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드디어 개막했습니다. 3일 VIP 오프닝에 다녀왔어요.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아시아권 갤러리와 작가들이 눈에 더욱 띄었습니다. 22개에 달하는 일본 갤러리가 참가했고, 아시아 포커스에는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알민레쉬(Almine Rech)는 하종현과 김창열 등 한국 단색화 화가를 오히려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2025년 프리즈 서울은 갤러리와 컬렉터들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거래가 활발해질 것 같아
아트페어에 가면 항상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소라면 그냥 보고 미술사적 의미나 작가의 의도, 표현하는 방법들에 대해 생각했다면 아트페어에서는 항상 ”어떻게 팔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편으로는 ”왜 그림을 사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프리즈 서울에 나오는 작품의 가격대를 생각하면 역시 단순한 ’투자‘나 단순히 ’취향‘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년까지 프리즈 서울은 그래서 조금 더 ‘쇼‘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팔거나 구매할만한 작품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여주기 위한 작품들도 더러 있었거든요. 화제성과 상품성을 모두 갖춘 작품들도 있었죠. 2025년에는 조금 더 컬렉터들이 구매할만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아요.
우선 전체적으로 갤러리들이 가져온 작품 중에서 회화의 비중이 컸습니다. 물론 거래가 이루어지는 작품들은 주로 ’회화‘죠. 아트페어에서 ”좋은데, 집에 걸기는 좀 그렇지.”하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듣는 것처럼요. 체감상 지난 프리즈에 비해서 블록버스터급의 조각보다는 회화의 비중이 확실히 많아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화이트 큐브, 타데우스 로팍도 아트위크를 맞이하여 안토니 곰리의 전시를 열고 있지만 부스에서는 회화 중심으로 선보였어요.
그간 프리즈 서울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화제성 중심이었다면 올해 프리즈는 조금 더 합리적인 거래, 평소 구매하고 싶었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트레이딩의 장이었습니다.
사회에 그림자가 질 때, 그림이 빛이 된다
올해는 눈을 돌릴 때마다 ‘구상’ 작품이 확실히 많아졌다고 느껴졌어요. 초상화, 풍경화, 팝아트 등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보통 추상화가 유행하고 나면 다시금 구상회화가 유행하기 마련이라고 하는데요. 확실히 구상 회화가 많아졌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무해한 소재들이 많아졌어요.
이런 변화를 통해서 확실히 ‘불경기’라는 것을 역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자신을 둘러싼 맥락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조금 더 단순해지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회를 고발하거나 디스토피아를 다룬 것들, 더 나아가 우울한 전망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건강하고 밝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아서 생기는 그림자인 셈이죠. 2025년 프리즈 서울에서 보이는 사회의 모습은 오히려 그림자가 져서 회화가 빛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경향은 키아프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구상회화를 좋아하거나 이번에 컬렉팅을 시작해보려는 고객들에게는 이 역시 좋은 기회인 것 같았습니다. 알 수 없지만 좋다고 하더라. 이런 것들이 아니라 직접 보고 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취향을 만들어가고 싶은 분에게는 이번 프리즈 서울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아요.
눈에 띄는 작가, 셋
장콸
프리즈 서울에서 눈에 띄는 작가들이 분명 있었죠. 이번에 가장 눈에 띄었던 작가는 단연코 ‘장콸(Jang Koal)‘ 작가 입니다. 무표정한 소녀 연작으로 자리잡은 장콸 작가는 점차 자신의 색깔을 가진 채 세계를 확장시켜 나갑니다. 난주카(Nanzuka)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고, 이번에 페어에 가져온 장콸 작가의 작품은 고딕적이면서도 깊은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회화들입니다. 작품을 보자마자 알았어요. 장콸 작가의 세계가 아주 깊어졌다는 것을요. 난주카 뿐만 아니라 탕 컨템포러리 서울(프리즈, 키아프)에서도 장콸 작가의 회화를 볼 수 있어요. 나를 응시하는 소녀들의 시선에서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쳉 치엔잉
대만 출신 작가, ’쳉 치엔잉(Tseng Chien-Ying)‘도 눈에 띄는 아시아의 종교화에서 주로 쓰는 강렬한 색감,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는 구도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잠재적인 퀴어 감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죠. 표현방식은 수묵화의 인물 표현을 따릅니다. 특히 보살이나 불상을 보여주는 듯한 종교화의 스타일을 강하게 띄고 있죠. 그리고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속세에서의 고통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동시대적 감정을 띈 과거 회화 스타일에서 보여주는 ‘고통의 영속성’이 드러납니다. 쳉 치엔잉의 작품은 홍콩 베이스의 갤러리 키앙 말링게(Kiang Malingue)에서 작품을 볼 수 있어요. 한국 작가중에서는 ’박그림‘ 작가**의 불교회화와 퀴어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궤가 비슷합니다.
사오리 나가타
무라카미 타카시의 히로폰 팩토리에서 시작한 카이카이 키키에서는 ‘사오리 나가타(Saori Nagata)‘의 작품이 단번에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기암괴석을 안고 있는 원숭이들이 나오는 대형회화인 “평화의 피난처(Sanctuary of Peace)”는 기암괴석을 이루는 색과 형형한 원숭이들의 눈길에 끌리듯이 다가갈 수 없게 만들죠. 사오리 나가타는 도예 작업과 유화 작업을 주로 하는데요. 소재는 동물들입니다. 새와 동물들을 통해서 통찰력있는 질문을 전달합니다. 귀여움으로 타자화되는 대신 눈빛으로 관람객에게 묻습니다. 그 질문은 사실,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죠. 환경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내면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느끼는 것마저도 인간 중심적 세계관입니다. 동물들은 그림으로 재현되었지만 그 안에서 가만히 존재할 뿐이죠.
미술의 국제적 흐름과 함께 작가의 신작,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트페어의 즐거움이죠. 저는 세 작가를 발견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프리즈 서울에 방문하시나요? 그렇다면 난주카와 탕 컨템포러리 서울 부스의 장콸 작가, 키앙 말링게의 쳉 치엔잉 작가, 카이카이 키키의 사오리 나가타 작가를 놓치지 마세요.
*프리즈 서울의 쳉 치엔잉 인터뷰에서 발췌
https://www.frieze.com/ko/video/work-progress-tseng-chien-ying-frieze-seoul-2025
**박그림 작가의 그림은 키아프 THEO 갤러리 부스에서 전시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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