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보이는 것, 본다는 것

박찬경 «안구선사» 국제갤러리

2026.04.07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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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션 1> 2025, Acrylic and pigments on paper, 87x118cm
<프로젝션 1> 2025, Acrylic and pigments on paper, 87x118cm

우리가 서로를 영원히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 다른 세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각' 예술 전시를 방문하는 것은 작가가 '본' 세계를 다시금 들여다 '보는' 경험이지요. 박찬경의 <프로젝션> 연작은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냅니다. (그의) 뽑힌 눈알로, 뽑힌 눈알에 비친 세상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발광하는 그 눈알로. 날것의 감각기관은 직관적이다못해 경건하고 숭고합니다.

한국의 절에는 구지선사 그림을 종종 볼 수 있다. 손가락 하나를 세워 깨우침을 주었다 해서 구지선사로 불린다. 한 동자승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구지선사를 흉내내자 그는 제자의 손가락을 베어버렸다 하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잘려 경악하는 제자의 모습이 주로 그려진다. 안구선사는 구지선사 그림을 차용해 새로 지어낸 이야기이다. <안구선사> 해설 

손가락 하나를 세워 구지선사를 흉내내는 제자는 겉으로 보이는 외양만을 답습하는 의미 없는 행위자입니다. 오히려 손가락이 잘리고 나서야, 눈이 뽑히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존재죠.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형태도 양식도 필요 없습니다. <안구선사>는 선문답 끝에 드디어 제대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알게 된 제자처럼, 뽑힌 눈알을 바닥에 버리고 웃으면서 길을 떠나겠다는 박찬경의 거대한 농담이자 출사표인 셈입니다.

<프로젝션> 연작, 2025, Acrylic and pigments on paper, 87x118cm each
<프로젝션> 연작, 2025, Acrylic and pigments on paper, 87x118cm each

보이는 것

(좌) <백양사> 2025, Oil on canvas, 180x70cm(2 panels) (우) <혜통선사> 2025, Oil on canvas, 80x80cm(2 panels); 112x162 cm(1 panel)
(좌) <백양사> 2025, Oil on canvas, 180x70cm(2 panels) (우) <혜통선사> 2025, Oil on canvas, 80x80cm(2 panels); 112x162 cm(1 panel)

박찬경의 눈에 보이는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전통과 민간신앙의 렌즈로 본 '시각적' 세계는 <백양사>(좌)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백양사 외벽의 도상을 닮은 분할된 패널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아시아 고딕'적입니다. 동양에서 묘사하는 기이하고, 기묘하고, 현학적인 것들은 서양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고딕, 그로테스크, 이異현실주의(irrealism)과 통합니다. 

새와 나무, 돌, 승려의 형상.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보면 <혜통선사>(우)의 그림은 조금 어색합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원근법도 맞지 않고, 묘사된 문방사우 등이 지나치게 도식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눈조차도 배경을 흐릿하게,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 하듯이. 중요한 것을 정확하게 보는 것. 

신라의 혜통선사는 불법을 전해주지 않는 스승 무외삼장에게 화로를 머리에 이고 가 배우고자 하는 결의를 보였다고 한다. <혜통선사> 해설

보아야 할 것을 아는 것.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본다는 것을 아는 것. 세상을 보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화로를 머리에 이고 나서는 뜨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우주를, 전통과 민간신앙을 작가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봅니다.

<혜통선사> 세부
<혜통선사> 세부

본다는 것

<동굴이 안다> 2026, Oil on canvas, 130.5x162cm
<동굴이 안다> 2026, Oil on canvas, 130.5x162cm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돌은 전통적인 기암괴석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특히 기이한 돌을 그린 괴석도는 대개 구멍이 뚫린 형태가 많은데요. 돌을 관조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보면 캄캄한 구멍 사이로 또 다른 세상, 우주만상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돌과 구멍-허공은 각종 매체에서 득도의 상징처럼 곧잘 등장하죠. (에에올-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을 생각하셨다면, 맞습니다.)

내게는 옛 괴석도가 이미 '인간 없는 우주'를 풍부하게 상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 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나려는 요즘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무지의 공간인 플라톤의 동굴과는 대조된다는 뜻에서 그림 제목을 <동굴이 안다>라고 지어보았다. <동굴이 안다> 해설

괴석의 틈으로 우주를 보듯, <늦게 온 보살 - 디오라마>의 화면을 관찰해봅니다. 열반한 부처의 관이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부처의 발이 관 밖으로 나와있는 모습은 쌍림열반(雙林涅槃) 장면을 재현했음을 의미합니다. 앞에 우두커니 선 토끼는 애제자 가섭존자가 도착한 뒤에야 관에 불이 붙어 화장할 수 있었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 설화에 기대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다음(희망이 없어진 다음)에야 붓다와 가섭존자의 의미심장한 만남-곽시쌍부(槨示雙趺)-이 성사된다. ... 열반에 든 붓다가 맨발을 내미는 행동은 지극히 단순해서 거의 무의미할 정도이며 애제자를 환영하는 것 치고는 너무 조용하고도 단출한 행위다. 그래서 무의미와 의미심장함, 사소함과 심오함은 거의 같은 것이 된다. <늦게온 보살 - 디오라마> 해설

<늦게 온 보살 – 디오라마> 2026, Mixed media, 100x100x100cm
<늦게 온 보살 – 디오라마> 2026, Mixed media, 100x100x100cm

<헛수고> 연작, 2025-2026, Oil on canvas, each 100x65cm
<헛수고> 연작, 2025-2026, Oil on canvas, each 100x65cm

세상 사람들의 수 만큼 많은 우주가 있다면, 그 사이에 수많은 오해와 셀 수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붓다와 가섭의 인연조차도 흘러가는 일이며, 일어나는 일들은 어쩔 도리도 없습니다. 삶은 그리고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들 투성이입니다. 돌을 통해 우주를 봅니다. 돌을 통해 우리를 봅니다. 차곡차곡 돌을 쌓는 마음으로 앞에 놓인 그림을, 나를 봅니다. 이 의미심장하고 심오하고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지.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정성, 또는 치성은 대부분 헛수고다. 예술의 가치가 계량화하기 어려운 '의미 있는 헛수고'에 가깝다면, 돌탑을 실제로 쌓는 것보다 돌을 하나씩 그려서 쌓는 편이 한 번 더 헛수고이다. <헛수고> 연작 해설

무의미하고 사소하니 내 삶을 그냥 흘려 보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그 의미를 찾아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예술을 하는 것도 그런 일이겠지요. 마음을 다해 그린 그림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이를 두고 '헛수고'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접두사 '헛-'이 '허(虛)'에서 왔듯 비움으로써 채우는 수고로움일 수도 있을 겁니다. 박찬경이 본 우주의 오묘한 이치란 그런 게 아닐지, 헛헛한 돌탑 앞에서 가만히 가늠해 봅니다.

첨부 이미지

박찬경, ≪안구선사≫

국제갤러리 K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2026.03.19 - 05.10

10:00 - 18:00 *일요일은 17:00 종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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