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眞景, 마음으로 본다는 것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4.2-6.29

2025.04.29 | 조회 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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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필운대상춘도> 부분
<필운대상춘도> 부분

구독자,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 전시를 보러 가기에 딱 좋은 봄날입니다. 주말에 방문한 호암미술관에는 많은 분들이 봄을 만끽하러 나들이를 나온 듯했습니다. 시작을 여는 그림으로 <필운대상춘도>를 꺼내봅니다. 삼삼오오 모여 필운대로 봄나들이를 나온 모습이죠. 경복궁의 서쪽, 현 배화여고 자리에 위치한 필운대에서는 정선의 집이 있었던 경복고부터 수성동계곡 인근까지 서촌의 정경과 만개한 봄꽃이 장관을 이루지 않았을까요. 호암미술관 외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각종 기관 및 개인이 보유한 165점의 겸재 정선 작품을 망라한 이번 전시에서 그 아취를 느껴보세요.


금강산: 실경과 진경

<단발령망금강> ≪신묘년풍악도첩≫
<단발령망금강> ≪신묘년풍악도첩≫
<금강전도>
<금강전도>

현재 전시장에 들어서면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가 가장 먼저 전시실 초입에 걸려있습니다. 진경산수화로 시작되는 이번 전시는 앞 부분부터 금강산의 풍경이 가득히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정선이 그린 금강산 중 또다른 명작인 ≪신묘년풍악도첩≫을 보면, 첫번째 그림 <단발령망금강>이 관람객을 반겨줍니다. 가보지 못한 금강산에 대한 아스라한 갈망을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막 금강산을 향해 들어서기 전 멀찍이 바라보는 여행객의 시선이 그 마음과 잘 이어지는 것 같아요. 멀리서나마 금강산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을 공유해봅니다.

신묘년(1711)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나 그린 <금강전도>(1734)를 나란히 살펴보면, 한 화면에 금강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간결하게 담아낸 진경의 매력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신묘년풍악도첩에서는 내금강의 입구, 장안사의 실경을 마치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근경의 비홍교를 원근법을 살린 듯 크고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돋보이는데요. 금강전도의 하단 좌측에 묘사된 장안사는 전체적인 풍광과 어우러지면서도 여전히 우뚝 위치한 비홍교의 모습으로 이곳이 금강산의 입구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선이 양발인 양, 눈길 가는대로 금강전도의 곳곳을 누비다보면 어느새 상단의 비로봉까지 금세 도달할 수 있어요.

<장안사> ≪신묘년풍악도첩≫
<장안사> ≪신묘년풍악도첩≫
<금강전도> 부분
<금강전도> 부분

한양: 사대문 안, 사대문 밖

<수성동> ≪장동팔경첩≫
<수성동> ≪장동팔경첩≫
<서빙고망도성>
<서빙고망도성>

가보지 못한 금강산의 아쉬움을 한양 도성 그림으로 달래봅니다. ≪장동팔경첩≫에는 당시 유명한 세도가가 모여살던 수성동, 자하동 등 청운동 일대가 잘 묘사되어 있어요. 이제는 누구나 산책할 수 있는, 여전히 아름다운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을 그림으로 돌아봅니다. 아는 곳을 찾아보는 재미도 더해서요. 당시의 서울은 사대문 안으로 한정되는 만큼, 사실 지금의 서울은 성저십리 혹은 그 바깥이죠. 사대문 밖에서 바라본 도성의 모습은 <서빙고망도성> 그림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 10만이던 서울의 인구는 조선 후기 20만, 조선 말기(1910)까지 35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밖에는 사람도 많이 살지 않고 도성 안에 비해 집도 적었다고 하는데요. 강남이 배나무밭이던 시절(?)의 그림들도 ≪경교명승첩≫을 통해 엿볼 수 있어요.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압구정, 송파진 등의 아름다운 물가 풍경을 보고 있으면, 우리 조상들이 뱃놀이 하던 길목에 이제 빼곡하게 들어선 주거지를 떠올릴 수 있죠. 

<압구정> ≪경교명승첩≫
<압구정> ≪경교명승첩≫
<송파진> ≪경교명승첩≫
<송파진> ≪경교명승첩≫

귀거래도: 현실과 이상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네> ≪귀거래도10폭병≫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네> ≪귀거래도10폭병≫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네> ≪귀거래도10폭병≫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네> ≪귀거래도10폭병≫

호암미술관 1층에 펼쳐진 <겸재 정선> 전시 1부가 정선의 산수화에 집중했다면, 2부에서는 문인 화가로서의 정선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화상으로 여겨지는 <독서여가도>, 1천원 권에 그려진 <계상정거도>와 같은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요. 이번에는 ≪귀거래도10폭병≫을 소개해봅니다. 관직 생활의 애환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그린 이 그림은 어쩐지 직장인의 심금을 울리는 데가 있거든요.

귀거래도의 한폭, 한폭을 천천히 들여다봅니다. 고향에 돌아온 뒤 그 풍경을 돌아보며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마음, 여유를 찾고 친척들과 비로소 정담을 나누며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떠나지 않고, 자꾸 어디로 향해 가려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도연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주 안에서 보면 이 몸을 땅에 붙이고 사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 일일 터, 부귀를 좇는데 급급하기 보다 자연을 즐기며 사랑하는 이들과 어울리는 봄날이 되기를.


조선의 오이 도둑, 고슴도치가 오이를 지고 가는 <자위부과도>로 이번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오이를 짊어진 고슴도치는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그림으로 다복을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귀엽습니다. 요즘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고 하더라구요.) 이 편지를 보신 모든 분들에게 일상에 봄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삶에 다복함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자위부과도>
<자위부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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