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민화의 매력

갤러리현대 민화 특별전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화이도>

2026.02.24 | 조회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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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까치호랑이, 19세기 종이에 채색
까치호랑이, 19세기 종이에 채색

구독자님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까치가 물고 올 행운과 액운을 물리쳐주는 호랑이의 힘이 담긴 호작도로 인사드려요.

입춘과 구정이 지났으니 이제 정말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은 것이 실감이 납니다. 새해에는 희망찬 소망도 기록해 보고, 몸과 마음가짐도 괜시리 더 조심하게 되지요. 부정의 기운 따위는 얼씬도 못하게 하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일은 비단 설날만의 풍습은 아닙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구복사상과 잡귀와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 삶의 어느 한 곳이라 할 것 없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윤열수, 『알고 보면 반할 민화』 중

구복과 벽사는 지금도 우리의 일상, 그리고 크고 작은 시작에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입춘대길을 문 앞에 붙이고, 힘든 일이 일어나면 액땜했다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듯 말이죠. 이렇게 진솔한 마음이 가장 잘 담긴 예술이 바로 우리의 민화입니다. 갤러리현대에서 조선시대의 궁중화와 민화부터 오늘날 현대 민화 작가들의 작품까지 한데 모은 멋진 전시가 열려 삼청동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좋은 것만 골라담은 소망의 그림

갤러리현대 본관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전시는 조선 후기 궁중화와 민화 27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호도, 화조도, 장생도, 화조도, 책거리, 문자도까지 민화를 소개하는 책에서 보던 대표적인 소재가 골고루 모여 있어, 조선시대 실용 예술의 스펙트럼을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병풍 속 대상은 다양하지만, 결국 의도는 같습니다. 신비로운 힘, 장수, 다산과 화목, 부귀영화 등 삶에서 꿈꾸고 바라는 가장 좋은 것들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 좋은 기운이 그림을 곁에 둔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요. 

호피도, 19세기, 종이에 수묵, 222 × 435cm 
호피도, 19세기, 종이에 수묵, 222 × 435cm 

호피로 가득찬 병풍을 보니 사극에서만 보던 세도가의 집안에 과연 이런 그림이 놓였겠구나 싶습니다. 사냥한 호피를 여러 장 걸어둔 듯, 힘의 과시가 느껴집니다. 서로 다른 호피무늬가 마치 진짜 호랑이 등 같은 역동감도 줍니다. 그 위풍당당함이 가정의 평안과 권위, 명예를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수호신처럼 지켜주었을 것만 같은 민화입니다. 

 

책거리, 19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179.5 × 379cm 
책거리, 19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179.5 × 379cm 

이번에는 마치 조선시대의 위시리스트처럼, 진귀한 문구와 장식품으로 채워진 책거리를 볼까요? 책과 문방사우, 생활용품이 담긴 책거리는 주로 선비의 사랑방에 놓였습니다. 책들 사이사이로 많은 아들을 상징하는 석류나 부귀를 뜻하는 모란, 남녀의 화합을 뜻하는 과실들이 보이고, 청에서 온 귀한 문양의 소품들도 보입니다.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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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자랑할 만한 화려한 장식품이 되어주기도 하고, 공부방에 두어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등 쓰임이 참 다양했던 책가도는, 의미와 구성이 요즘 우리 일상 공간에 두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봉황공작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243 × 734cm
봉황공작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243 × 734cm

가로폭이 7미터가 넘는 이 봉황공작도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영험하게 활개를 펼친 봉황과 공작의 강렬한 기운에 놀라고, 사진에 한 번에 담기 어려울 정도인 크기에 압도됩니다. 역시 이만한 스케일을 둘 수 있는 곳은 궁궐밖에 없겠다 싶었는데, 놀랍게도 이 거대한 봉황공작도는 궁중화아닌 민화입니다.

과거 궁중 도화서 화원은 궐 밖 청계천 광통교 자리에 위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궁중 화원이 그린 그림도 민화와 함께 거래되었고, 돈이 있다면 왕실 수준의 그림을 감상하고 소유할 수 있었죠. 소비자들은 궁중화 같은 민화를 찾았고, 궁중 화원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민화의 트렌드를 궁중화에도 조금씩 적용하면서 궁중화와 민화는 표현의 연결고리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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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 밖 누군가가 주문제작한 이 봉황공작도에는 공작의 깃털과 불로초, 소나무, 모란, 복숭아, 산수까지, 정말 한 폭에 최고 좋은 것들이 다 담겼습니다. 공작의 벼슬과 다리 표현이 너무나 세밀하여 마치 실재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힘이 느껴집니다. 색채와 상징, 표현과 규모감이 발산해내는 상서로운 기운에 한참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민화를 그리는 현대 민화 작가들

 

갤러리현대 신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화이도 畫以道, The Way of Painting> 은 민화를 표현의 방식으로 꾸준히 발전시켜온 현대 작가 6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화이도 전시 포스터
화이도 전시 포스터

꿈틀대는 호피 속 번뜩이는 눈 - 강렬하면서도 감각적인 이 포스터를 보고 이번 전시를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5> 에 선정된 김지평 작가의 <범의 머리를 담그면 비가 내린다> 를 크롭한 이미지입니다. 2013년 작품이지만 먹의 농담으로 호피를 표현하고 얼룩덜룩한 세월까지 그려내, 조선시대 민화인지 현대 작품인지 분간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꿈틀거리며 뒤엉킨 호랑이들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하나의 눈으로 과감하게 표현한 지점에서 동시대 회화임이 느껴집니다. 

김지평, 범의 머리를 담그면 비가 내린다, 2013, 옻칠, 한지에 먹, 호분, 100 × 155cm
김지평, 범의 머리를 담그면 비가 내린다, 2013, 옻칠, 한지에 먹, 호분, 100 × 155cm

색과 농담, 질감의 표현은 과거의 민화를 담고 그 구성을 새롭게 그려낸 호랑이 그림과 다르게, 김지평 작가의 책거리는 그 구도는 옛날 책거리와 같지만 다양한 소재를 콜라주처럼 오려붙인 표현 방법에서 모던함이 느껴집니다. 민화에 모티프를 두고 이처럼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나가는 김지평 작가의 이어지는 작품세계가 자꾸만 더 궁금해집니다. 

김지평, 더블스크린, 2025, 2폭 가리개 병풍: 한지에 장황 재료 콜라주, 144 × 104 × 2cm
김지평, 더블스크린, 2025, 2폭 가리개 병풍: 한지에 장황 재료 콜라주, 144 × 104 × 2cm
김지평, 장황 시리즈, 책거리, 한지에 안료, 장황 재료 (색한지, 비단, 비단띠) 콜라주
김지평, 장황 시리즈, 책거리, 한지에 안료, 장황 재료 (색한지, 비단, 비단띠) 콜라주

 

이두원 작가의 호랑이 타피스트리와 페인팅을 보는 순간, '이국적이다'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전시장 중앙에 넓게 깔린 울 타피스트리 호작도 너머로 걸려있는 아프리카 초원의 석양을 닮은 핑크빛 호작도가 전달하는 그 신선한 자극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외국인, 소외된 남반구 세계와 비서방 세계 예술에 대해 조명했던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다국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거리낌 없이 하는 '범상치 않은' 작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두원, 소나무 아래 도깨비 호랑이와 까치 (아래) 2025, 울 카펫, (위) 2026, 수제 울에 먹, 아크릴, 과슈, 울실 스티치
이두원, 소나무 아래 도깨비 호랑이와 까치
(아래) 2025, 울 카펫, (위) 2026, 수제 울에 먹, 아크릴, 과슈, 울실 스티치
이두원, 호랑이 산책도, 2026, 크래프트지에 유성 색연필, 과슈, 아크릴, 잉크
이두원, 호랑이 산책도, 2026, 크래프트지에 유성 색연필, 과슈, 아크릴, 잉크

1982년생의 이두원 작가는 대학에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며 현지에서 구한 재료들과 그곳에서 느낀 감정, 경험, 자연으로부터의 영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합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도 없고 울에 먹과 아크릴, 자개, 비즈를 쓰는 등 틀에 갇히지 않은 시도를 하여 이미 영국 사치 갤러리 개인전, 뉴욕 아모리쇼 솔로 부스 등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다음으로, 궁중화와 민화 모티프를 현대 공간에 가장 잘 어우러지게 그려낸 정재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갤러리현대 신관 뒷편 고즈넉한 두가헌 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큰 일월오봉도를 중앙에 두고 8호 가량의 작은 일월오봉도 시리즈가 펼쳐집니다. 금분, 은분으로 세밀하게 표현된 일월오봉도의 형상은 동일하지만, 색감은 모두 다릅니다. 밤의 조명에 어울리는 일월오봉도부터 고요한 아침의 일월오봉도까지 공간과 취향에 따라 마음이 가는 나만의 일월오봉도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줍니다.

정재은, 일월오봉도, 2025, 옻지에 분채, 봉채, 먹, 금분, 은분, 45 × 34.5cm
정재은, 일월오봉도, 2025, 옻지에 분채, 봉채, 먹, 금분, 은분, 45 × 3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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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월오봉도는 어좌 뒤 장엄한 상징으로만 여겨졌는데, 은은한 빛으로 채색된 정재은 작가의 일월오봉도를 보니 위엄 보다는 하늘과 땅, 산과 물이 만나는 조화로움과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정재은, 책거리, 2025, 옻지에 분채, 봉채, 먹
정재은, 책거리, 2025, 옻지에 분채, 봉채, 먹

정재은 작가의 책거리 또한, 전통적인 메타포를 세밀하게 그려내면서도 모던한 현대 공간에 잘 어울리는 색감과 구도를 갖추었습니다. 생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실용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화인 만큼, '우리 집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민화의 본질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 정재은 작가의 민화는 그런 그림입니다. 편안하면서도 소담하게 담긴 전통적인 상징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일월오봉도나 책거리를 어디에 걸어두면 좋을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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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장엄과 창의:한국 민화의 변주>, <화이도(畫以道)>

갤러리 현대 본관, 신관, 두가헌 갤러리 

2026년 1월 14일부터 2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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