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소설가의 휴가』를 읽고 있습니다. 제목에 '소설'이 들어가 있어 가벼운 소설인 줄 알고 무심코 골라든 책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당장 살아남는 것 외에는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던 전후(戰後) 시대 특유의 덤덤하고 묘한 사색들이 책장 너머로 전해지곤 합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지난주에 보았던 연극 <호기우타>의 한 장면이 겹쳐 흘렀습니다. 가만 보니 이 연극 역시 모든 게 무너진 전후의 폐허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거든요. 두 작품이 공유하는 그 특유의 기묘한 공기감 때문이었는지, 극장을 나오면서도 여운이 꽤 길게 남았습니다.

이제는 연극을 볼 때 정말 노트와 펜이라도 챙겨야 하나 싶습니다. 좋았던 대사가 극장 문만 나서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니까요. 아무튼 이번 공연에서는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들은 이 것이었습니다. "인생 뭐 있어? 그냥 대강대강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지." 그리고 "의미 부여는 시간의 권력이야."
책과 연극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예전 시대처럼 당장 내일의 생존을 걱정하며 살지 않습니다. 거대한 재앙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이 시대를 움직이게 하는 진짜 권력은 '의미 부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매 순간 끊임없이 무언가에 의미를 찾고 동기를 채찍질해야만 겨우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굴리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뒷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하면서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무기력 앞에서,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만 무겁게 남을 때가 있습니다. 혼자 꼬리를 물던 질문 끝에 문득 20대 때 아빠가 보내준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제 뜬구름 잡는 질문에 아빠가 보내주셨던 편지인데요.
요즘처럼 혼자 복잡한 생각에 갇혀 머리가 무거울 때면 한 번씩 꺼내 읽어보곤 합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계실 분들에게도 가벼운 환기가 되길 바랍니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둘째에게
삶에는 원래 의미가 없다
찾아본들 어디에도 없다
난다 긴다 하던 유명인들도 못 찾은게 인생의 의미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다가 죽어 왔고
살아오면서는 그 의미에 고민하고
지금도 새로운 사람은 태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
해결능력이 다름은 '지금 여기'에서 그 능력을 키워온 세월이 다르다는 것일 뿐
둘째도 '지금 여기'에서 비교우위적 능력이 충분히 있을 것이고
새로운 능력을 더 원한다면 그것을 키워내는 세월만 있으면 될 것
그리하여 새롭게 시작하면 될 일
문제는 모든 일을 다 해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다 해낼 필요도 없다는 것
네가 좋아서 쉴 새 없이 관심을 부르고
그래서 한없이 묻혀도 피곤을 모르는
그 일을 하면서 살면 될 것
그 속에서 행복을 보고
그 때의 그 의미가 삶의 의미가 된다

🎙️ 부기장의 한마디
오늘 글은 마치 기장님과 함께 하늘이 아니라 우주를 떠다니는 기분이네요. 우리의 삶은 대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고, 때로는 누군가를 향한 손쉬운 비난을 생산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려 합니다. 기장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유명한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1969년 도쿄대학교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과 사상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던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토론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는 논쟁이 생각보다 거칠고 감정적이었다는 평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끝내 서로의 진정성만은 인정했습니다. 두 진영 모두 안락한 전후 사회 속에서 껍데기만 남은 말과 의미들이 난무할 뿐, 정작 '살아 있다는 실감'이 사라진 시대상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시마는 제멋대로 의미를 갖다 붙이는 혁명의 공허함을 꼬집으며, 자신의 말을 몸으로 감당해 내는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를 규정하고, 너무 빨리 비난하며, 그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자극적인 이벤트로 소비하곤 합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의미의 강박에 갇혀 머리로만 싸우는 시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는 담대함, 그리고 거창한 말 대신 내 삶과 행동으로 묵묵히 증명해 내는 태도. 아버님이 둘째에게 전한 편지의 온기처럼,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자신의 삶으로 말을 건네는 어른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 보란더의 시선
오늘 레터를 가만히 곱씹어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뒤늦게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의 편지 속에도 정답은 없었습니다. "삶에는 원래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 붙들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된다고 이야기하니까요.
미시마가 말했던 '살아 있는 감각'도, 연극 속에서 들었던 "의미 부여는 시간의 권력"이라는 대사도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미를 먼저 만들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삶보다 생각 속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매 순간 의미를 찾아내야만 겨우 움직여지는 요즘, 좋아하는 책을 읽고,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먼저 한 걸음 걸어가 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비로소 우리의 진짜 삶의 의미가 되어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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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B
저는 오늘도 광광 울고 갑니다 ㅜㅜ 제가 얼마전에 7개월동안 처음 쉬어본다고 말씀 드렸던 댓글이 기억나시나요? 25살에 아버지가 간암으로 빠르게 돌아가셨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고 누구보다 건강하셨는데 너무 건강해서 아이러니하게 암이 빠르게 전이되어서 5개월만에 판정받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점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점들은 똑같아요 '인생이 어떻게 정답이 있을까? 결국 하루를 살더라도 나처럼, 나답게, 하고싶은 것들 속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게 삶의 의미겠지' 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그렇게 하루를 치열하고 즐겁게 살다보니 감사하게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새롭게 시작한 언디파인드 라는 브랜드 필름 팀을 만들어서 6주마다 브랜드를 찾아서 브랜드 필름 제작을 하는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사업화를 할 예정이라 그전까지는 제안을 드려서 협의가 된 브랜드와 작업을 하는건데요, 이 작업 때문에 13명의 사람들이 저와 저희 팀의 비전을 보고 모여주었어요, 다들 페이도 없지만 본인의 삶의 의미를 찾기위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말이죠, 결국 말씀처럼 지금 우리는 의미를 찾기보다 의미있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영화같다고 생각하고 참 행복한 것 같습니다, 월요일 아침 주먹 불끈쥐고 시작합니다 기장님 더위 조심하셔요 :)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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