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 현대 도자공예> (~5.6)

2025.03.04 | 조회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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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두갸르송 <추상풍경> 2024 혼합토, 식물, 가변크기 ⓒ클로이
두갸르송 <추상풍경> 2024 혼합토, 식물, 가변크기 ⓒ클로이

미술사를 전공하고 주변부에서 일하다 보면 작품 구입과 소장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림을 사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하나요, 같은 조언을 구하는 질문부터 어떤 그림을 집에 걸어두시나요 같은 개인적 취향에 대한 궁금증 등이요. 공예 이론를 전공한 저는 사실 평면[2D]보다는 입체[3D]를, 고정적인 것보다는 가변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초록색을 좋아해요. 공간 한 켠에 놓인 공예품 그리고 초록은 현대인에게 어쩌면 '영원'히, '지금'도, 그리고 '늘 새롭게' 좋은 느낌을 줍니다.

토분을 만드는 박정진의 두갸르송 <추상풍경>은 그런 취향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자연의 생명력과 형상을 받아들일 때, 저는 종종 추상적인 조형미로 해석하게 됩니다." 늘 빠르게 솔드아웃 되는 두갸르송의 토분 구매자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요. 21세기에도 여전히 공예는 일상과 공존합니다. 때로는 '천하제일 비색청자'나 '달항아리'처럼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거대한 담론의 형태로, 한편으로 집 한켠에 놓고 싶은 예술품이자 미술과 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적 질문으로요.


없음을 기록하는 방법

오세린 <숲 온도 벙커> 2022-2024 혼합토, 안료, 생분해성 플라스틱, 아크릴릭 물감, 가변크기 ⓒ클로이
오세린 <숲 온도 벙커> 2022-2024 혼합토, 안료, 생분해성 플라스틱, 아크릴릭 물감, 가변크기 ⓒ클로이
김지혜 <사랑의 서신> 2022 혼합토, 손선형, 판넬, 가변크기 ⓒ클로이
김지혜 <사랑의 서신> 2022 혼합토, 손선형, 판넬, 가변크기 ⓒ클로이

'한국 현대 도자공예' 전시실을 거꾸로 되짚어갑니다. 지금, 여기의 도자부터요. 오세린이 그리는 <숲 온도 벙커>의 상상 속 계곡 풍경을 물고기가 된 양 천천히 헤엄쳐봅니다. 3D프린트로 뽑아낸 가상의 자연을 전시하고 있는 받침(대)로서의 도자기가 흥미롭습니다. 초록을 전시하는 방식, 흙으로 만드는 형상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듭니다. 

김지혜 <사랑의 서신>에는 손으로 쥔 흙 덩어리들이 그대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형상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이나 언어화되지 못한 생각이라고 해석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흙덩어리-들은 언어가 사라진 평면 위를 직조합니다. 입체적인 여백을 더듬는 시선이 갈 곳 없습니다. 두 작품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방식으로서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이들은 "도예 작업에서 점토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재료라는 점,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서 점토는 마치 '알파벳'과 같은 기본 요소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현대의 도자공예 그리고 공예가는 흙의 재료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저변을 확장하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있음을 기억하기 위하여

김수근 설계, 김영주 도자 외벽 <세운상가> 1967, 장준호 촬영(2024) ⓒ클로이
김수근 설계, 김영주 도자 외벽 <세운상가> 1967, 장준호 촬영(2024) ⓒ클로이
광주요 <분창성감당초문예단세트> 1980-1990년대, 분청토, 상감 ⓒ클로이
광주요 <분창성감당초문예단세트> 1980-1990년대, 분청토, 상감 ⓒ클로이

근현대 한국에서 도자는 여러 산업 영역에 호명되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의 수출의 역군이기도 했고, 특정한 산업 분야를 만나 다양하게 응용되기도 합니다. 1960년대 전후 복구와 맞물려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건물 외벽을 도자 기물이나 파편으로 장식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도 그 중 하나였지요.

전시장에서는 세운상가의 외벽이 김영주의 세라믹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을 짓고자 한 시도였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계획하지 않고 지어져 현재 건물 및 일대가 낙후된 상태로 남아있죠. 세운상가 건물 앞을 숱하게 지나다니면서도 이 도자 외벽을 작품으로 인식한 것이 처음이라 생경하고 새로웠습니다.

증류식 소주 화요와 미슐랭 레스토랑 가온, 비채나로 더 잘 알려있는 광주요는 현재도 다양한 도자기 그릇을 만듭니다. 1980-1990년대의 대표작 격인 분청 장식 기법의 혼수용 그릇의 흔적은 여전히 광주요 '클래식' 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광주요는 '모던' 라인을 통해 새롭게 현대적인 가정용 식기 세트를 선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미각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그릇은 저를 포함해 주위에서도 즐겨 쓰고 있어요.


현대성의 태동과 정체성

유광열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청자정 청자기와> 2005, 청자토, 가압성형 ⓒ클로이
유광열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청자정 청자기와> 2005, 청자토, 가압성형 ⓒ클로이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정> 유광열 해강도자미술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청자 기와를 기증 ⓒ클로이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정> 유광열 해강도자미술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청자 기와를 기증 ⓒ클로이

'한국 현대 도자공예' 전시의 시작에는 청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해강도자 1대 유근형과 2대 유광열은 일찍이 청자 재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광열 선생이 만든 청자정의 청자 기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실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청자 기와는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의 청자정 지붕을 장식하고 있어, 평소에는 멀리서 푸르게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청자정은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설치되었습니다. 『고려사』에는 의종이 지은 양이정(養怡亭)의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기록에 의거해 재현된 작품인 셈이죠. 천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현대에 새롭게 만나게 된 청자정의 모습이 새삼 반갑고 아름답습니다. 고유섭 선생이 전통이란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롭게 파악된' 것이라고 한 의미를 전시에서 새삼 다시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3월의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나면 부쩍 날이 따뜻해질 듯 싶은데요. 봄날의 과천에서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 한국 현대 도자공예를 만나보는 건 어떠신지 나들이 겸 추천해봅니다. 두 번의 연이은 공예 전시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레터는 봄 전시 소식과 함께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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