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발전의 중심인 인도네시아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수도인 자카르타입니다. 업무차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간다면, 90%의 확률로 자카르타로 가게 됩니다. 많은 IT 회사들과 글로벌기업들 역시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하고 있죠.
그러나 2024년 08월 17일 인도네시아의 79회차 독립 기념일 행사는 수도 자카르타가 아닌, 다소 낯선 이름의 ‘누산타라’라는 도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누산타라는 대체 무엇이고, 왜 이번 독립 기념일은 자카르타가 아닌 누산타라라는 도시에서 진행된 것일까요?
새로운 수도 누산타라는 어떤 곳?
인도네시아는 2045년까지 5단계에 걸쳐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영토가 동시에 존재하는 칼리만탄 섬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예정입니다. 2019년 8월에 칼리만탄섬의 동부에 수도 부지를 선정하고, 2022년에 누산타라 캐피탈 시티(Nusantara Capital City, 혹은 Ibu Kota Nudantara, 줄여서 IKN)로 명명했죠.
새 수도로의 이주는 2024년 8월 17일 독립기념일 행사와 함께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늦어도 2045년에는 완료될 예정이었습니다. 또, 수도를 이전한 이후 현 수도인 자카르타의 법적 지위를 특별 구로 전환, 경제 중심도시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누산타라가 2024년 내 수도로 공식 지정되며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하네요.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5년부터는 인도네시아 수도를 누산타라라고 외워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도를 보면 빨간색 핀이 위치한 곳이 칼리만탄 섬의 동쪽에 위치한 누산타라입니다. 아래에 자카르타, 수라바야, 그리고 반둥이 있는 자바섬에 비하면 면적이 매우 크죠.
누산타라는 아직 공사 소리만 들리는 허허벌판이지만, 철저한 계획에 따라 촘촘히 설계된 친환경 도시로 발전되어 갈 예정입니다. 2023년 2월 기준 도시의 인프라는 약 14% 정도 완성되었다고 했으니, 지금쯤은 아마 20~30% 정도 완성된 상태가 아닐까 싶네요.
지금 누산타라를 갈 분들은 없겠지만,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보니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까지는 약 44시간(배편 포함)이 걸리는군요.
수도를 이전하는 이유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 인도네시아도 수도권 과밀화가 심각한 편입니다. 자카르타의 인구(10M)는 제2의 도시 수라바야 인구(2.87M)의 약 3.5 배가량 됩니다. 서울 인구(10M)가 부산 인구(3.5M)보다 2.85배 많으니 아직 앞서고 있긴 하지만,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수가 약 2.8억임을 고려하면 아직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더 밀집시킬 수 있는 포텐셜이 있죠. 이미 자카르타의 교통은 지옥 같기로 유명한데, 더 지옥 같아질 수 있는 겁니다. 또한, 많은 인구가 한 섬에 몰려있는 상황이죠. 자카르타가 아무리 주변으로 분산시키려고 해도 이미 섬 자체가 포화상태인 셈입니다.
가라앉는 현 수도 자카르타
열악한 교통, 그리고 과포화로 인한 오염 문제도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카르타가 점차 가라앉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카르타는 원래 바다였던 곳에 흙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지형으로, 최근 지하수가 고갈되어 감에 따라 지반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현재 전체 자카르타의 약 40% 정도 되는 지역의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습니다. 해수면 상승과 지하수 사용으로 인한 지반 침하로 북부 자카르타는 최근 10년간 2.5m가 넘게 가라앉았고, 매년 최대 25cm씩 낮아지고 있어, 2030년에는 북부 자카르타의 90%에 해당하는 면적이 해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미 북부의 일부 지역은 침수 피해를 경험하고 있죠.
자카르타의 지하수가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이유는 자카르타의 상수도 보급률이 60%대일 뿐 아니라, 그마저도 오염 문제로 인해 많은 시민이 상수도가 아닌 지하수를 끌어다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문제를 막기 위해 지하수 사용량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자카르타의 해안에는 ‘The Great Sea Wall(대방조제)’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쌓고 있는데. 이 방조제 건설은 한국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의 비용을 부담하고, 농어촌공사 컨소시엄이 전문가들을 선별해 지원하며 시작되었다고, 2032년에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수도 이전 이후의 자카르타의 역할
위의 이유로 인도네시아는 반드시 자카르타의 인구 밀집을 막고 침몰 리스크가 적은 지형 위에 지어진 도시로 수도를 이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수도를 이전한 이후 자카르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무리 지반이 침하하고 있다고는 해도, 현재까지 쌓인 모든 것을 다 버릴 수는 없잖아요.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수도 이전이 진행된 이후에도 자카르타를 경제 중심지로 남기겠다고 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자카르타는 중국의 상하이나 베트남의 호치민과같은 역할을 하고, 새로운 수도 누산타라는 북경이나 하노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겠습니다.
다만,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많은 글로벌 기업, 물류 기업, 그리고 IT기업들이 수도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무역도시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 경우라면, 이번 인도네시아의 경우 사회주의도 아닐 뿐 아니라 새롭게 짓는 수도를 피해 기업들이 자카르타를 고집할 이유도 뚜렷하진 않아, 수도 이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기업들과 주민들이 자카르타를 떠날 이유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미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의 인도네시아 팀은 지난 기간 여러 방면의 고민 끝에, 자카르타에 있던 고객 영업팀을 누산타라에서 약 50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Solo와 Yogyakarta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수도 이전, 잘 되어 가시나
현재로서는 수도 이전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 이전은 위와 같은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현재 1단계마저도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1만 2천 명의 공무원을 이전하고자 했던 것을 6천 명으로 축소하고, 이주 시기도 9월로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도 건설에 필요한 투자금(약 USD 30B)의 약 80%를 민간투자로 채우려고 했지만, 현재 LOI(투자의향서)만 접수되고 실제 진행된 투자 건은 없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자금난 우려로 신수도청 청장 및 부청장이 사임한 상태입니다.
새롭게 지어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누산타라는 거의 맨땅에서 지어지는 도시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필요한 만큼의 투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굉장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태죠.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이전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는만큼,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만 아직 건설 계획상 필요한 금액인 USD 30B 대비 투자 가능한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고, 외국 자본의 반응도 생각보다 뜨뜨미지근한 느낌이라,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산타라 수도 이전 프로젝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누산타라 프로젝트의 공식 홈페이지(링크)를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여러분은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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