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손석희의 12시> 일요일 코너 사색을 듣다가 재밌는 질문을 만났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지망생 사회’였거든요. 보통 ‘지망생’이라고 하면 다들 비슷한 그림을 떠올릴 겁니다. 고시생, 취준생, 아니면 오디션을 기다리는 연습생처럼 ‘빨리 탈출해야 하는 딱한 상태’ 같은 거 말이죠.
그런데 방송이 던진 질문은 “당신은 지금 무엇의 지망생인가요?” 입니다.
여기에 대답하는 패널들은 누군가는 ‘좋은 DJ 지망생’이라 하고, 누군가는 ‘배우는 사람 지망생’, 또 다른 사람은 ‘건강한 노인 지망생’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더군요. 명함에 박힌 직업 말고, 앞으로 어떤 인간으로 나이 들고 싶은지 그 ‘상태‘를 바라고 있는 것이죠. 문득 우리는 살면서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은 지겹게 들어봤어도, “요즘은 뭘 지망하며 삽니까?”라는 질문은 받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딱 어릴 때까지만 지망생인 줄 압니다. 대학, 회사, 그다음엔 승진이나 이직. 그렇게 눈앞의 숙제들을 해치우고 나면 지망생 딱지를 떼고 마침내 ‘다 큰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그럴까요?
방송에서 손석희 씨가 70대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지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미 한 평생 제 일을 해온 사람인데도, 젊은 날 못다 한 꿈을 위해 지금도 매일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분에게 중요한 건 ‘시험 합격’이라는 결과가 아닐 겁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계속 움직이는 ‘지망하는 삶’ 그 자체로 매일을 살아가는 셈이죠.
그 대목에서 저를 돌아봅니다. 저는 지금 이 뉴스레터를 쓰고 있지만, 솔직히 어디 가서 “뉴스레터 발행인입니다”라고 말하기엔 좀 민망합니다. 구독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니 꼭 거창한 타이틀이 없어도 상관없겠다는 위안이 얻어집니다. 대단한 완성형의 무언가가 되기보다, 무언가를 바라고 계속 움직이는 상태가 더 중요한 것이라면 말이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는 ‘나를 위한 기록자 지망생’일지도 모릅니다. 전시를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그날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과 감정을 글로 쓰고 나누고 싶은 사람. 오래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사람. 그 마음 하나를 품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지망생 아닐까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지망하며 삽니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 조금 더 건강한 몸, 혹은 더 괜찮은 부모나 친구가 되기를 계속 바라죠.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보다, 그 모습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훨씬 길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언제쯤 끝이 날까’ 조급해하기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망하며 살고 있지?’를 더 자주 생각해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의 지망생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부기장의 한마디
기장님처럼 저에게도 아직 지망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요즘은 사진을 찍기보다 다른 사람이 남긴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카메라도 찍는 도구가 아닌, 시간이 담긴 물건 수집으로서 즐거움을 더 느낍니다. 영화는 어떤가요. 새로 개봉하는 영화는 오히려 감정 소모가 커서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거나, 누군가가 그 영화에 대해 남긴 리뷰와 비평을 읽는 일을 더 좋아합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악기 하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앰비언트 음악을 찾아 듣고, CD를 사거나 MD에 녹음해 포터블 플레이어로 혼자 듣는 시간을 즐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사진가도, 영화감독도, 음악가도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남긴 아름다운 것들을 오래 곁에 두고, 그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살아가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이런 독특한 지망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직업이 되지 않아도 좋고, 누구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 그 지망은 결국 내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방향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무엇에 대한 지망생인지 선명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지망생이라는 그 말이 참 좋네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기장님은 이런 제가 좀 답답하실 수 있겠지만!)
🔭 보란더의 시선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무언가를 오래 지망하며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역시 생계를 위한 일과 마음이 향하는 일이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 끝에도, 나를 위한 기록 한 줄을 남기고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는 그 작고 조용한 지망들이 결국 오늘의 저를 다시 숨 쉬게 하는 거겠죠.
우리가 지망하는 것은 반드시 직업일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되지 않아도, 명함에 적히지 않아도, 오래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려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이 우리를 끝내 우리답게 만드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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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B
일요일밤에 굳이 이메일 로그인을 하고 들어와서 보란더의 메일이 왔는지 확인해보는 설레임은 참 근사합니다. 저는 중3때부터 대학교 까지 연기를 전공하고, 군대 전역 후 영화를 공부 하면서 독립 중,단편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작업은 감독으로서 연출했지만 장편영화 제작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기전에 장편영화 한편'이 저의 목표인데, 앞으로는 '영화감독 지망생' 이라고 말해야겠네요 :) 영상을 만들때 늘 '영화같은 순간을 기록합니다' 라는 타이틀로 저를 앞머리에 소개하곤 하는데 직접적이거나 직관적인 영상보다, 은유적이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있는 영화적인 연출을 더 지향하기 때문에 저는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지망생' 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말해보니 대학교때 영화를 처음 만들어서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했던 날이 기억 납니다, 30살.40살이 되면 영화감독으로 살고있을 줄 알았는데, 영화감독은 아니지만 '감독'은 맞으니 감독앞에 영화를 붙이기 위해서 영화를 그리고 저를 더 아끼고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해보는 밤 입니다, 날씨가 많이 더우니 늘 시원한 밤이 되시길 바랄게요 :)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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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이번 보란더님의 글 역시 '나는?!'이라는 가벼운 물음표를 띄우며 같이 생각하고 공감하게 하는 글 이네요 : ) 매주 보란더님의 스스로를 위한 기록들을 들여다 보는 일은 정말 저에겐 소소한 행복입니다! 그런 의미로 제 소개를 해 보자면, 저는 '부끄럽지 않게 살기 지망생' 입니다! ㅎㅎㅎ 이번 글을 보고 떠오른 제 평생의(?) 지망분야인데 살면서 고민이 많을 때, 기준이 흔들릴 때 등등 내 앞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시기가 찾아오면 듣는 저의 '곰곰' 플레이리스트가 있답니다. 그 중에 가장 첫번째 곡이 '물어본다(이승환)'인데 저에겐 나침반 같은 노래이다 보니 이번 호를 보고 가사 일부분인 '부끄럽지 않게'가 바로 떠올랐네요 ㅎㅎ 그리고 올해 초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명상하기 지망생'도 겸하고 있고 '사 놓은 책부터 읽기 지망생', '건강하게 먹기 지망생' 등등 너무 많네요, 하핫! '지망, 뜻을 두어 바람'이란 의미가 보란더님의 말 처럼 너무 거대할 이유도 없고 작고 조용하게 나를 나답게 유지하게 해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따뜻한 행복감이 퍼집니다. 날씨는 우중충하지만 이 밝은 기분으로 남은 오늘을 신나게 보낼 것 같아요! 늘 그렇듯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오늘의 기운을 한 주동안 나눠드릴께요!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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