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물성이 될 때: 도자공예와 타입디자인

<OBJET TYPE> 4.11-4.27 로파서울

2025.04.15 | 조회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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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타입Nutype의 폰트 3종: 순서대로 아모픽Amorphic, 콜로코Colloco, 플럼Plumb
누타입Nutype의 폰트 3종: 순서대로 아모픽Amorphic, 콜로코Colloco, 플럼Plumb

지난 몇달 간, 공간을 만들면서 힘 닿는 대로 틈틈이 글꼴 font 얘기를 했습니다. 특정 단어를 위한 타이포 작업을 여러 번 함께해왔지만, 결과물을 볼 때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의 영역이 새삼 놀랍습니다. 이미지나 키워드에 맞는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일은 일종의 시각적인 번역과 같아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브랜드나 공간 등을 제일 먼저 타이포, 로고 디자인으로 인식하니까요. 이를 압축해서 아우르는 타입디자인-타이포그래피 작업은 늘 도전적이고 재미있습니다.

글꼴과 도자가 만났다고 하면, 아마 AI가 그리는 가장 단순한 그림의 형태는 아래와 같을 겁니다. 항아리 등의 기물 위에 글꼴이 장식된 형태요. 만약 두 영역이 만나 다른 모양으로 시각화 된다면, 서체 베이스 파운드리와 세라믹 스튜디오의 협업은 어떤 형태로 구현될 수 있을까요? "디지털 환경을 넘어 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매체인 '도자기'와의 접목을 통해 폰트를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가 아닌 물리적으로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확장"한 결과물을 용산 로파서울에서 만났습니다.

<TYPE JAR 타입 항아리>
<TYPE JAR 타입 항아리>

디지털과 피지컬의 간극

디지털로 제작된 서체를 피지컬로 불러낸다고 하면, 대개 가장 먼저 종이에 인쇄된 형태가 떠오를 겁니다. 누타입Nutype의 <Object Type 노트>는 지류에 인쇄된 폰트의 형태대로 재단되어, 폰트의 모양을 한번 더 입체로 구현했습니다. 세라믹 스튜디오 슬로렌스Slorence와의 협업 작업물 중 마그넷이 이와 같은 폰트의 형태를 가장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세 가지 폰트의 모양을 그대로 도자기로 만든다면, 이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과도 같은 모양이에요. 

<오브젝트 타입 노트 Object Type 노트>
<오브젝트 타입 노트 Object Type 노트>
<타입 도자 마그넷 Type Magnet>
<타입 도자 마그넷 Type Magnet>

도자공예와 타입디자인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히 디지털 폰트의 형태를 물리적으로 도자기로 만드는 것을 넘어, 하나의 오브제로 재해석한 작업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플럼Plumb 폰트가 새겨진 도자 홀더는 형태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독창적이고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플럼 폰트의 매력이 물성을 가진 입체로 접하니 그 개성이 두드러지더라고요. 실제로 폰트를 의뢰하면서 종종 디지털로 보면 예쁜데, 막상 인쇄물 등으로 만들었을 때는 아쉬운 친구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플럼Plumb은 그런 면에서 오히려 피지컬 세계에서 만나니 매력적이고 장점이 돋보이는 폰트였습니다.

아모픽Amorphic 폰트는 디지털 화면으로 만났을 때 취향 저격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 비정형적이고 곡선의 느낌이 살아있는 폰트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물리적인 형태로 만나니까 마그넷 처럼 작을 때가 더 취향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요. 베이스는 일상의 공간에 하나의 오브제로 진열된다고 상상하면, 화병의 물결치는 듯한 곡선이 식물의 자연스러운 선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콜로코Colloco 폰트가 새겨진 타입 도자 트레이는 안정적인 시도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익숙한 기물-오벌 접시의 형태를 띠고 있고, 기면에 레터링을 새긴다는 전형적인 문법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악세사리 트레이 등으로 쓰면 좋을 것 같은 작고 귀여운 크기였어요. (무엇보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뻐요!) 형태 자체가 목걸이 펜던트를 연상시키는 타원형에, 가운데 이니셜처럼 세리프가 들어간 폰트라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타입 도자 홀더Type Holder> <타입 도자 베이스Type Vase>
<타입 도자 홀더Type Holder> <타입 도자 베이스Type Vase>
<타입 도자 트레이 Type Tray>
<타입 도자 트레이 Type Tray>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기

포스터는 어쩌면 폰트의 가장 일반화된 작업 결과물이겠지만요. 지류 포스터를 놓고 보면 폰트의 형태를 본떠 제작한 도자기의 사진 이미지를 다시 복제해서 만들었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디지털 폰트를 그대로 인쇄하는 게 아닌, 이를 재해석한 이미지를 다시 재조합한 셈이라 디지털과 피지컬의 경계를 뒤섞은 듯한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도자 포스터의 경우 입구에 전시된 도자 포스터가 세 가지 폰트를 뒤섞어서 두 작가의 이름을 표기한 부분이 좋았어요. 표현 기법이 음각과 양각으로 혼재되어 있어 양감과 특징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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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를 느슨하게 또는 본격적으로 다루는 여러 편집숍과 전시 중, 이번 로파 서울의 기획이 눈에 띈 것은 물성을 넘어선 고민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공예는 쓰임과 재료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요. 타입디자인이라는 타 장르와 문제의식과 실험정신을 교차하며, 도자라는 장르의 문법과 경계를 넘어서 선보인 이번 결과물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장르와 물성이 주는 장점이 작품 전반에 잘 드러나는 점도 전시의 완성도를 높였고요. 누타입과 슬로렌스가 함께한 이번 전시는 4월 27일까지 이어지니 기회가 된다면 꼭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누타입 | 서체 베이스 파운드리. 단순히 서체를 그리는 것을 넘어, 사용자들에게 타입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것(nu-new)을 시도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nutype.info 
슬로렌스 | 세라믹 스튜디오로, 흙과 유약의 특성을 탐구하며 일상에 아름다움을 더할 더자 공예품을 만든다. 주로 작고 사소한 행복을 도자기로 빚어, 그 순간들을 곁에 두고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간다. @slorence_
로파서울 | 주로 기획을 통해 아트와 디자인이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해 큐레이션 하는 편집숍. 여러 스몰 브랜드와 창작자들을 소개하고 새로운 문화와 경험의 가치를 전하는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lofa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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