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목처럼 저의 직업 공개와 더불어 반도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현재 저는 국내 반도체 제조업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요. 사실, 반도체에 대한 이야기를 레터에서도 하는 것이 회사 일을 집에 와서도 하는 기분이라 할까말까 고민했었는데, 그래도 제가 종사하고 있는 산업 분야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돼 이 주제를 들고 왔어요.
구체적으로 반도체의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반도체를 둘러싼 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구독자님에게도 도움이 되는 레터가 되길 바라며 시작합니다!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먼저 반도체 산업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반도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죠? 반도체란 뭘까요?
흔히 반도체가 도체(전기가 통하는 물질)와 부도체(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의 중간(반)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정확한 중간이라기 보다는 도체와 부도체의 특성을 모두 가진 물질이라고 생각하는게 보다 정확합니다. 즉, 필요에 따라 도체가 될 수 있고, 부도체가 될 수 있어야 하죠. 바로 이걸 0과 1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전기가 흐르는 특성을 통해 1을 만들고, 흐르지 않을 때 0을 만들어 이를 조합해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을 처리할 수 있게 하는거죠. 바로 이게 0과 1의 마법. 반도체의 연금술입니다.
이러한 반도체 비즈니스는 또 다시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메모리 비즈니스와 비메모리(시스템) 비즈니스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메모리 비즈니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로 말 그대로 기억장치(메모리)로서의 반도체에요.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한 효자인 친구죠.
이 메모리 반도체는 또 크게 DRAM(휘발성 메모리)와 FLASH(비휘발성 메모리)로 나눌 수 있는데요. DRAM은 작은 용량의 내용을 빠르게 불러올 수 있어야 해요. Ctrl+c/v/z같은 기능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우리가 보통 컴퓨터 사양을 말할 때 RAM이 몇 Gb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다 DRAM입니다.
그에 반해 NAND Flash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저장을 많이 하는게 중요해요. 용량이요. 그래서 속도는 좀 느리더라도 대용량으로 저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HDD(하드디스크), SSD와 같은 장치가 NAND Flash에 해당돼요.
비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와 다르게 비메모리 반도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억하는 기능을 넘어 연산 처리 등이 가능한 반도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시스템반도체라고 부르기도 하고, Logic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비메모리 반도체는 대표적으로 CPU, GPU(그래픽카드) 등을 말할 수 있는데, 이 시장의 플레이어는 크게 팹리스(Fabless)와 파운드리(Foundry)로 나눌 수 있습니다.
팹리스(Fabless)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Fab(공장)이 less(없는)회사에요. 그러니까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회사죠. 인텔과 AMD, 그리고 갓비디아 엔비디아가 이 팹리스 회사에 속합니다.
파운드리(Foundry)는 이 팹리스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생산해주는 업체에요. 그러니까 주문 받아 대신 제조해주는 업체죠. TSMC와 삼성 파운드리가 대표적인 업체입니다. (TSMC가 압도적 1위...)
반도체의 미래
이렇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에 대해 설명드렸는데요. 향후에 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위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미 시스템반도체의 시장 규모는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섰습니다. 앞으로 이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여요.
인공지능의 등장 등으로 복잡한 Logic을 처리할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는 점점 더 높아질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 몇 백조 단위로 투자를 하겠다는 이유에요. 놓칠 수 없는 분야인 것이죠. (삼성전자 힘내보세요?)
그렇다고 메모리 비즈니스가 성장을 멈추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계산기를 만든다고 해도 숫자를 기억해야 할 메모리는 필요하잖아요? 메모리 비즈니스도 꾸준한 성장을 거둘 겁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전통적인 메모리 비즈니스가 비메모리 비즈니스의 특징인 위탁생산(파운드리)의 성향을 보여가고 있다는 점인데요. 최근 반도체 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HBM(고대역폭 메모리)'를 예로 든다면, 엔비디아의 품질 요구에 맞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과거에도 물론 고객사의 품질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에요. 삼성전자에서 제품을 내놓으면 그 기반으로 제품 특성에 대해 요구했다면, 이제는 제품 개발부터 고객사의 요구사항이 깊게 반영된다는 것이죠.
앞으로 메모리 비즈니스가 어떤 사업적 방향으로 진행될 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비밀
반도체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고, 관련 주식 종목을 매수해본 분이 계시다면 이 '슈퍼사이클(Super Cycle)'이라는 단어를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반도체는 특정 주기를 기준으로 호황과 불황을 경험하는 사이클을 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장기적으로 대호황이 오는 시점을 슈퍼사이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반도체는 도대체 사이클을 왜 탈까요?
앞서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사이클의 특성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주로 드러나요.
자동차나 다른 산업에서는 특별히 나오는 용어가 아닌데, 반도체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유는 바로 '공급과 수요'의 비밀에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확한 수요 예측이 어렵다는 메모리 반도체의 특징에 있습니다.
우리가 반도체에 대해 가끔 간과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반도체도 결국에 부품이라는 것이에요. 부품 산업은 모두 완제품 산업을 따라갈 수 밖에 없죠. 우리가 지금 난리인 고성능 AI 산업을 살펴본다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어요.
결국엔 반도체의 사이클 흐름을 만드는 산업 구조에 있어서 메모리 반도체도 후속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죠.
채찍효과(Bullwhip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공급망에서 최종 소비자의 작은 수요 변동이 제조업자에게 전달될 때, 소비자와 제조업자가 각각 미래 수요에 대해 서로 다른 예측을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수요 정보의 왜곡 현상을 말해요.
그러니까 소비자의 작은 수요 변화에도 저 끝단에 있는 제조업체와 공급업체는 그 변화가 증폭되어 큰 변동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소매업체들의 출혈경쟁도 이 채찍효과에 한 몫을 하는데요.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 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2016~2018년의 경우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고, 이는 과열 경쟁을 낳아 실제 수요보다 과하게 투자되어 결국 진짜 수요가 잡힌 뒤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과잉을 낳았죠.
또한 첨단 장비 기반의 산업인 반도체의 경우에 실제 투자와 공급간의 시간차가 존재해요. 그러니까, 지금 수요가 폭증한다고 해서 이를 몇 개월 안에 바로 공급을 늘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수십조원을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설비를 투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장사가 잘 돼 공장을 짓고 투자를 했지만, 실제 공장이 지어졌을 때 그만큼 수요가 없어 공급 과잉을 낳을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럼 투자를 천천히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코로나처럼 특정 이슈로 인한 호황이 온다면요???
그러니 메모리 반도체는 항상 불확실한 수요와 싸워야 해요.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트럼프 당선과 메모리반도체
지난 한 주를 뜨겁게 만든 소식이 있었죠. 바로 미 대선의 당선자가 도널드 트럼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트럼프 정부가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가져올 영향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가장 큰 챌린지를 가져올 것이 미/중 갈등 이슈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정말 싫어하죠. 과거 트럼프 집권 1기 시절에도 중국에 대한 많은 제재를 가하며 중국을 압박했어요.
이런 중국 압박 기조는 이번 집권 2기에도 유지될 것으로 보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관련 움직임이 중요해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는 우시, 충칭, 다롄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삼성전자의 NAND Flash의 30%에 해당하는 물량과 SK하이닉스 DRAM의 40%에 해당하는 물량이 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중국에 최신 반도체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발전을 견제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은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거에요.
바이든 정부에서는 VEU(Verified End User : 최종 사용자 승인 제도)를 통해 일부 허용해주었지만, 트럼프의 대중 정책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이 중국 사업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근데요. 그렇다고 중국은 가만히 있을까요?
중국은 이런 미국의 견제에 반도체 내재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경제적 지원을 발판 삼아 정말 많은 성장을 이뤄왔어요.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의 구형 제품을 뜻하는 레거시(Legacy) 제품에서는 중국 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중국 기업이 확보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당면한 큰 어려움 중 하나이기도 하죠.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던 중국 시장에서의 파이가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특히나, 두려운 사실 중 하나는 반도체 공급망의 큰 줄기를 담당하는 소재/부품/장비 역시 내재화를 추진해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실제로 상당 부분에 있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 대신에 자국기업을 활용하여 반도체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중국의 반도체 제조 기술이 최선단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설계(미국) - 제조(한국,대만) - 조립,판매(중국)"의 산업구조라 볼 수 있었지만, 이 구조에 큰 흔들림이 예상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인 것이죠. 미국도 설계 뿐만 아니라 제조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고, 중국도 설계와 더불어 제조 역량을 내재화하려 하고 있죠.
그 중간에 낀 우리나라의 제조업체들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이 불확실성에 대응해나갈지... 매우 중요한 시기로 보입니다.
오늘 이렇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이야기 몇 가지를 나눠봤는데요. 제가 평소에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이렇게 레터에 정리해보니 또 감회가 새로운 듯 합니다.
반도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이고, 기술적/정치적/경제적 모든 면에서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기에 반도체를 둘러싼 이야기는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반도체를 다 아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반도체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가 있거나 수정/보완할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혹시나 반응이 좋다면 다음에 또 들고 올게요😁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안녕!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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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죵
삼전 진입 타이밍인가요?
완중일기 (94)
아…. 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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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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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중일기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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