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Spoiler Alert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이번 리움미술관 «티노 세갈» 전시는 사진 및 영상 촬영이 제한됩니다. 따라서 이번 레터에는 미술관 외벽을 촬영한 위 사진 외에 아무 이미지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뉴스레터의 텍스트 자체가 전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 미술과 퍼포먼스의 난해함과 낯선 충격을 그대로 마주하고 싶은 분, 작품을 감상하기 전 사전 정보를 최대한 제한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은 전시 감상 후 이 레터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레터, 시작합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Don't Panic
아무 정보도 없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는 퍼포머, 속칭 해석자(Interpreters)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이 외치는 노랫말은 "Oh, this is so contemporary!"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2004)>라는 제목처럼 너무 현대(미술)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관객은 당황하거나 황당함을 느끼기도 하고, 멈춰서거나 웃게되기도 합니다. 입구를 들어서며 문득 되뇌어봅니다. "그래, 이게 현대미술이지."
로비는 일상적인 풍경처럼 보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대화를 나누는 사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커피를 손에 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 부자연스럽게 서서 속삭이는 사람이 보입니다.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은 막 넘어진 걸까요, 일어나려는 걸까요? 어떤 동작은 너무 느려서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제야 이 상황 또한 연출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무제(2026)>처럼 우리가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이토록 비-일상적이고 낯선 경험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관람객인지 경계가 흐릿해지고, 관내의 모든 상황에 오감을 열고 집중합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용(無用)하고 아름다운 무용(舞踊)을 감각합니다.
미술관에서 활성화되는 신체 감각은 시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텐데요. 최근에는 이 시각조차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기분입니다. 직간접적인 경험을 선뜻 디지털에 의탁하는 세상이에요. 미술관을 찾기 전 사진이나 영상 등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 미술관을 찾은 뒤 놀랍거나 즐거운 작품을 직접 마주할 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시도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진짜' 풍경은 그 뒤에 있죠, 우리 모두 알다시피.
구성된 상황 Constructed Situation
티노 세갈의 작품은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전시를 찾은 우리도 촬영이 불가합니다. 즉, 티노 세갈의 작품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개별적이고 영속적으로 존재합니다.
전시된 작품은 인간의 신체, 언어, 상호작용만으로 이루어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입니다. 구성된 상황은 해석자라 불리는 퍼포머에 의해 진행됩니다. 앞에 언급한 두 작품을 포함해 총 여덟 작품이 구성된 상황으로서 전시 기간 동안 공개됩니다. 실제로 전시 오픈 직후 방문했을 때는 총 다섯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4월에 야외 정원에 한 작품이 추가되어 여섯 작품을 만날 수 있고요. 나머지 두 작품은 6주마다 교체됩니다.
또한 전시장에서 티노 세갈이 큐레이션한 리움 소장 작품들을 함께 만날 수 있어요. 전시장에 들어서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비즈 커튼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입니다. 또한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을 비롯한 여러 인물상은 '구성된 상황'이라는 일종의 역할극 안에서 개별적인 역할을 수행하거나 상황을 확장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우리가 작품 안으로 걸어들어갈 때, 우리 또한 그 일부가 됩니다.
이 입장 This Entry
전시장 지하 1층에는 좌측에 바로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제프쿤스의 '작은 꽃병'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정면으로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이 입장(2023)>의 소란과 경쾌함을 연상시킵니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네 명의 해석자는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사이클 선수, 무용수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관람 시점에 따라 이들은 따로 또 함께 움직입니다. 숙련된 사람의 행위는 그 자체로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현악기 선율이 전시장을 채우다 문득 비트박스가 연주됩니다. 연주에 맞춰 축구선수의 드리블이 비보잉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발놀림이 되기도 하고, 사이클 선수의 자전거 바퀴가 춤선처럼 발랄하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다른 해석자가 뒤로 물러선 뒤 사이클 선수가 궤적을 그리며 미술관을 돌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전거를 거꾸로 타기도 하고, 한 바퀴로 서서 서커스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비일상적인 풍경, 끊임없이 돌아가는 바퀴의 궤적이 반복적으로 바닥에 새겨집니다.
각 해석자는 행위를 즐기며 몸을 자유롭게 쓰고 소리를 자유롭게 냅니다. 한계까지 사용된 신체, 물체의 관계는 끊임없이 탐색되고 확장되며, 한 세계의 저변을 넓힙니다. 네 사람은 어느 순간 각자 편한 방식으로 모여 대화를 합니다. 대화는 라임처럼 반복됩니다. 라임은 노래가 됩니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미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하나의 세계는 다른 세계로 서로 이어집니다. 다름은 서로 이해하는 단초가 되고 서로를 위로하는 바탕이 됩니다.
키스 Kiss
지하 1층 전시장에서 하나의 비즈 커튼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무대가 펼쳐집니다. 세상에 마치 둘만 남겨진 듯 서로 응시하거나 부둥켜 안은 두 남녀가 보입니다. 구성된 상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키스(2002)>입니다. 두 해석자의 몸짓에서 읽어낼 수 있는 관계, 갈망, 나눔, 포옹, 키스가 천천히 이어집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두 사람의 움직임, 격렬한 감정의 파동이 느리게 재현됩니다. 원초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장면이 강렬하게 관람객을 사로잡습니다.
이 구성된 상황을 둘러싼 로댕의 조각들은 언뜻 이들의 몸짓을 닮았습니다. '키스'의 남성 토르소를 닮은 남자 배우와 '여인 반신상'을 닮은 여자 배우 사이, '비극의 여신'과 '안식의 수호신'이 놓여있습니다. 불안과 평안 사이를 오가는 남녀가 서로를 어루만집니다. '나체'의 육체성은 섹슈얼한 움직임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세 망령'과 '생각하는 사람'이 이 행위를 지켜보는 목격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브' 토르소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고뇌와 원죄들.
고개를 돌리면 좌대를 닮은 의자에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로댕의 조각처럼 느껴집니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신체, 소리. 해석자는 가끔 서로를 끌어안은채 고개를 들고 관람객을 응시합니다. 기꺼이 이 기록되지 않는 사건의 일부이자 목격자가 되어 시청각으로 들어오는 느릿한 자극을 관찰해봅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 And Other Things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매우 마른 신체의 해석자가 천천히 바닥을 구르고 있습니다. <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2000)>은 대개 불편해보이는 자세로, 때로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어지는 몸을 응시합니다. 해석자가 표현하는 신체의 형태가 문득 공간 초입에 함꼐 전시된 '아리아드네 습작'과 굉장히 유사해 보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한다면 단순히 고통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을 댄서의 형상은 지나치게 느린 움직임 속도로 인해 마치 (움직이는) 조각처럼 보입니다.
줄지어 선 조각들은 하나의 서사를 구성합니다. 그 옆에 놓인 권오상의 인물은 철저한 외부인처럼 이 댄서를 지켜보는 듯하기도 하고, 내부인처럼 댄서의 지친몸을 닮은 듯 웅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뒤이어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응시하는 눈, 아리스티드 마이욜의 외면하는 눈이 데칼코마니처럼 놓여있습니다. 이들은 인물-장면-이야기의 목격자이기도 하고, 관조자이기도 하고, 냉소자이기도 한 동시에 단순히 동일 시공간에 존재할 뿐이기도 합니다. 이 구성된 상황을 채우는 것은 관람객의 시선과 해석입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이사무노구치와 안토니 곰리의 작품에 이르면 이 모든 상황과 감정이 응집된 듯한 고독 혹은 담담함이 느껴집니다. 솔르윗의 기하학적 조각이나 무생물에 이르면 이 모든 상황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해요. 이우환의 관계항이 구성된 상황과 각 조각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은유합니다. 뒤이어 강서경과 김홍석의 아슬아슬한 조합과 균형을 마주하고 나면, 존 배에서 미술이라는 신화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 모든 생각이 지나간 자리, 다시 인간. 우리. 지극히 추상화되고 단순한 본질을 표현하는 조각을 마주합니다. 다시, 구성된 상황 속 해석자를 바라봅니다.

*이 글은 실제 전시장에서 관람 중 천천히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 되었으며, 개인적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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