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한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현관에 달항아리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던 친구인데 달항아리 그림을 달기 위해 액자레일까지 설치한 게 뜻밖이라 이유를 물었어요.
“엄마가 복 들어온다고 걸어두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하나 주문했어. 그런데 작은거 샀다고 뭐라고 하시던데?”

그 말을 듣고 검색해보니 달항아리가 다복과 재물운, 가족의 화목과 같은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는 풍수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넓은 입구와 풍만한 곡선, 그리고 평온한 색감이 오래오래 곁에 두고 보아도 마음 불편한 곳이 없는 그림이어서 그런가봐요.
그림을 살 때 꼭 풍수까지 고려하진 않아도 되지만, 생활 공간에 걸어둘 그림을 고를 땐 더 생각할 게 많아집니다. 집안 분위기와 어울리면서도 기왕이면 의미도 좋고, 때로는 위로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복합적인 기대를 충족해줄 궁극의 한 점을 찾게 되죠.
현관에 들어서면 포근하게 맞이해줄 큼지막한 달항아리처럼, 이번 레터에서는 내 집에 걸고 싶은 그림을 골라보는 행복한 상상을 해볼까봐요. 상상이니까, 현실적인 가격은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 🤫
삶의 희로애락 모두 품어줄 것만 같은 최영욱의 Karma

최영욱 작가의 Karma를 처음 마주하면 익숙한 달항아리 형상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수많은 인생의 사연과 인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캔버스에 혼합재료로 표현된 달항아리 표면에는 마치 실제 도자기처럼 유약이 식혀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금과 흙 속의 철분 성분이 구워져 나타나는 철점까지 세밀하게 담겨 있습니다. 실금과 색색의 점들이 만들어내는 모양이 첩첩산중처럼 보이기도 하고 선과 점 각각의 개성이 있어 이 모든게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 같기도 합니다. 일상의 수많은 감정과 사연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듯 Karma 의 달항아리 앞에서는 왠지 모를 삶의 위안이 느껴집니다.
제 집에 달항아리를 들인다면, 최영욱의 달항아리를 모시고 싶습니다. 국내외 미술관과 스페인 왕실, 그리고 빌 게이츠 재단에서도 소장한 작품이라 모셔오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한국의 수많은 달항아리 중에서도 왜 Karma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기봉의 안개 속 풍경 앞에서 정화되는 마음
이번에는 심리적 평온을 가져다주는 그림을 볼까요? 생명력과 회복을 상징하는 푸른 숲, 그리고 날카로웠던 마음을 부드럽게 완화해주는 안개. 이기봉의 <Where You Stand> 시리즈가 떠오릅니다.

고요한 아침, 푸르른 습지를 자박자박 걸으며 촉촉한 공기를 들이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정말 아침 산책을 하다 잠시 멈추어 마주한 풍경 같아요. 안개는 모호하고 불안한 대상으로만 생각했는데, 이기봉 작가의 캔버스에 내려앉은 안개는 묘하게 긴장을 풀어줍니다. 작가는 풍경을 그린 캔버스 위에 정말 안개가 낀 것처럼 얇은 막을 덧대어, 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장면의 깊이를 표현합니다.
집 밖을 나서면 온 세상이 직관적인 자극 뿐입니다. 어떻게든 빠르게 우리의 눈과 머리를 사로잡으려 하죠. 하지만 그런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삶의 방향은 여전히 희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살짝 흐려진 이기봉의 풍경 앞에서 일상 속 긴장을 내려놓고 아침 산책의 촉촉한 감각만을 떠올리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 그림을 집에 건다면, 침실의 창가 옆 자리에 두고 싶습니다. 어르스름한 새벽, 잠에서 깨어 하루를 맞이하는 시간에 가장 먼저 이 몽환적인 풍경을 바라본다면 마음이 한결 정돈될 것 같아요. 오늘 하루의 감정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는 몰라도, 지금 마주하는 이 적당한 고요함을 잃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네요.
세련된 꽃 그림을 찾는다면 알렉스 카츠의 Flower
그림 중에서도 꽃 그림이 풍수에 가장 좋다고 하죠. 노란 꽃은 재물운의 상징이고, 싱그럽게 만개한 꽃 그림은 집 안에 생기와 활력을 줍니다. 특히 해바라기 그림이 유명해서, 동네 가게나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좋은 의미의 꽃 그림을 들이고 싶지만 모던한 감각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알렉스 카츠의 Flower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카츠가 그리면 작약, 난꽃, 들꽃 모두 카츠의 감성으로 재탄생합니다. 큰 캔버스에 대담하게 클로즈업한 꽃, 그리고 의외의 배경색과의 조화가 세련미를 줍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복도에 걸어두면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은 환기가 될 것만 같은 그림들이에요.


창작의 시간, 영감을 채우고 싶다면 알피 케인
집은 나만의 가장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죠.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 없는 계획과 상상, 그리고 꿈의 실현이 모두 가능한 곳이 바로 집입니다. 저는 어떤 통제도 없는 창작의 시간에 영감을 자극하는 그림을 곁에 두고 싶어요. 이럴 때 생각나는 그림이 제 2의 데이비드 호크니 라고도 불리는 영국 작가 알피 케인입니다.


롯데갤러리에서 알피 케인 작품을 본 순간, 낯선 미감에 놀라고 96년생의 건축학도라는 작가의 배경에 놀랐습니다. 알피 케인은 건물의 공간의 특정 지점에서의 시선을 매우 구조적으로 표현하지만, 현실에 없는 듯한 색감 선택과 보색 대비로 기억과 상상이 만들어낸 새로운 장면을 연출합니다. 작품에는 시선은 담기지만 특정 인물은 없어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 누구나 1인칭 시점에서 장면 속 이야기를 펼쳐보게끔 합니다.
모두가 잠든 밤, 사부작거리며 나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낼 때 알피 케인의 작품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상상이 자리할 공간을 내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 집에 두는 그림은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어떤 감정과 상태이든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그림인지가 중요합니다. 수장고를 갖춘 컬렉터라면 다양한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보고 그림을 들일 수 있지만,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내 집 한 켠의 공간에 그림 자리를 내어주고 같은 그림을 매일 마주해야 하니까요.
슬프고 답답할 땐 조용히 나를 위로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땐 그 환희가 배가 되는 그런 반려 그림. 여러분의 곁에도 소중한 반려 그림이 자리하길 바랄께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