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 님은 올해 무엇과 사랑에 빠졌나요? 이 레터를 발행하는 오늘은 12월 1일,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겨울의 초입이면 항상 올해 사랑한 것들의 개인적 순위를 매겨보고는 합니다. 재미로 하는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책, 올해의 전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순위를 다투었습니다. 올해 저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고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요. 장강명 작가의 르포르타주 <먼저 온 미래>에서 인공지능이 변화시킬 미래의 세계를 거칠지만 치열한 사유를 다시 들춰보고 올해의 책으로 최종 낙점했습니다.
<먼저 온 미래>는 알파고-이세돌의 대결로 잘 알려진 바둑AI가 바둑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바둑계에 어떻게 미래가 먼저 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며,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르는 것이 세계의 감각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사유합니다. 책을 다시 보니 제가 밑줄을 137번 그었더라고요. 그중 한 페이지를 인용합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 어떤 기술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여전히 우리는 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막연히 낙관하거나 혹은 비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AI는 자본주의 사회의 효율이나 직업과 같은 표면적 영역 뿐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우리의 인식, 행동, 존재, 가치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작가는 경고합니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가치를 없애버린다. ... 나는 AI 시대가 공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고, 가치로부터 소외되는." 우리는, 인공지능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올해의 전시, «올해의 작가상 2025»

올해의 책만큼이나 올해의 전시도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습니다. 비지터씨 레터에서 올해 정말 많은 좋은 전시를 이야기했는데, 지극히 사적인 올해의 전시로 올해 최다 관람/추천한 «올해의 작가상 2025»을 꼽았습니다. 매년 좋은 작가가 호명되는 자리이지만 올해 선정된 김영은,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과 공개된 신작이 시대적으로 논의해볼만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소개글로 작가 소개를 대신합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5» 선정 작가는 김영은,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이다. 김영은은 소리와 청취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산물 및 실천으로 바라본 작업을 선보인다. 임영주는 ‘불확실한 믿음’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견주어 보며 현실 너머를 상상하고 나아가 죽음, 종말, 외계에 대한 실존적 차원의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한다. 김지평은 ‘동양화’의 개념과 기법에 들어 있는 전통적 세계관과 보는 방식을 비평적으로 해석해 왔다. 언메이크랩은 최빛나와 송수연이 구성한 콜렉티브로, 한국의 발전주의 역사와 인공지능의 요소(데이터셋, 컴퓨터 비전, 생성 신경망 기술)를 교차시키며, 현재의 사회적·생태적 상황을 사변적 풍경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은 2022년 1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며, 작가의 신작 커미션과 함께 이전 중요 작업들을 전시에 함께 출품하는 형태로 전시 기획을 강화했습니다. 선정 작가들은 새롭게 공개한 신작과 함께,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이전 작품 을 함께 전시했습니다.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이어지니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보시길. 이번 레터에서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언메이크랩의 작업을 대표로 소개합니다.
<뉴-빌리지>와 인간다움

언메이크랩의 <뉴-빌리지>는 실제 존재하는 스마트시티와 토마토의 알레고리를 결합해 인공지능의 미래를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만든 가상의 도시,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반복적이고 일방향적인 '미래 없는 예측'의 위험을 그리고 있죠. 실제로 모델이 된 부산 에코델타시티는 무상으로 거주할 사람들을 선발했습니다. 대신 입주민을 통해 데이터를 검증하고, 검증된 기술을 스마트시티 전체에 확대 적용할 계획을 세웠죠. “이곳에 거주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이며 동시에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셋이 되는 일입니다.
언메이크랩은 ‘데이터셋-팅’이라 부르는 사변적 데이터셋 구축을 통해 인공지능의 실패와 균열을 드러냅니다. 인공지능의 휘하에서 완벽하고 깨끗하게 무인으로 운영되는 상점에서, 갈 곳을 잃은 인간은 잉여-노동을 제공하거나 무의미하게 배회합니다. 갈 곳을 잃은 철새들은 더이상 스마트시티를 찾아오지 않지만, 인공지능은 철새의 데이터셋을 이용해 철새 기념물을 만들어 이를 재생성합니다. 과잉 생산된 토마토의 효율성은 인공지능에 이식되어, 이제 사람들은 프롬프트를 통해 원하는 토마토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생성하고 제안하는데 무언가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인공지능의 생성-신경망은 이 스마트시티의 모든 것을 어디까지 수치화하고 자동화할 수 있을까요? 너무 소수이거나 지나치게 오래되어 이 데이터셋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일방향으로 흐르는 인공지능에 글리치-균열이 생길 때,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된 우리와 도시의 모든 것들은 어디까지 오염될까요? 인공지능이 오염된 이후, 이미 변화한 사회와 우리는 일방향적인 미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불안을 인공지능에게 위탁하는 것은 유토피아인가요, 혹은 파국인가요? 언메이크랩의 질문은 쓸쓸한 철새의 뒷모습, 파란 토마토의 형태로 생성되고 반복됩니다.
<기계의 우화>와 인간 너머

언메이크랩은 인공지능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방향으로 학습되고, 인간의 효율과 구미에 맞는 답변을 출력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인공지능의 데이터셋이 특정 범위를 포함할 때 필연적으로 나머지는 제외됩니다. 또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특성상 생성 과정에서의 오류를 내포하는 '환각'과 인간에게 해로운 범주인 '탈옥' 시도를 지속적으로 제거합니다.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2023)이나 렉처 퍼포먼스 <기계의 우화>(2025)에 등장하는 동물-이미지는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 모두 검열되었고, 인간의 관점에서 소수적인 정보들은 무가치하게 지워졌으며, 대개 인간 중심적으로 애완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언메이크랩은 종종 인공지능이 이미지 모델을 학습하고 재생성하는 과정을 어설프고 유머러스하게 가시화합니다. <신선한 돌>(2020)의 학습된 객체인식 인공지능이나 최근 <기계의 우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으로 실시간 상영되는 결과물을 보세요. 깨어진 돌을 계속 '신선한(fresh)' 것으로 읽는 인공지능은 돌을 원자재로 생각하는 인간의 시선을 반영합니다. 비닐로 만들어진 가짜 잔디에서 새로운 동물을 읽어내는 인공지능은 어딘가 선뜩합니다. 데이터셋이 만들어낸 동물의 초상은 어딘가 익숙하면서 어색하고, 혼종적이면서 디스토피아적입니다.
서두에 던졌던 동일한 질문으로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장강명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쩌면 그런 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영은, 임영주, 언메이크랩, 김지평
«올해의 작가상 2025»
국립현대미술관
2025.8.29 - 2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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