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ce Far Niente.
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엘리자베스가 배운 말입니다. 뉴욕의 소모적인 일상 속에 자신을 잃고 로마로 도망치듯 떠나온 엘리자베스에게, 이탈리아 친구들은 말합니다. 번아웃이 올 때까지 일하고, 쉴 때조차 콘텐츠와 물질을 소비하기 바쁜 미국인들은 삶을 즐기는 기쁨을 모른다고. 그저 쉼이 필요할 때 집에서 낮잠을 자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것, 그것이 바로 Dolce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라고요. 햇살이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엘리자베스는 집에서 뒹굴거리다 느즈막히 요리한 아스파라거스를 한 입 베어물며 되뇌입니다. “Dolce far niente.”
이토록 매력적인 이탈리아어를 3월의 어느 날, 한남동의 파운드리 서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라는 이탈리아의 개념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번 전시는 멈춤을 무기력함이나 비활동의 상태가 아닌, 감각과 인식이 응축된 현존으로 재정의한다. 이는 생산성, 속도, 효율성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동시대 조건에 저항하는 하나의 적극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 파운드리 서울 «Dolce Far Niente» 전시 서문 중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아트 어드바이저 Irina Stark와 파운드리 서울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그룹전 «Dolce Far Niente» 는 미국과 아시아 등에서 활동하는 작가 11명의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 작업들을 ‘무위(無爲)’ 그 자체가 곧 존재인 순간들로 엮어냅니다.
그저 ‘우리다움’ 으로 존재하는 순간들
픽시 랴오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때 아이처럼 “그냥” 즐거웠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릴없이 무릎베개를 베고 잔디밭에 누워 있거나, 침대 위에 늘어져 꽁냥거리던 둘만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새어나옵니다.

픽시 랴오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제도적인 교육과 사회 관습에서 벗어나 사진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멤피스 대학교로 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평생의 반려자이자 뮤즈, 모로를 만나요. 모로와 함께한 순간들을 셀프 사진으로 기록하는 Experimental Relationship 프로젝트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입니다. 남성, 여성의 성 역할 구분을 떠나 오롯이 픽시와 모로 둘이서 만들어가는 관계가 렌즈에 담겨서 일까요, 둘의 순수한 친밀감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뒹굴뒹굴, 데굴데굴 가장 행복한 시간
맨발로 폭신한 러그를 꼼지락 거리며 느껴본 경험, 다들 있으시죠? 약속 없는 주말, 거실에서 좋아하는 예능을 틀어두고 페디큐어를 칠하는 시간은 어떠실까요. 떠올리기만 해도 조용한 기쁨이 차오릅니다.
아침 김조은은 자신을 돌보는 행위를 담아냅니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회복의 순간이, 프레임에 고운 린넨 레이어에 일상이 묻어나듯 그려집니다. 속도를 늦추고 오롯히 잡아둔 나만의 시간에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들을 일깨워주는, 그런 포근한 힘을 가진 작품이에요.
너무 세밀해서 만져보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 빅토리아 가트만의 작품입니다. 클로즈업한 사진이지만 실제로는 한뼘이 채 되지 않는 아주 귀여운 사이즈에요. 작가는 지긋한 관찰의 시간을 거쳐 다양한 표면이 지닌 고유하고 미묘한 텍스처를 표현해 냅니다. 한올 한올 정성들여 그려냈기 때문일까요, 이 작은 네모 앞에서 마치 지금 맨발로 러그를 딛고 있는 듯 감각이 깨어나고 아늑한 털과 연결된 기억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놓네요.
고요해서 더 아름다운 내면의 시간
전시장 중앙에는 도자기로 피어난 정원이 있습니다. 꽃 같기도 하고 바닷 속 해초 같기도 합니다. 각자의 몸짓으로 살아 숨쉬는 것 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Plant a Garden and Watch It Grow 라는 작품의 제목과 느낌이 통하네요. 미국의 흙을 한국의 유약 기법으로 구워내는 실험을 해오는 작가 세 오의 작품입니다.
유약의 색과 칠한 방식, 그리고 형체들이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기에 더욱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멈춘 듯 하지만 살아 숨쉬는 세라믹 정원 앞에서 잠시 멈추어 조용히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관객은 Dolce Far Niente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꾸려고 하지 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그냥, 하지 마.
정적인 작품들 사이로 영상이 하나 재생됩니다. 이집트 작가 바심 마그디의 13 Essential Rules for Understanding the World는 개인들이 불안정한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풍자하듯 뒤집는 지침을 말합니다.
그 무엇도 바꾸려고 하지 마. 너 자신도 못 바꿀 거면서.
논리를 쓰지 마. 추상적인게 원래 이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이야.
삶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뒤엉킨 복잡한 그물망이야. 그 어떤 확정적인 것도 말하거나 믿지 마.
역설적으로, 무조건 이것만 따라하라며 무수히 쏟아지는 쓰레드가 생각나네요. 우리는 늘 마음이 바쁩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몇가지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캡쳐하고 필사적으로 따라가느라. 어떻게든 성공에 가까운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시뮬레이션하고 계산하고 준비합니다. 바심 마그디의 지침처럼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데 말이죠.
느슨하지만 충분한 연결고리로 작품들을 엮어낸 기획 의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내면의 감각을 깨우는 신선한 자극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잠시 멈추어 각자의 내밀한 순간들을 떠올려볼 수 있는 전시였어요. 가볍지 않은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만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파운드리 서울의 이번 «Dolce Far Niente» 전시는 기분 좋음과 사유의 깊이 그 사이의 절묘한 지점을 끌어낸 전시입니다. 11명의 작가가 담아낸 멈춰 선 순간의 가치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이번 봄 한남동 전시 나들이는 어떨까요. ✨
전시 정보
Dolce Far Niente
파운드리 서울
2026.3.21 - 20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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