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곧바로 태어난 도시를 생각하셨나요? 그렇다면 그곳은 구독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대가 오고 우리에게 태어난 장소인 고향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죠. 정체성 형성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그 위에 쌓은 다른 정체성의 레이어가 더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의 작업은 동시대의 변화를 포착하고 겹겹이 쌓아 미학적으로 쌓아올리죠. 동시대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했어요.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 b.1985)
이번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생애를 먼저 알아두는 게 좋겠습니다. 작가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고 아버지는 팔레스티안계였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한 뒤, 런던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다문화적 정체성과 비주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콜라주, 리서치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콜라주된 동시대의 자아정체성

맨디 엘-사예는 ‘콜라주’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콜라주가 동시대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대인은 수명 내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직업, 생활, 가족, 친구 등 현대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표들은 덕지덕지 붙어있죠. 현대인은 더 이상 균질한 자아정체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맨디 엘-사예의 콜라주 작업은 작가 스스로의 다문화적 맥락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다층적인 자아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한편, 장르적으로는 팝아트(POP ART)의 전통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죠. 미국의 화려한 대중문화, 풍요를 가져다 준 자본주의를 선망했던 팝아트의 콜라주를 활용하고 있지만 맨디 엘-사예는 대척점의 메시지를 전달하죠. 실크스크린으로 재현한 달러의 이미지, 팔레스타인 지도, 가자지구 폭격 기사, 전면광고 이미지를 겹겹이 쌓아서 동시대의 폭력과 비극을 내보입니다. 풍요의 환상을 콜라주로 해체합니다.
작가에게는 실체적인 고통이자 비극인 팔레스타인 폭격 소식은 경제 신문 속 뉴스로 다뤄집니다. 그 신문 안에는 비극과 함께 럭셔리 브랜드의 광고, 경제 소식 등과 함께 배열되어 있죠. 한 사람의 고통이 신문 속 소식으로 다뤄질 때 슬픔은 희석되고 다른 내용과 섞여버리죠. 결과적으로는 객관적으로 다뤄진다는 의미에서 상황의 긴박함, 중요도는 반대로 가려집니다. 신문이 콜라주와 합쳐질 때, 개인의 고통과 정체성은 가려지고 희석되어 버리죠.
자아정체성이 희석되고 다층적으로 구성되는 시대가 오자 ‘에토스(ethos)’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아랍어와 중국어,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작업이 맨디 엘-사예 가계의 역사와 섞였을 때 미학적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연약한 규칙을 이해하기

작가는 다양한 나라의 화폐를 콜라주하기도 하고 실크스크린으로 재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화폐가 캔버스 안에 삽입될 때 화폐는 권위를 상실하죠. 국가와 경제라는 권위있는 규범 체계에서 벗어난 화폐는 급속도로 가치를 잃죠. 이 권위는 지전을 통해 한 번 더 해체됩니다. 복을 기원하고 죽은 사람을 위한 화폐인 지전은 이승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저승에서는 쓸모가 있을 지도 모르죠. 현실 세계의 규칙에서는 가치가 없지만 다른 권위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화폐와 지전이 병렬되어 있을 때 화폐라는 약속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현실 세계 안에서도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화폐는 가치가 달라질 뿐더러, 무가치한 이미지 덩어리가 되고 말죠.

<버닝스퀘어> 연작에서 금박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가리개이면서 황금인 동시에 긁어낼 수 있는 스크래치입니다. 화폐의 권위가 인공 권위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황금은 곧 경제의 근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죠. 특히 <버닝스퀘어 연작: 141x131>은 전시실의 가장 높은 곳에 걸린 채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고개를 들어 그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황금을 숭배하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붉은 색으로 물든 신문과 광고 더미 위에 선 채, 황금색 사각형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게 되죠. 누군가의 죽음으로 쌓아올린 세계 한복판에 선 채 황금을 바라보고 있죠. 그 순간, 내 안의 질서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新 디아스포라

맨디 엘-사예는 여러 문화가 뒤섞인 삶을 살아오며 스스로도 정체성을 콜라주한 것처럼 읽히죠. 다양한 문화가 섞인 사회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란 존재하지 않죠. 유교 문화권에서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 어떤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죠. 이러한 작동 방식은 우리의 비극이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맨디 엘-사예가 작품으로 보여주는 화폐와 언어는 ‘교환’(통역)되지 않으면 그 어떤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죠.
과거에는 교환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국경 너머 일, 하다 못해 국내에서의 뉴스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죠. 그러나 지금은 지역과 국가를 초월해서 정보가 유통됩니다. 환전을 하지 않아도 다른 나라의 경제 규칙 안에서 활동할 수 있죠. 국경과 교환이라는 장벽이 무너지자 지역과 국가 기반의 정체성만으로는 자아를 규정하지 못하죠.
영토란 실체적 국경인 동시에 문화적 규범이죠.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인 신세대에게는 국경의 경계가 희미하죠. 디지털 환경에서는 쉽게 해외의 여러 나라와 연결될 수 있죠. 콜라주된 자아정체성, 연약한 규칙을 통해 구성된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렸죠. 규칙과 정의마저 개인에게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맨디 엘-사예의 콜라주에 이르러 삶이 균질한 정체성으로 구성되지 않으므로 현대인은 세계의 파편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디아스포라를 겪을 수밖에 없죠. 유대인이 약속된 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득한 것과 달리 현대인에게는 되찾을 수 있는 장소가 없죠. 우리는 영원한 유목 상태에 놓이고 쉽게 파괴됩니다.
맨디 엘-사예, ≪테레사 이후≫
Space K 서울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2026.03.19 - 06.21
화-일 10:00 - 18:00
입장료: 성인 8,000원 청소년 5,000원 미취학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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