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아마 동남아시아를 유심히 보고 계시다면 MSME, 혹은 SME라는 단어에 익숙하실 수도 있습니다. SME는 Small, Medium Enterprise(중소기업)을 지칭하는 단어고, MSME는 Micro, Small, Medium Enterprise(중소기업+ 더 작은 자영업)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보통 MSME라고 하면 소위 영세 자영업자, 혹은 구멍가게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간단한 동네 슈퍼마켓과 같은 구멍가게를 인도네시아에서는 Toko Kelontong이라고 하며, 카페나 음식점의 형태를 띄면 Warung(와룽)이라고 하는데, 넓은 범위에서 Warung이라는 단어로 이 둘 모두를 묶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비즈니스’ 혹은 ‘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아울러 Warung Business(와룽 비즈니스)라고 부릅니다. 이를 표현하는 영어로는 ‘Mom-and-pop stores’가 있겠네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Warung들을 대상으로 하는 B2B 스타트업들이 꽤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인도네시아의 Bukalapak, Warung Pintar, Kudo(Grab이 2017년에 인수) 등이 Warung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이며, 이들은 Warung들을 디지털 세상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해주거나 Warung 비즈니스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들을 제공하거나 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에는 구멍가게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없지만, 한국신용데이터에서 운영하는 캐시노트 또한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Warung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Warung 비즈니스들과 그들이 왜 중요한지, 왜 투자를 받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해당 국가들을 조금 더 이해해보겠습니다.
구멍가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3.9%로, OECD 30개국 평균인 17%보다 높으며, 이들이 경제시스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스타트업 포함)과 자영업자는 국가에서 나름 중요하게 관리합니다. 한국에서는 소위 구멍가게로 불리던 극도로 영세한 곳들은 많이 없어졌지만 동네슈퍼에서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 등으로 변화했을 뿐 자영업자의 비율은 여전히 꽤 높은 편입니다.
동남아시아는 어떨까요? 2022년 인도네시아의 Warung은 약 350만개정도로 추정됩니다. Warung의 뜻은 작은 식당 혹은 노점(이동식 포장마차 등 통용)으로, 인도네시아 식료품 시장 전체 소매 거래액 중 70%는 이런 Warung에서 나옵니다. 이정도 되면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 감이 오실거예요.
Warung은 기본적으로는 음식을 파는 곳을 이야기하는 단어지만, 보통 식료품, 일상 소비재 일부를 파는 구멍가게들을 포괄적으로 Warung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래의 사진과 같은 곳들을 전부 Warung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Flourish Ventures의 설문에 따르면 설문대상의 98%가 Warung에서 장을 볼 계획이라고 답했고, 조금 더 확장해서 MSME로 보면 인도네시아 GDP의 약 61%가 6,400만개 이상의 MSME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의 96.62%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죠. Warung과 MSME들이 죽으면 인도네시아도 크게 휘청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전에 인도네시아의 틱톡샵 추방을 다뤘던 뉴스레터에서 왜 제가 틱톡샵 추방의 가장 신빙성 있는 이유로 ‘MSME를 지키기 위함’을 꼽았는지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트남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치민이나 하노이의 경우 이동식 포차형 음식점이 비농업고용의 약 11%를 차지하며, 베트남 전체에 tạp hóa 라고 불리는 Mom-and-Pop store들이 약 140만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구수 대비로 볼 때에는 베트남에 오히려 더 많은 Warung들이 있네요. 아마 미등록 포차등과 이들의 판매가 대체로 현금결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공식적인 수치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네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도 자영업자들은 국가 경제에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죠. 여기서 아마 경제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당연한거 아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겁니다. 한국이 오히려 이례적인 케이스고, 일반적으로는 국가소득이 낮으면 자영업자 비중이 크고, 국가 소득이 높으면 자영업자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사례와는 무엇이 다른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역시 기존 한국, 일본, 그리고 여타 다른 선진국과 같이 변할까요? 여기서 기존 한국의 사례와 다른 점이 생깁니다. 바로 디지털, 스타트업 시대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프랜차이즈들이 얼마나 큰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정부가 얼마나 이들을 급진적인 변화로부터 지키고자 하는가’ 하는 점이죠.
1. 규모의 경제
디지털 시대 이전에 프랜차이즈 사업이 도입되기 시작한 한국의 경우 구멍가게들이 대규모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개개인의 소득이 낮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유통망과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에서 낮은 가격에 자재를 공급받아 더 접근이 쉬운 위치에서 더 합리적인 가격에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며 판매하기 시작하면 소비자들은 움직일 수 밖에 없죠.
기존 기업들의 방식은 그랬습니다.
반면 다수의 Warung들과 상부상조하는 스타트업들이 있을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러한 Warung 비즈니스에 기회가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뛰어들어 이들을 디지털화 시키거나, 이들에게 쉽고 저렴한 유통을 제공하거나, 혹은 이들을 다크 스토어로 활용하는 등 Warung들을 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접근도 쉽고 가격도 저렴한 Warung들이 나름 경쟁력을 갖기 쉽게 되었죠.
여전히 자카르타, 호치민 등 대도시는 대기업들에게도 먹을만한 시장이라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 체인들이 들어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도시 밖으로 나가도 우리가 아는 체인들은 찾기가 어려워지죠.
2. 정부의 소상공인 보호
우리나라에서도 ‘골목상권 침해’ 혹은 ‘대기업의 횡포’ 등의 키워드로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거대자본과 소상공인의 마찰에서, 보통 보호가 필요한 쪽은 소상공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베트남은 일당제면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최소 ‘국민을 잘 살게 하느냐’ 에 대해서는 눈치를 많이 봅니다. 인도네시아도 경제성장기의 한국과는 달리 막연한 애국심으로 국가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Warung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는거죠. 특히 소상공인들이 많은 분야에서의 변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는만큼, 정부에서는 이들을 보호하는데에 많은 노력을 합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다양한 세제혜택이 있는데, 그 중 특히 재밌는 사항은 바로 실주거건물 1층에서 장사하는 경우 더 낮은 세율과 간소화, 그리고 주거비용의 일부를 사업비용처리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위에서도 언급했듯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재래시장을 포함한 Warung 경제에 타격을 주는 틱톡샵을 밴했었고, 인도네시아가 먼저 움직여준 덕분에 주변의 베트나, 말레이시아도 틱톡샵에 눈치를 주기도 했죠.
Warung 스타트업 붐
Warung의 수도 많고, 돈도 많이 돌고, 국가에서 중요하게 보는 영역이니만큼 쉽게 없어지거나 변하지 않겠죠?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Warung을 상대하는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 소상공인들이 주요 셀러로 참여하는 오픈마켓을 제공
- ID - Tokopedia, Bukalapak, SuperApp 등
- B2B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Warung들이 도매상들과 더 쉽고 편리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도움
- Warung들을 위한 디지털 서비스 제공
- ID - Warung Pintar, Kudo(Acquired by Grab), Mitrasai 등
- VN - SoBanHang, Base.vn, CNV Loyalty, Kiot Viet 등
위에 항목에 따라 스타트업들을 리스트업해두긴 했지만, 사업이 확장되며 몇몇 스타트업들은 다수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해당 영역에 뛰어들고, 많은 투자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가 맞물려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Ula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로부터 투자를 받은, Jeff Bezos-Backed Startup으로도 유명합니다. 유통 및 이커머스 분야의 스타트업이 아마존 창업자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Ula를 특히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도 했습니다.
줄줄이 어려워지는 대표 Warung 스타트업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많은 스타트업들 중 많은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폐업을 하게 됩니다. 2023년 말 Ula가 빠른 매출성장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베트남의 Kilo 또한 폐업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 뿐 아니라 인도의 소상공인 대상 B2B 이커머스 Udaan 역시 비슷한 때에 구조조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B2B e-commerce 스타트업으로, 서로간에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굉장히 유사해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판데믹 기간에 공격적인 투자유치와 지출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어요.
- 취급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FMCG 제품으로 마진폭이 얇으며, 점유율 확대를 위해 적자운영을 해왔어요. 그리고 실제로 엄청 빠른 속도의 성장을 보여줬죠.
- 판데믹이 끝나고 성장세는 조금 더뎌졌으나, 그렇다고 실적이 암울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어느정도 성장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고, 이 정도의 성적을 믿고 대규모 펀딩을 해주는 투자사들은 없었어요.
가장 크리티컬했던 것은 자본의 투입이 필요한 시점에 시장이 얼어붙으며 투자자들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스타트업들이 공격적인 적자운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시장을 장악하고 수익화를 하는데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예상보다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소프트뱅크나 타이거글로벌처럼 공격적인 백업을 해줄 수 있는 투자사가 없었던거죠. 단순히 해당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못했다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큰 시장의 변화로 인한 전략의 실패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Warung 관련 섹터는 어떻게 될까?
Warung 섹터는 크고, 일반 B2C 대비 확실한 니즈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다만 Warung들은 대체로 영세하고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공략이 쉬운 편은 아니라서 우리가 이들을 공략할 수 있다면 큰 해자(Moat)가 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도 한없이 성장을 가로막는 큰 벽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MSME들의 숫자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한, 전반적인 소득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소비력도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온라인 비즈니스가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지만, 생각보다 현지에서는 큰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주요 플랫폼을 비롯한 O2O 서비스들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대다수의 인구는 주요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 살고 있죠. 유통 인프라도 열악하고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Warung들은 현지인들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후로도 다양한 스타트업이 도전해볼만한 상당히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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