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어편지 #5] 외면 🤦🏻‍♀️

구독자 님에게 외면이란 어떤 경험인가요?

2021.07.27 | 조회 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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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단어 편지

하나의 단어를 매개로 새로운 음악을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어느새 저희가 만난 것도 다섯 번째네요. 저는 영기획을 운영하는 하박국입니다.

올해 초 룸306(Room306)의 세 번째 앨범 <술과 꽃>의 완성된 데모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몰라요. 첫 곡의 제목이 ‘외면’이었거든요. 그리고 들리는 노래 가사. “괜찮다 말했어요”.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작년 이 맘때 저를 한동안 힘들게 했던 외면의 경험이 떠올랐거든요. 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행위의 주체는 자신이 아닌데 원인은 자신인 것 같고요. 어떻게 해보려 들어도 상대는 고개 돌려주지 않아요. 결국은 자신을 달래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괜찮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지만요. 지난주 앨범의 리드 싱글로 이 곡을 발매하기로 결정한 건 건 빨리 이 감정을 떨쳐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의 입구에 있는 곡으로 단어처럼 정말 ‘외면’하고 싶지만 언젠가 마주해야 할 감정이니까요.

앨범의 첫 곡을 ‘외면’이라는 차가운 단어의 곡으로 채운 룸306의 프로듀서 퍼스트 에이드(FIRST AID)에게는 ‘외면’이 어떤 감정일까요? 제가 생각한 것과 같은 감정일까요? 아니면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곡과 ‘외면’이라는 단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퍼스트 에이드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음악단어편지 #1] 카세트테이프 (1) 편을 참고해 주세요.)

퍼스트 에이드. 룸306 활동 초기에만 해도 프로필 사진에서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었습니다.
퍼스트 에이드. 룸306 활동 초기에만 해도 프로필 사진에서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었습니다.

Q 가사를 먼저 쓰고 제목을 지었나요? 아니면 반대순서인가요?

A <술과 꽃>의 모든 곡은 가사가 선행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사 안의 단어를 제목에 넣는 (나름 흔한 작법을) 일부러 피하기 위함입니다. 제목이란 게 내용 전반의 요약을 목적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술과 꽃>의 내용은 요약하는 순간 힘을 잃어버리는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Q ‘외면’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요?

A 이번 싱글의 가사와 제목을 대조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히읗(보컬)의 목소리는 분명 지속해서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제목에서는 이해와 정반대인 회피적인 태도와 결부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은, 화자는 실지로 맞닥뜨린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포용하고 있지 않은 것이지요. 다만 '유지'와 '연장'과 같은 보수적 가치를 위해 애써 내면의 실존하는 마음을 제외해버리는 자기부정의 이야기입니다.

Q <술과 꽃>의 첫 번째 곡으로 ‘외면'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A 두 번째 앨범 <겹>의 ‘인사’는 미니멀하면서도 해독이 쉬운 멜로디, 그러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가사와 난데없는 후반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중적인 매력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이 가졌을 기다림에 대한 헌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아직 비슷한 것을 하고 있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의도일 겁니다.


Q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에게 크게 다가온 ‘외면’의 경험이 있다면요?

A 공개적인 지면으로 처음 밝히는 바인데, 삼십몇 년 동안 (근래까지도) 사회적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 자아에 대한 외면이었습니다. 심리상담 중 제일 많이 나누었던 주제 역시 '지배하는 페르소나'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외면'은 제게 편린이라기보단, 일종의 덩어리진 라이프스타일이었지요.

Q ‘외면’의 영어 제목으로 ‘거부’라는 의미를 가진 ‘Denial’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A 위에서 말한 대로 이번 싱글의 제목 '외면'은 자기부정의 총체를 담기 위한 그릇입니다. 나의 자아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한, '있음'에 대한 부정이기에 Avoid와 같은 소극적 태도의 단어보다 더 강렬한 단어가 필요했습니다.

Q Room306의 ‘외면’을 제외하고 ‘외면’당했을 때의 감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곡이 있다면요?

A 질문을 '타인에 의한 외면당함'으로 읽지 않고 ‘자신을 외면함'으로 읽고 답변할게요.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소라 선생님의 <아멘>이 떠오릅니다. 실존의 상태가 너무나 희미해질 때마다 이 노래를 꺼내 듣곤 내면으로 침잠했었기 때문일 겁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노래지만, 저에게는 함께 지르는 절규 같았거든요.

Q ‘외면’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한다면요?

A 어쩌다 보니 이미 다각도로 충분히 설명해버렸네요.


퍼스트 에이드와 '외면'을 이야기한 인터뷰 잘 보셨나요? 구독자님에게 외면은 어떤 경험인가요? 저는 지난 외면의 경험과 뒤따른 감정을 통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 짓고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저희도 서로 외면하지 않고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룸306은 8월에 싱글을 하나 더 발표하고 9월에 세 번째 앨범 <술과 꽃>을 들고 찾아올 예정입니다. 영기획에서는 처음으로 발매되는 ‘세 번째 정규 앨범’인데요. 저는 늘 인디 신에서 세 번째 앨범이 발표되면 주변 모든 사람이 나서서 축하를 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거든요. 그만큼 하나의 밴드가 음악을 그만두지 않고 세 번째 앨범까지 무사히 발매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처음부터 함께 했던 이로써 첫 앨범이 안겨줬던 감정이 두 번째, 세 번째 앨범과 함께 점점 자라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벅차네요.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음악단어편지는 다음 주 화요일 오전 9시, 외면하지 않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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