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로케이션 릴레이션십

이우성,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갤러리 현대

2026.04.21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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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보셨나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여러 맥락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배‘라는 형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점이 있어요. 한 사회에서 장소를 박탈함으로써 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관계를 끊어내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한 자아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방식의 가혹한 형벌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이우성 작가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풍경과 인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관계성의 탐구에 기꺼이 뛰어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나의 영토

<골목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2024-2026. Acrylic and acrylic gouache on canvas 130.5x162.5cm 부분
<골목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2024-2026. Acrylic and acrylic gouache on canvas 130.5x162.5cm 부분

이우성(b.1983)작가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세계란 사람을 구성하는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들은 대개 일상 속 한 장면이죠. 서울의 모처에서 한강대교를 바라보는 풍경, 제주도의 명소, 부산 온천장의 어느 골목을 캔버스로 옮겨옵니다. 이렇게 이우성이 그려낸 풍경들은 일상에서 놓치기 쉽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기도 하면서 인류학자 김현경이 말하듯 ’사람들을 환대하는 장소의 역할‘인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회사와 같은 장소들은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관계가 됩니다. 이러한 관계를 박탈시켜 자아를 훼손하는 형벌이 ‘유배‘인 셈이죠. 현대에 이르러 ’영토’란 개념은 고정되어 희미해졌지만 한 사람 개인에게 ‘영토’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우리에게는 ‘영역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 교통에서 유난히 자주 앉는 자리가 있나요? 환경심리학적으로 ‘이차 영역’에 해당하는데요. 자주 앉는 자리에 타인이 앉아있다면 ‘심리적 침범‘을 당했다고 여기기도 하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영역을 만들고 그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에서 그림 속 인물들은 관객들에게 “당신에게는 어떤 영토가 있나요?”라고 물어봅니다. 나를 구성하고 있고 내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풍경에 대한 질문입니다. 결국 ‘나’라는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가족, 친구와 같은 사람과의 관계도 있지만 어떤 장소와 맺고 있는 관계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풍경과 연루됨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2025. Acrylic and acrylic gouache on canvas 130.5x162.5cm 부분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2025. Acrylic and acrylic gouache on canvas 130.5x162.5cm 부분

작품 속 인물들은 행복한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있기도 하고, 반려동물과 눈을 마주치고 있기도 합니다. 해변에서 행복한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있죠. 이러한 행복한 순간들을 포착해냈을 때 ’나‘를 구성하고 있는 행복한 장소를 관람객들은 스스로 찾아내게 됩니다. 

냄새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프루스트 효과”처럼 관계를 맺은 장소를 우리는 영원히 그리워하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고향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피난처일 수도 있겠죠. 저에게는 통영, 밴쿠버와 같은 도시들이 그렇습니다. 두 도시가 제게는 구난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퇴근길 한강대교>, 2025-2026. Acrylic and acrylic gouache on canvas 130.5x130.5cm 부분
<퇴근길 한강대교>, 2025-2026. Acrylic and acrylic gouache on canvas 130.5x130.5cm 부분

지난 작업과는 달리 사실적으로 표현한 풍경과 상황을 보고 관람객은 쉽게 자신의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를 떠올립니다. 또한 작품 속 장소를 알고 있다면 관람객들은 그 장소에 있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죠. 만약 풍경이 추상적으로 표현되거나 어디인지 특정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면 관람객들은 그 장소와 연루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봐도 알겠는 장소라면 그 장소에 추억이 하나라도 있는 관람객이라면 그림들과 내밀한 관계가 되죠. 한강대교를 그린 작품을 보면서 저는 캔버스 속 풍경이 보이는 서울의 장소를 열심히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사실적인 풍경, 간판의 글씨까지 표현한 풍경이라는 것은 현실의 관람객에게 강력한 힘을 행사합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나‘는 작품에 묘사된 세계로 뛰어들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모든 작품은 관람객이 각자의 사적인 장소를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죠. ‘나‘는 작품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연루됩니다.

 

로케이션 릴레이션십

저는 이렇게 연루된 장소에 대한 기억을 ’로케이션 릴레이션십‘이라고 씁니다. 지금 스마트폰을 열어서 갤러리에 지도를 펼쳐보세요. 혹은 자주 쓰는 지도 앱을 열고 기록해둔 위치를 살펴보세요. 우리는 온갖 장소와 깊게 연루되어 있어요. 뗄레야 뗄 수 없는 이 관계에 대해서 이번 이우성의 개인전으로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그 장소에 ”답“이 있을 겁니다.


이우성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갤러리 현대

2026년 3월 18일 - 2026년 4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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