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미술은 재고가 있나요?

이미지 재난 시대의 ”삭는 미술“

2026.03.03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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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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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가본 적이 있나요? 미술관의 얼굴은 전시실이지만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수장고’입니다. 미술관은 인류의 공통 재산이라고 여겨지는 미술품을 보관, 보존하고 후대에까지 물려줘야 하기 때문에 수장고에 쌓여가는 작품을 어떻게 관리할지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미술관이란 한편으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재고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작품과 이미지가 재난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미술관과 미술품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한히 늘어나는 수장고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죠. 미술이 삭는다는 것처럼요.


이미지 재난의 시대

우리는 이미지의 재난 속에서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수없이 사진과 영상을 제작해서 인터넷 상에 업로드하고 있죠. AI는 그간 축적된 막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서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어요. 미술이 시각적 스펙타클을 담당했던 시절은 지나갔고, 이미지는 홍수처럼 인류를 휩쓸어내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술 역시 이미지 재난을 거들고 있죠. 작가들은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 작품들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는 쉬지 않고 전시를 열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있어요. 스와이프 동작 몇 번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미술가의 작품 역시 쉽게 소비되고 사라집니다. 관람객들은 쉽게 다른 작가를 찾아나서기도 하죠.

이러한 시대에 ’불후의 명작’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삭는 미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미지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짚어냅니다. 우리 시대에는 ‘불후의 명작’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선언이면서 미술품이 재고가 되지 않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과잉의 재난을 교란시키기

우리는 작품이 무한히 생성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한 작가가 살면서 ‘명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을 몇 개나 그릴 수 있을까요? 세상을 놀래킬 수 있는 개념 미술을 몇 개나 내놓을 수 있을까요? 작가의 의무가 부지런히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손 치더라도 LLM의 시대에 이미지가 생성되는 것보다 빠르게 작품을 내놓을 수는 없겠죠.

전 세계 갤러리와 미술관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내고,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비평을 통해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상 이 속도는 작품을 소비하는 속도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작가와 작품은 빠르게 소비되고 또 다른 작가와 작품으로 대체되죠. 이러한 속도전에서 “삭는 미술”은 오히려 썩음으로써 과잉소비에 저항합니다.

”삭는 미술“이란 기존의 미술 시스템을 교란시켜 놓습니다. 첫째, 이미지의 원본성이죠. 썩는다는 것,  종래에 사라지는 이미지는 원본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죠. 계속 진행되는 현상이기 때문이에요. 둘째, 거래 가능성입니다. 작품을 소장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삭는 미술”을 소유하거나 소장할 수 없습니다. 썩는 것이 목표인 작품을 영구히 소장하기 위해 보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셋째, 명작의 기준입니다. 기존의 미술사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을 변화시킬 수 있죠. 과잉의 시대에 필요한 기준으로서 지속가능성, 동물권이 중요하게 대두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두번째 지점은 미술관의 기능과 대척점에 서있죠. 미술관의 기능 중 하나는 ‘영구소장‘에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가라는 것은 즉, 공공성을 활용하여 공통의 재산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후대에까지 물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전제되어 있죠.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향하는 작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미술품 소장의 딜레마

’현상‘으로 존재하는 미술품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누가 ’소장‘할 수 있을까요? 

에드가 칼렐은 이 딜레마를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그들은 나를 팔아요/나를 팔지 마세요>는 문화를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는지 질문하죠. 마을 풍경을 그린 그림의 전면부에는 스페인어로 “그들이 나를 팔아요”라고 쓰여있고 후면부에는 “나를 팔지 마세요”라고 칵치켈어로 쓰여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과테말라의 흙을 사용했어요. 이것은 결코 문화 그 자체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회화를 통해 보여주는 현상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테말라의 흙에는 의미가 없지만 에드가 칼렐의 작품이 되는 순간 부가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얻는 권리라고는 문화와 자본주의 사이의 딜레마죠.

”우리는 미술을 사고 팔 수 있습니까?“ 라고 미술이 질문할 때, 자본주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도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삭는 미술“은 자본주의의 가치 체계에 혼란을 주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개념미술과 퍼포먼스를 거래해왔던 방식으로 상품화될 수 있죠. 과테말라의 흙과 문화라는 개념을 실제로 거래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나를 팔아요/나를 팔지 마세요>는 역설적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재고가 되지 않기를 선택한 것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작품은 없어지고 있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브라운관 노후화 문제를 안고 있죠. 작품의 개념은 온전하지만 TV가 물리적으로 낡아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넉넉히 어림잡아도 백 년 후에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작동하는 <다다익선>을 보기는 어렵겠죠. 그렇다면 완전히 멈춘 <다다익선>은 더 이상 작품이 아닐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멈추었더라도 그 TV를 폐기할 수는 없겠죠.

반대로 “삭는 미술”은 마들어지는 순간부터 사라지고 싶어합니다. 명작이 되어 영원히 박제되는 것을 거부하죠. 개념 미술이 생각을 물질화하여 현실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면, “삭는 미술”은 현상으로서 존재한 뒤에 없어져 버리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삭아가는 미술품은 수장고에 소장되더라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죠. 기존의 명작이라는 개념에 저항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많은 미술품은 전시되는 기간보다 수장고에 수납되어 있는 기간이 훨씬 깁니다. 게다가 함부로 폐기할 수도 없죠. 유통업 관점에서는 보관료만 내고 있는 악성 재고에 가깝습니다. “삭는 미술”은 미술이 재고가 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면, 그 기간동안 마음껏 누리는 것이 더 좋으니까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6.1.30 ~ 2026.5.03.

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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