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2023년도 어느덧 마지막 숫자가 보입니다. 올 한해 모두들 어떻게 사셨나요.행복했던 일, 즐거웠던 일,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 모두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아도 문득문득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들이 많습니다. 9월에 시작한 이 뉴스레터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건축가가 아닌 30대중반 청춘의 생각으로 올 한해를 담아보고자 합니다.
# 매년 맞이하는 연말이지만 올해는 잘 마무리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인터넷에 방법을 찾아봤다. 어떻게 한해를 마무리해야 늘 이 찜찜했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매년 느끼는 아쉬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어떻게 잘 다듬어서 새로운 한해를 맞이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고의 글이든, 토로의 글이든 자신의 생각을 꺼내 각자의 표현법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역시 글쓰기는 무언가를 정리할때 필수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드로우앤드류>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질문으로 4가지를 제안한다. 도전한것, 이룬것, 아쉬운것, 개선할 점. 오늘은 이 네가지 질문을 가지고 2023년을 잘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 올 한해는 나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만들기위해 고군분투 했던 시간들이었다. 다양한 것을 시도했고, 다양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큰 성과나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진행했던 사이드 프로젝트들로 바쁘지만 오히려 에너지 넘치게 하루하루를 살았고, 열정적으로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열심히 살고있었다. 그러나 항상 되뇌이는 것은 열심히 보다 방향성이다. 이제 과연 맞는 방향일까. 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
# 도전한 것
[다섯번의 현상설계] 자의반 타의반 진행했던 현상설계. 작은 회사로 이직하고, 한결 작아진 건축규모와 제출물로 현상설계를 생각보다 쉽게 진행했다. 작년 개인적인 요청으로 진행해본 한번의 공공현상 이후로 올 한해는 그 재미와 필요성을 모두 느껴 다섯번의 현상설계를 진행했다. 회사일이고 업무이긴하지만 무언가 새로운것을 제안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다. 다섯개의 프로젝트와 다섯개의 대지위에 다섯번의 새로운 생각으로 건축을 했다. 역시 건축은 상상하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일러스트 굿즈 제작 및 펀딩] 작년 말 남산 기슭 40년을 지켜온 힐튼호텔이 영업을 종료했다. 건축의 한 역사를 굵직하게 간직해온 거장의 작품이 철거된다는 아쉬움에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일러스트로 그려서 공유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반응에 재미를 느껴 다양한 우리나라 랜드마크들을 그렸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우리건축 일러스트를 굿즈로 제작해서 펀딩을 진행했다. 단순한 취미가 불러온 프로젝트였다. 굿즈제작도, 펀딩도 처음이었다. 새로운 시도였다. 시제품을 만들고, 직접 제품 페이지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어 인스타광고도 해보고 판매, 포장, 배송까지 일련의 과정을 진행했다. 회사에서 주는 돈만 받다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판매해보는 경험은 짜릿하고 흥분되었다.
[전시] 아이패드를 사고 누구나 그렇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저 꾸준히 소소하게 그려온 그림들이 약 30여개. 인스타와 그라폴리오에 올려온 작품을 보고 작품전시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엔 다른 일정으로 진행하지 못했지만, 작품전시?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를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시에 대해 알아보고 <압구정 빈칸>이라는 공간에 다른 창작자들과 6월 한달을 채웠다. 전시라고는 대학교 5학년 졸업전시뿐이었는데, 다시 그때의 설렘이 찾아왔다.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설레임을 경험하고, 벽 한칸을 차지하고 있는 내 작품의 뿌듯함을 느꼈다. 창작자,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독립출판]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건 오래전이다. 30대 중반 불안한 마음에 이대로 살아도 될까하는 생각에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새벽에 일어나 조금씩 써내려한 나의 글들이 나의 기록장을 가득채웠다. 이 채워진 기록을 한권으로 묶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독립출판을 기획했다. 누군가에게 내보이기 부끄러운 감정도 들었지만, 새벽밤 나의 감정과 30대 나의 청춘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수정하고 편집하고, 표지를 만들고 적당한 제목을 짓고, 많은 감정이 드는 작업이었다. 살면서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 어린시절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아무도 읽지 않는 독립출판물이지만 그 꿈을 소소하게 이뤄냈다.
[뉴스레터] 뉴스레터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해봐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뉴스레터를 지난 9월부터 발행하여, 매주 하나씩 발행중이다. 꾸준함이 바탕이 되어야하는 뉴스레터이기에 시작하기가 두려웠었나 보다. 뉴스레터를 발행한다는 것은 매일 조금씩 생각할 시간을 만들고 글 쓰는 시간을 만든다는 루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나의 성장과 지금 생각의 기록이라는 두가지를 잡기위한 도전이었다. 주절주절 정리되지 않는 글들을 사람들이 읽어주고 구독을 해주면서 약간의 책임감이 생긴다. 잘써야겠구나. 좋은 정보를 담아야겠구나. 또 나를 잘 표현해야겠구나. 매일 아침 출근전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면서 오히려 더 활기를 찾고있다.
#이룬것
이룬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과나 성장이 아닐까. 한해를 돌아보면 성과는 없을지라도 성장은 있었다. 다섯번의 현상설계 도전에서 당선은 없었지만 다섯번의 경험치와 약간의 성장을 만들었다. 현상설계를 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떤 리더가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많았다. 역시 건축은 혼자하는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팀원들과 협업해야하는지, 팀원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평생 해본적 없는 판매와 펀딩을 하며 제작 판매의 일련의 과정을 경험했고,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경험없는 것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역시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주는 성장이 컸다. 판매라는 것은 마케팅도 필요하고, 사람의 마음을 훔칠 후킹포인트도 필요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소유욕을 자극할 수 있는 그 무언가도 필요하다. 결국 건축도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서 우리의 전문성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 판매를 위해 지금껏 건축만 잘하면 되는줄 알았지만, 역시 마케팅과 포장, 배송 모든 과정에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책 한권이 주는 기쁨은 또 책을 써야겠다는 자신감과 욕망을 만들어냈다.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주변사람들과, 부모님의 은근한 자랑스러운 표현, 그런것들 또한 내가 나의 페르소나를 하나 만들어냈다는 기쁨을 만들어줬다.
올 한해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한적 없는 것들을 하면서 때로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돈을 벌어주는것도 아니고, 에너지와 시간만 소비되는 일들을 왜 지금 하고 있는 건지, 이 나이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하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스티브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연설에서 말했다. “Conneting the dots.” 지금의 행위가 하나의 점이 되어 미래에는 결국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미래를 먼저 보고 현재 행위를 할 수 없다. 언제나 행위가 먼저이다. 그 행위들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진다. 두렵고 부끄럽지만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쉬운것 & 개선할 점
올 한해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현상설계이다. 당선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재미있는 현상설계를 너무도 재미없게 진행했다는 점 때문이다. 건축가에게 자신의 상상을 건축으로 표현해 제안한다는 것은 굉장히 설레고 신나는 작업이다. 현상설계의 장점은 주어진 조건안에서 자유로운 상상으로 그 어떤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상상을 현실화 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는 괴롭기보단 신나야한다. 그런데 우린 괴로웠다. 현상설계를 할때면 언제나 마음에 찜찜함이 있었고, 서로가 상처를 받고 있었고, 웃음기는 사라졌다. 리더가 아닌 팀원으로 일을 하는상황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막막했고, 리더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팀원의 능력이 100이면 120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리더가 되려면 나부터 더 공부하고 더 신뢰해야한다.
세상에는 제품, 상품, 작품이 있다고 한다. 제품은 공장에서 그냥 만들어진것, 상품은 누군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위해 만들어진것, 작품은 개인의 만족을 위해 만든것이다. 이 중에서 팔리는 것은 바로 상품이다. 사람들의 니즈가 있고, 그 니즈를 만족시켜주는 물건이 팔리는 것이다. 무언가를 팔기위해선 이 상품을 만들 줄 알아야한다. 내가 했던 것은 나의 즐거움과 나만 좋아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팔기는 물건이 아니다. 나는 작품을 만들어 놓고 팔리기를 기다렸으니 역시나 잘 안되었다. 사람들의 니즈를 모르고 그저 나의 만족을 위해 만든 물건이기에 펀딩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언제나 사업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데서 출발한다. 이 중요하고 가장 기초적인 생각을 간과하고 도전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건축을 하면서도 꼭 생각해야할 점인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하는게 아니라, 남이 원하고 좋아하는 아름다운 건축을 하는 것.
작가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이 원하는 글을 쓸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읽고싶은 글, 알고싶은 이야기를 쓸 줄 알아야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 내가 쓴것은 아주 어리숙한 감정의 토로 글들이었다. 책 편집도 어설프고, 오타도 많았다. 독립출판이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편한대로 한다는 합리화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늘 시도는 쉽게하지만 마무리를 섬세하게 하지 못하는 나를 반성한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기위해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그래도 내 전문분야인 건축분야로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들, 공부했던 내용들, 경험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다른 건축하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들이 원하는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머릿속에만 산재해있던 다양한 생각들을 나름 잘 정리해서 글로 풀어내는 과정을 공부하고 경험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꾸준한 기록의 힘을 믿고 가려고 한다.
# 하지만 올 한해 가장 큰 이슈이자 행복이 있다면 바로 주니어의 탄생이다. 지난7월7일 행운의 숫자처럼 찾아온 우리 도준이는 모든 힘듦과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태어날때 세상 조그만하고 너무도 약해보이는 아이가 어느덧 5개월이 되니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아빠엄마를 보며 헤헤 웃어주고 있다. 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아빠도 더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삶에는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고, 도준이에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준다.> 매일 아침 노트에 적어보는 이 문장을 되뇌이며 2024년도 다시 한번 달려보자. 모두들 행복한 2024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년엔 더 좋은 건축소식과 즐거운 글로 찾아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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