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도전합니다 - 3편(최종편)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벌써 11월이네요. 오늘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도 지나가고 있구나를 느끼게 하는데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번 예고드린대로 마라톤 3편(최종편)을 준비했어요. 3편에서는 10월 27일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한 후기와 그 동안 달리기를 하며 느낀 것들에 대해 나눠보려 합니다.

 과연 저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성공해냈을까요? 

▼ 완중일기 마라톤 1,2편 보러가기

춘천마라톤 D-1, 긴장과 설렘

 멀게만 느껴졌던 춘천마라톤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정말 오랜만에 긴장감이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루 전날에는 달리기의 주요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몸에 저장하는 '카보로딩'을 해주어야 하는데, 너무 긴장이 돼서 먹다가 체할까봐 걱정이 들 정도였어요.

 저녁에는 마라톤에 나갈 짐을 미리 싸두고, 마라톤 레디샷을 아래와 같이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I'm ready!

마라톤 D-day, 3대 마라톤 그 현장 속으로

 드디어 10월 27일 마라톤 당일이 되었고 춘천에 아침 8시까지는 도착해야 했기에 제가 사는 수원에서 5시 반에 출발했어요. 

 고맙게도 친구들이 응원해주러 와서 가는 길에 운전도 안하고 편하게 갔습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러닝 열기를 실감하듯 출전 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고요. 2024년 춘천마라톤은 10km, 풀코스(42.195km) 두 종목 합쳐 총 2만 여명이나 참가한 대규모 마라톤 축제였습니다.

 수많은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룹별로 인원을 나누어 출발을 하게 되는데요. 저는 C그룹에 속하여서,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C그룹 구역으로 발길을 옮겼어요.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휴대폰을 친구들에게 맡기고 저 혼자 C그룹으로 발길을 옮기고 나니, 그제서야 진짜 실감이 나더라고요. 나 풀코스 나가는구나!

 그렇게 긴장을 하면서 출발을 기다리는 와중 한 도인(?)같은 분께서 팔짱을 딱 끼고 맨발로 서 계시는거에요. 설마 맨발로 뛰시려는 건가? 라는 생각으로 여쭤봤지요. 정말 맨발로 이 42.195km를 뛴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구나 느꼈어요 ㅋㅋ. 제가 첫 마라톤이라고 하니 제게 응원을 불어 넣어 주셨고, 도인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10km) 하나. 둘. 셋. 출발 그리고 당황하다.

 그렇게 제가 속한 C그룹의 출발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출발선을 가득 메운 응원 인파들을 보면서 응원받는 사람들이 왠지 되게 부럽고, 제 친구들 얼굴을 찾게 되더라고요.

 사실 제 친구들이 제가 뛰는 동안 밥 먹으러 다녀온다고 해서 이미 식당으로 간 줄 알았는데, 너무 고맙게도 출발선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곳에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들을 찾는 제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어쨌든 출발 직전에 친구들의 응원소리를 들으니 약간 울컥하기도 하고, 힘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올 여름 구슬땀을 흘리며 준비한 완중일기의 춘천 마라톤이 출발 총 소리와 함께 막을 올렸습니다. 

 저의 이번 춘천마라톤 풀코스 전략은 600(6분/km) 페이스로 최대한 밀고, 32km이후부터 힘이 남는다면 페이스를 높인다는 안전한 전략을 세웠는데요.

 초반부터 어려움을 맞이했어요. 위 고저도를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춘천마라톤은 '업힐(오르막 언덕)' 코스로 매우 유명한 대회에요. 초반 업힐을 마주하면서 생각보다 심박이 너무 높게 나온 거에요.

 평소에 600페이스로 뛰면 110~120bpm 수준밖에 나오지 않는데, 업힐 코스를 마주하니 이게 170까지 치솟더라고요. 러닝에서 '심박수=에너지'이기 때문에 초반에 이렇게 높은 심박이 나오면 뒤에 가서 분명 퍼지거든요. 그래서 이 높아진 심박을 안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어요. 다행히 업힐 코스가 그리 길지는 않아서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10~20km) 멋진 절경과 멋지지 못한 내 상태

 초반의 업힐 몇 번을 겪고 나면 완만한 평지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춘천의 멋진 절경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의암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절경과 알록달록 피어난 단풍을 보면서 춘천마라톤이 왜 '가을의 전설'로 불리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멋진 절경과는 달리 몸 상태는 좋진 않았어요. 대회를 준비하면서 오른쪽 무릎 슬개건 쪽이 가장 문제였는데, 그 쪽은 괜찮았는데 10km를 넘어가면서 왼쪽 허벅지 바깥쪽 근육(햄스트링)이 엄청 당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연습하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통증이라서 엄청 당황했어요.

 쥐가 나는 것(근육경련)은 경험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건 진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마음 속으로 계속 기도했어요. 제발 쥐만 나지 않게 해달라고... 이 때부턴 기록 욕심보다는 안전하게 완주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몸을 계속 관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메디컬 스태프분들을 만날 때마다 파스를 뿌려서 최대한 근육 경련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이렇게 몸에 조금씩 이상이 오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같이 뛰는 분들과 왜인지 모를 전우애가 생기더라고요. 특히 춘천마라톤에는 터널 구간이 있는데, 터널 속에서 소리가 울리는 것을 이용해서 서로 화이팅을 넣어주는 문화가 있어요. 저도 터널에서 있는 힘껏 함성을 지르면서 마음을 다잡는데 진짜 짜릿하더라고요.

(20~30km) 마라톤엔 달리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20km를 지나 하프(21km부근)을 지날 때쯤이면 춘천 마라톤의 응원 맛집 신매대교가 등장하는데요. 이 신매대교에는 수 많은 러닝 크루와 응원단이 참가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줍니다.

 재미난 것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응원해준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러닝 크루에 들지 않았어도 응원단들은 배번표에 적힌 이름을 보고 'OOO 화이팅!'을 말해줍니다.

 저도 이 곳에 제가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정말 큰 힘을 받았어요. 이게 '응원뽕'이라고 하는건지 하프를 달리며 힘든 피로를 잊게 되었습니다.

 응원단뿐만 아니라 달리는 참가자들끼리도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레이스를 이어가는데요. 힘들어하는 참가자에게 파스를 건네거나 에너지젤을 건네는 등 서로 격려하면서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힘을 불어 넣었어요. 인상 깊었던 참가자는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이 있었어요.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결혼식 복장을 입고 참가했는데 보기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30~40km) 지옥의 구간. 나 자신과의 싸움.

그렇게 20km를 넘어 30km구간에 진입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지옥의 구간이 시작되는데요. 이때부터는 걷는 분들도 많이 보였고, 절뚝이면서 파스를 찾는 분들도 많이 보았어요. 

 저에게도 이때 큰 시련이 찾아왔어요. 10km 넘어서부터 당기던 왼쪽 허벅지에 더해 오른쪽 다리도 무거워지기 시작한거에요.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애플워치가 수명을 다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당황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는데, 평소에 연습할 때도 당연히 워치를 보면서 페이스를 조절했기에 애플워치가 꺼졌다는 사실이 큰 불안함으로 다가왔어요.

 중요한 대회인데, 충전 안 하고 뭐했냐고요? 당연히 풀 충전했지요. 그런데 무게를 줄여보겠다고 핸드폰을 두고, 워치만 차고 뛴 게 화근이었어요. 워치 단독으로 GPS어플을 키고, 저장한 팟캐스트를 들어서 그런가 10km부터 배터리가 엄청 빨리 달았습니다. 그렇게 30km 부근에서 제 워치는 사망했어요...

 그렇게 꺼져버린 워치를 주머니에 욱여넣고, 그냥 단념했습니다. 그래, 앞으로 남은 12km 구간은 그 동안 연습한 나를 믿고, 온전히 집중해서 달려보자.

 오히려 그렇게 마음 먹고 나니 뭔가 100% 제 레이스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발 소리와 호흡 소리를 하나하나 느껴가며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 춘천마라톤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여력이 나면 약간의 스퍼트를 내보기도 하고, 호흡이 가빠졌다 싶으면 깊게 호흡하며 조절하기도 하고, 뭐랄까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준비해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집중한 순간이었어요. 저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이때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37km부근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다리는 돌처럼 무겁고, 딱딱한 느낌이었고, 당장이라도 걷고 싶은 충동이 쏟아졌어요. 이쯤이면 1km가 지났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1km, 1km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32km이후부터 힘이 남는다면 골인지점까지 스퍼트를 내고 싶었는데, 안전하게 멈추지 말고 완주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죠. 파스를 들고 있는 분들이 보일 때마다 찾아가서 제 무릎을 내어 파스 좀 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감사하게도 안전요원이 아닌 분들도 도움의 손길을 주셔서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40km~) 한 걸음. 한 걸음. 피니시를 향해

 40km가 넘어가면서부터는 100m만 더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뛰었습니다.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체감했고, 속으로 하나, 둘, 셋...열을 외치면서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고 했어요. (오래 뛰면 무슨 생각하면서 뛰냐고 묻는 분들 계신데, 그냥 뛰는 겁니다... 아무 생각 없어요)

 그러다가 41km 지점에서 걱정하던 근육경련이 발생하고 말았어요. 진짜 여기까지 다 와서 DNF(중도포기 : Did Not Finished)를 하는건가?라는 생각에 좌절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근처에 계신 어떤 분의 도움으로 바로 파스를 뿌리고, 근육 경련을 풀어주었어요. 근육 경련이라는 게 한 번 올라오면 두 번은 아주 쉽게 올라오기 때문에 진짜 조마조마했던 것 같아요. 다리야 제발 1km만 버텨다오...

 달린 시간은 어느새 4시간이 넘어 가 있었고, 응원 인파로 가득한 결승선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승선을 보니 신기하게 다시 힘이 나더라고요. 사람들의 응원은 결승선 앞에서 가장 강렬했는데, 모르는 분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며 화이팅을 외쳐주어서 진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나아갔고, 반가운 친구들의 얼굴이 보이자 안도감이 들었어요. 나 진짜 했구나.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하며 제 첫 풀코스 마라톤 레이스는 막을 내렸습니다.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고, 무엇보다 끝까지 걷지 않고 뛴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마라톤 완주를 통해 느낀 것들

 사실 러닝 좀 한다는 사람에게는 그리 대단한 기록도 아니지만, 이번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어요. 그래서 느낀 점 몇 가지를 구독자님과 나누며 이번 레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성공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자

 마라톤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성취. 성공의 경험이 절실했던 것 같다. 취업 이후 그다지 큰 목표를 두고 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성취하고, 성공할 일도 많이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 성공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마라톤이었다.

 그럼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잘 성공해낼까'였다. 

 과거 성공 경험을 떠올렸다. 나에게 좋은 성공의 경험으로 남은 것은 '빅데이터 스터디를 조직한 경험'이다. 당시 나는 데이터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끈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직을 만들고 이끌면 책임감을 갖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결론적으로 나는 데이터 쪽으로의 길을 걷지 않게 되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넘도록 꾸준히 공부해볼 수 있었고, 같이 공부한 친구들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성공 경험이라 규정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마라톤에도 이 ‘성공 시스템’을 이용하기로 했다. 책임감.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목표를 말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책임감 있게 준비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해냈다. 

 전세계 최고의 스포츠 선수 중 한 명인 코너 맥그리거는 말했다.

인생은 마라톤

 인생은 마라톤. 마라톤은 인생. 참 진부하고 식상한 말. 그런데 마라톤 해보니 이 말이 뭔지 알 것도 같다. 

 높은 오르막길을 마주하면 고개를 숙이고 보폭을 줄여 눈 앞에 있는 1m, 1m에 집중한다. 그러다 언젠가는 또 내리막이 온다. 그러면 내려가는 중력에 몸을 맡기고 조금 즐겨본다. 근데 또, 너무 들떠서 오버하면 안 된다. 다친다.

 길게 볼 줄도 짧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 42km를 달려야 하니 초반에 무리하면 안 된다. 힘들 땐 또 길게 생각하지 않고 1km, 1km 잘게 나아간다. 그러면 어느새 10km, 20km, 30km 와 있다.

 사람들은 러닝을 왜 할까? 마라톤을 왜 할까? 나는 성공 경험을 갖고 싶어서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근데 또 하고 싶다. 왜일까?

 일본의 유명한 작가이자 러너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어디선가 '잘 먹고 잘 사는게 있고, 멋진 게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잘 먹고 잘 사는건 효율의 문제이고, 멋진 건 그 관점에서는 비효율이라고. 그런데, 이 멋진 비효율이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게 한다고.

 하루키의 말처럼 마라톤을 하는 것은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별로인 비효율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것을 찾아내고 싶은 본성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그게 멋지다고 생각한다. '멋진 비효율'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만의 '멋진 비효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큰 동력이 되지 않나 싶다. 마라톤 인생과 참 닮아 있는 것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