘멋지고 세련된 행위’로 자리 잡고 있죠.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은 이미 얼리버드 단계에서 입장권 15만 장이 모두 팔려 주최 측이 공식 사과문을 올려야 할 정도로 크게 흥행했고, 민음사의 도서 행사인 패밀리데이는 전국에서 독자들이 몰려들 정도로 유명한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소비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지표가 된 팝업스토어 또한 여러 대형 출판사의 타이틀을 걸고 성수동이나 백화점 등 젊은 소비층이 밀집된 공간에서 계속 열리고 있고요.

사실 ‘텍스트힙’에 대한 업계의 대응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볼 수 있어요. 역설적으로 도서는 유통과 판매에 있어 다른 상품들보다 제약이 많았고, 길어지는 불황 속에서 수많은 영상 콘텐츠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며 기초체력을 키워왔던 셈이 되었죠.

여러 도서 및 문학 관련 뉴스레터와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콘텐츠들은 꽤 오래전부터 MZ세대를 타깃으로 도서 외 콘텐츠를 제작하며 그 심리적 거리를 좁혀왔고, 다양한 오디오북, 웹소설,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물리적 접점 또한 많아졌어요. 도서와 관련한 인기 굿즈들의 출현 또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 주요한 이유가 되었고요.

3. 물성에 대한 탐닉

아날로그적 매력을 지닌 물건들에 대한 수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 앞서 언급했던 공예 취미나 독서보다도 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선호를 받고 있죠.

LP 음반(Vinyl Record)은 미국에선 이미 2024년 기준 3년 연속으로 CD의 판매량을 앞질렀고, 카세트테이프 또한 다양한 아티스트 앨범을 통해 꾸준히 생산되고 있어요. 물론 이러한 음악 매체는 실제 음악을 담은 저장 매체로서도 작동하지만, 팬들에겐 사실상 특별한 굿즈로서 소비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출처 : 코닥캐리어 홈페이지

필름 카메라 또한 주목받고 있습니다!(전 정말 이 물건만큼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로 생각했었어요) 디지털 사진에서는 찾기 어려운 필름만의 독특한 느낌과, 손끝에서 올라오는 셔터의 촉감은 필름 카메라 외 다른 것이 대체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실제로 코닥은 작년 11월, 증가하는 필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제조 공장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속도와 이해의 문제

도서 <트렌드 코리아>는 매해 새로이 출간하는 책들에서 예측되는 트렌드들에 새로운 작명을 하기로 유명한데요.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선 ‘물성 매력’,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선 ‘근본이즘’이란 단어로 이번 뉴스레터에서 다룬 주제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그 이름들이 꽤 어색하지만, ‘레트로’라는 쉬운 단어로 이 현상들과 사회적 흐름을 설명하기엔 부족했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기술 발전의 속도와 기술에 대한 이해 사이의 편차가 지속되는 이상 꽤 오랫동안 유지될 것 같습니다. 뉴스레터의 서두에서 언급한 ‘피로감’ 또한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니까요. 알 수 없을 여러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6개월이 멀다고 갱신되는 AI 모델보단, 1분에 서른세 번을 도는 턴테이블이나 손 위에서 천천히 넘어가는 책장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죠. 인간의 지적 능력과 정신노동에 대한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아날로그가 주는 안온함은 더욱 힘이 세지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 2025년의 마지막 12월, 트렌드코리아 2026을 함께 읽으며 마무리하실 분들을 구합니다🔥

이번 ____에 대한 코멘트

이번 블랭크인 뉴스레터에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잡았던 목표는 ‘AI에서 벗어난’ 글을 쓰자 였답니다. 잠시나마 AI라는 화두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구독자 분들 중에도 그것을 희망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도 ‘아날로그’ 트렌드들에 대한 내용으로 잡았고, 그 배경에 대한 이해와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AI 툴을 활용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어요. 일부 정보는 함께 글을 쓰는 에디터들에게 얻기도 하고요 😂

하지만 결과적으론 완전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벌써 이번 뉴스레터에서도 ‘AI’라는 단어가 스무 번 넘게 쓰였고, 구글 검색은 검색어를 입력하자마자 ‘AI 개요’부터 뱉어내더군요. 조사한 자료 중에서도 단번에 ‘아, 이건 AI가 썼구나’ 싶은 글들도 부지기수였고요.

그래도 그 시도만으로도 뭔가 뿌듯하고 오래 움츠렸던 몸을 스트레칭하는 것처럼 개운한 기분을 느꼈어요. 여러분도 잠시 스마트폰을 뒤집고, 프롬프트 창을 닫은 후 좋아하는 물건을 손에 쥐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의 썰을 마무리하며

‘텍스트힙’을 이야기하며 인용했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여러 콘텐츠 중, ‘독서클럽 EP6 AI’ 편을 공유하며 오늘의 길었던 썰을 마치고자 합니다. 영상에선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쓴 『클라라와 태양』 이란 SF 소설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인공 지능 로봇’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요.

문학 거장 중 한 명인 작가는 ‘인공 지능’이란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는지, 우리와 전혀 다른 일(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인공 지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라 팁스터 구독자 여러분께 추천드립니다.

오늘의 썰풀러 에디터 사이프🐝

오늘의 썰 편집자 에디터 동동🐥, 에디터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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