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ANDER] 13호 : 책장보다 장바구니가 내 진짜 삶에 가깝다

6월의 장바구니가 말해주는 내 일상의 진짜 현주소

2026.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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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ANDER

 어느덧 본격적인 더위와 함께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문득 어디선가 본 문장 하나가 떠오릅니다. "5년 후의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알고 싶다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보라."

 이 말을 따라 제 미래를 점쳐보려다, 관두기로 했습니다. 책장은 내가 꿈꾸는 이상향일 뿐, 내 진짜 현실을 보여주진 않으니까요. 대신 지금 내 상태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6월의 쇼핑 목록'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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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제 장보기의 주 무대는 홈플러스와 이마트를 거쳐 롯데마트로 바뀌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배송을 받을 때마다 산처럼 쌓이던 포장 쓰레기였습니다. 상자를 뜯을 때마다 플라스틱과 비닐을 한가득 치우다 보면, 장을 본 건지 쓰레기를 산 건지 헷갈릴 정도였죠.

 여러 플랫폼의 최근 결제 내역을 함께 모아보니, 제 일상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영수증들이 눈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 야채, 생선, 생필품, 냉동 식품, 유산균, 에너지바, 여름 요가복, 파자마 등...

 목록을 찬찬히 뜯어보니 새삼 명확해집니다. 거창한 계획이나 대단한 야망 대신, 그저 과도한 배송 쓰레기에 피로감을 느껴 마트를 바꾸고, 아침에 유산균을 챙기고, 주말에 생선을 굽고, 퇴근 후 요가를 가는 평범한 일상.

 이 목록을 본 ChatGPT는 저에게 ‘취향은 분명하지만 소비는 절제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아부 섞인 말을 건넸습니다. 충동구매 없이, 내 몸과 내 일상의 쾌적함을 먼저 챙기는 것들이 쇼핑 목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이가 된 거겠죠. 

 그러다 문득 '내가 가지고 싶은 부(富)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부자가 되어 으스대는 삶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풍요의 기준은 생각보다 명확하고 단출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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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멀리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갈 때 비행기나 기차 같은 교통비가 아깝지 않은 삶, 둘째는 내 몸을 위해 피부과를 적당히 다닐 수 있는 삶, 셋째는 요즘 부쩍 비싸진 가격에 놀라게 되는 안경을 고민 없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맞출 수 있는 삶,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이 생겼을 때 망설임 없이 등록할 수 있는 삶. 딱 이 몇 가지 정도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치장품 대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관계를 지키고 내 몸의 건강을 돌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상태.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진짜 풍요이자 절제된 라이프스타일의 종착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자꾸만 우리에게 5년 뒤의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말하지만, 진짜 일상을 굴려 가는 건 결국 내 몸과 생활에 직접 와닿는 이런 솔직한 마음과 물건들이 아닐까요. 내 몸을 돌보는 물건들로 장바구니를 채우고, 그 루틴을 기계적으로나마 묵묵히 이어 나가는 것이 지금의 제 일상입니다. 결국 미래의 나를 만드는 건 머리 아픈 계획서가 아니라, 당장 오늘 내 몸과 일상을 위해 소비하는 이 정직한 영수증들일지도 모릅니다.

 새롭게 맞이한 7월, 지금 여러분의 쇼핑 목록 맨 위에는 어떤 현실적인 물건이 자리 잡고 있나요? 멋진 책 한 권보다 더 솔직하게 여러분의 오늘을 보여주는 장바구니 품목이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들 각자의 나이에 맞는 방식으로, 몸 건강히 이번 한 달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부기장의 한마디

 저도 사람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만큼 사람을 속이기 쉬운 물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보면 지난달 베스트셀러가 줄지어 꽂혀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책 소비에는 어느 정도 '보이고 싶은 나'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의 욕망은 책장이 아니라 장바구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 장바구니는 기장님과는 조금 다릅니다.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은 거의 없습니다. 일본에서 공수한 오래된 카메라 부품, 당근에서 발견한 빈티지 소품,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건져 온 CD 앨범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죠. 기장님은 이런 것들을 통틀어 '예쁜 쓰레기'라고 부릅니다.

 사실 대부분은 이미 자신의 쓰임을 다한 물건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물건이 가진 희소성과 시간이 좋습니다. 이제는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물건에서 문득 이전 주인의 흔적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공산품일 뿐인데도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저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제가 아니면 누가 구하겠습니까. 이 우주에 하나 남은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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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란더의 시선 

 앞서 6월의 영수증을 보며 참 단출하고 절제된 삶을 사는 양 글을 썼습니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7월의 쇼핑 목록은 시작부터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부기장님이 '예쁜 쓰레기'를 장바구니에 담을 때 속으로 짐짓 혀를 찼는데, 저 역시 글을 쓰다 말고 방금 전, 배우 김고은이 착용한 귀걸이가 너무 예뻐 보여 홀린 듯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는 소유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갖고 싶은 것은 물건보다 시간과 경험에 더 가까웠습니다. 방금 지른 귀걸이는 차치하더라도(웃음), 가방이나 옷처럼 눈에 보이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유행이 지나지만, 내가 내 몸과 시간에 투자한 경험들은 온전히 내 안에 쌓여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글을 쓰다 문득, 누군가의 시선에선 이 또한 엄청난 사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고민 없이 안경을 맞추고, 선뜻 기차표를 끊고 운동을 등록하는 비용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소박한 삶은 아닌 셈이죠.

 어쩌면 저는 소유욕이 없는 게 아니라, 형태만 다를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값비싼 것들을 온전히 쥐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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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INEMA B의 프로필 이미지

    CINEMA B

    0
    9일 전

    어제 하루를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6년 스케줄표를 보니 7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더군요 저는 영상감독이자, 브랜드 필름 레이블 팀의 총괄 감독이고, 홍대에서 CINEMA B 영화공간을 운영하며 영화모임을 10년째 진행하는 호스트이며, B2B B2C 영상 교육 및 컨설팅 멘토 강사로 활동 중이며, 유튜브에서 B PLAYLIST 라는 영상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관심사와 동시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는 '욕심'이 넘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왜 어제 쉬었는지 생각해 보니 다양한 것들을 해도 비슷한 패턴의 일들을 하고 있으니 '새로움'이 없었습니다. 결국 내 일상은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똑같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멈췄습니다. 쌓아놓은 책들을 읽었고 고전 영화들을 찾아봤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새로운 자극들이 들어오니 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실 여유가 생겼습니다, 요즘 일요일이 되면 VOLANDER의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댓글을 다는 것 자체가 즐겁구요, 내일부터는 다시 복잡하며 비슷한 패턴의 하루를 보내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살려고 합니다, 기장님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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