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가 흩날리는 4월의 주말, 아트페어에 다녀왔습니다. 3월 아트바젤 홍콩에 연이어 서울에서도 아트 오앤오와 화랑미술제가 열려, 아트 애호가들에게는 축제같은 기간이자 컬렉터와 갤러리들에게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분주한 시간이었죠.
아트페어는 이름 그대로 박람회라, 여러 갤러리들이 각자의 부스에서 소개하고 싶은 작가를 홍보하고, 잘 팔릴만한 작품을 전시합니다. 다양한 작품을 한 번에 접할 수 있어서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굴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매년 아트페어를 가다 보면, 특정 작가의 변화나 요즘 미술 시장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읽히기도 해요. 게다가 작품 가격과 판매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시장의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있죠. 아트페어의 이런 특징을 알면, 매년 찾아오는 예술인들의 축제를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MZ 컬렉터가 만든 신생 페어, 아트 오앤오

아트 오앤오 (ART OnO - ART One and Only) 는 2024년을 처음으로, 올해로 3번째 개최되는 페어입니다. 90년대생 컬렉터인 노재명 대표가 시작한 페어로 주목을 받았고, Young and Fresh but Classy 를 가치로 작품의 가격이나 작가의 명성, 참여 갤러리의 규모 보다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양질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소개 그대로 “요즘 참 잘하는” 작가와 갤러리를 만날 수 있고, 감도 높은 취향의 컬렉터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요.
올해는 새롭게 전남도립미술관과 수원시립미술관, 사립미술기관인 송은의 부스도 함께 마련되었습니다. 판매를 위한 작가를 선보일 수밖에 없는 갤러리의 한계를 넘어, 비영리 미술기관의 참여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반가운 시도였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소장한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울라프의 사진입니다. 표정과 감정을 화이트 마스크 뒤로 숨긴 채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는 듯한 모습이 마치 제 모습 같아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위생장갑까지 낀 채 편리한 도시 시설을 이용하지만 어딘가 갑갑하고 지쳐 보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온 사회를 지배했던 거리두기와 위생에 대한 압박감이 연출된 한 장의 프레임에 강렬하게 담겼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 경험한 시기에 공감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 - 이것이 바로 동시대 미술의 매력이겠죠.

아트 오앤오에 방문했던 날이 마침 서울의 벚꽃이 절정이던 주말이었어요. 전시장에 가던 길, 맑은 하늘과 만개한 벚꽃을 보며 봄을 만끽했던 순간이 기억나네요. 전시장 중앙에서 이 순간의 감각으로 저를 데려다놓는 힘을 가진 회화를 만났습니다. 송은의 솔로 부스로, ‘기억의 파편’을 주제로 작업하는 김지선 작가의 작품들이 무빙 캔버스로 여러 겹 배치되어 있습니다. 캔버스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거닐다 보면 그 때 그 곳의 나와 마주합니다. 여행지의 낯선 산책로를 걷던 기억, 창 밖의 비를 바라보던 밤 같은 기억의 순간들을요.
젊은 이미지가 강한 페어다 보니, 새로운 재료와 방법으로 “지금 우리”를 표현하는 젊은 작가들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스페이스 소 갤러리의 석예지 작가를 만났을 때 큰 신선함과 반가움을 느꼈어요. 1989년생 석예지 작가는 고대 석상과도 같은 과장된 신체 표현, 3D 렌더링과 그래픽 작업을 통해 오묘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디지털 이미지를 만듭니다. 도파민에 절여져 혼란스럽고,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한 요즘 세대의 감정이, 장면 속 흐릿한 인물의 동공과 제스쳐에서 느껴집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강철규 작가도 1990년생의 젋은 작가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해서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허구의 세계 속 사냥하는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면서까지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은 삶에 대한 저항과 공격일까요, 두려움을 떨치는 용기일까요. 작품 구석구석 등장하는 픽션적 상징물들을 바라보며 나만의 상상과 공감을 해보는 것도 작품과 개인의 은밀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험일 것입니다.
모든 갤러리는 평등하다, 화랑미술제
화랑미술제 부스 배치도입니다. 모든 갤러리 부스의 사이즈가 6×6m로 동일합니다. 갤러리 규모에 상관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작가를 소개할 기회를 줍니다. 같은 공간에 주력 작가 여럿을 소개하는 곳 도 있고, 한 명의 작가를 집중해서 소개하는 솔로부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트페어인 만큼, 유서 깊은 갤러리부터 신진 갤러리까지 한국 화랑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상반기 최대 아트페어로 화랑미술제의 판매 실적이 곧 가을 키아프, 프리즈로 이어지는 올 한 해 미술 시장의 온도감을 파악할 수 있죠.

아트페어에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특별히 마음이 가고 자꾸만 생각나는 작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화랑미술제에서 저는, 리안갤러리 윤종숙 작가의 대형 캔버스 작품이 참 좋았습니다. 온양에서 태어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활동 중인 윤종숙 작가는, 어린 시절 경험한 온양의 풍경과 인상을 표현합니다.

고운 색감의 일렁이는 숲과 하늘, 그리고 호수. 보는 사람 마다 연상되는 감각은 다르겠지만, 색면과 붓칠의 레이어가 만들어내는 포근한 에너지에 이끌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말없이 그저 감상하게 됩니다. 밝지만 전혀 가볍지 않고, 그 자체로 충분하며, 웅장한 힘까지 느껴지는 회화에요. 분주한 페어 속에서도 마치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를 마주했던 순간 처럼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부스 규모가 제한되어 있고, 참여 갤러리도 많다 보니 전략적으로 한 명의 작가만 소개하는 갤러리도 많습니다. 솔로부스는 전속작가를 집중해서 소개하여 작가의 성장을 돕고, 대중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이번 화랑미술제에서 아트사이트 갤러리는 권소진 작가의 솔로부스를 열었습니다. 권소진 작가는 우리가 그림 같다고 부르는 순간들,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진짜 하늘인듯, 하늘 그림 벽지인듯, 꿀벌 스티커인듯, 그림인듯 - 콜라주처럼 대상들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조합하여 색다른 시각적 자극을 줍니다. 캔버스 프레임의 테두리도 채색을 하여, 마치 캔버스가 빛이 나는 듯한 경험도 만들어냅니다. 현실과 그림의 경계를 개구장이처럼 넘나드는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 세계도 기대가 됩니다.
아트페어 즐기는 꿀팁!
우선 부담없이 갤러리 부스들을 누벼보세요.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거나 관심이 가는 작가가 있다면, 부스의 담당자에게 설명을 부탁하셔도 좋아요. 운이 좋으면 작가님께 직접 설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 작품의 감상 경험을 설명으로 규정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작가분들도 많아서, 갤러리스트 분들에게 작가의 스토리와 이력, 시장의 반응들을 입체적으로 듣고 추천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구매 의사가 있다면 구매 가능 여부와 가격대를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이후에는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편하게 갤러리와 소통하시면 됩니다. 참 쉽죠?
4월 넷째주에는 신진작가를 핫플레이스 성수에서 소개하는 더프리뷰 아트페어가, 5월에는 상반기 최대 글로벌 아트페어 아트부산이 벡스코에서 열립니다. 블루칩 작가들 그리고 글로벌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두 페어의 성격도 다르니, 취향에 맞는 아트페어를 방문해보셔도 재밌을 거에요. 다음 아트페어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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