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사회를 보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2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그간 참 바쁘게 보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일들이 많았거든요😇

 물론 아주 행복한 일들이었답니다. 불과 3일 전 행복한 생일을 보냈고, 열흘 전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하고 왔어요. 바로 친한 형의 결혼식 사회를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는 완중일기가 결혼식 사회자로 데뷔하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에 대해 구독자님과 나누고자 해요.

 구독자님께서 이미 결혼하셨다면 설레고 행복했던 그날의 추억을, 아직 결혼하지 않으셨다면 찬란하고 빛날 그 날을 상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

0. 제가 어떻게 사회자가 되었냐면요...

 결혼을 앞둔 친한 형과 카톡을 하다가 갑작스레 사회자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결혼식에 제가 필요하다고 전에 이야기했었지만, 설마 설마 그게 사회일 줄은 몰랐어요.

 처음엔 사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에 가면 사회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형과 형수님 두분 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열심히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1. 사회자 그거 어떻게 준비하는건데?

 그런데 이거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초짜 사회자에겐 걱정이 가득했어요. 그나마 미리 연습할 수 있는 것은 유튜브로 연습해보는 것인데, 전문 사회자 영상만 가득한 유튜브를 보고 나면 주눅 들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게 보였는지 형과 형수님은 전문 사회자가 아닌 제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어요. 식순에 맞는 스크립트 초안을 직접 짜주셨고, 거기서 제가 원하는대로 멘트를 바꾸거나 조정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진행해도 좋다며 자율성을 주고, 편하게 해줘서 그 부분이 참 고마워요.)

2. 아름다운 결혼식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말

 짜여진 식순과 초안을 바탕으로 "진짜 대본" 작성을 준비해야 했어요. 정말 많은 고민이 됐습니다. 위트 있는 멘트로 하객들에게 재미를 주면서도, 두 사람의 빛나는 결혼식에 폐를 끼치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멘트를 던져가며 '이렇게 말하면 어때?'하며 귀찮게 굴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전문 사회자만큼 발성을 잘하고, 진행을 잘할 순 없겠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전문 사회자보다 백 배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실력이 안 되면 진심으로 호소한다... 이런 전략으로 가야겠다 결심했죠ㅋㅋ 

 이런 마음으로 준비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3. 녹음하고, 듣고... Tone을 찾아서

 그러나 진짜 고비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완중일기로 매주 글을 쓰는 저는 비교적 글 쓰는 건 자신 있는 편이었는데, 사회자는 글이 아니라 말로 해야 하잖아요? 상황에 맞는 발성과 톤, 속도.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했어요. 

 그래서 예전에 유튜브 쇼츠하려고 샀던(쇼츠 4개 만들고 지쳐서 그만둠.) 마이크를 다시 꺼내 녹음을 했어요. 

 마이크를 이렇게 켜놓고 녹음을 하고 있자니 옛날 취업 면접 준비하던 시기가 떠오르더라고요. 떨리고, 긴장되는 것이 4년 전 그때랑 똑같았어요🥶

 녹음을 한 내용을 들으니 스크립트로 볼 때는 몰랐던 어색한 어조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경쾌하고 웅장한 신랑 입장 시에는 '입장'이라는 단어를 힘차고 우렁차게 해야 어울리지만, 신부의 '입장'에는 보다 차분하고, 고급스럽게 말해주는 게 좋거든요. 

 또 제 멘트 뒤에 나올 배경음악과 톤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단 걸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우렁차게 외쳤는데 잔잔한 클래식이 나오면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운전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계속해서 듣고 이상한 부분을 수정했어요. 그리고 자주 들으니 쉽게 외워지는 효과도 있었고요!

(혹시라도 구독자님께서 사회자를 준비하고 계신다면 이 방법은 강력 추천합니다.)

4. 결혼식 당일, 나 떨고 있니...?

 마침내 결혼식 당일이 되었고, 진짜 이런 긴장감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최근이라면,,, 작년 회사 부사장 임원에게 1:1로 보고를 해야 했을 때 정도...?  (화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붉은 타꼬야끼'라는 별명을 가진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축사도 제 친구가 준비했는데, 둘이 너무 긴장해서 친구가 사준 청심원을 같이 원샷하기도 했어요 ㅋㅋ... 특히 저는 형이랑 겹치는 인맥이 많아서 많은 하객 분들을 알고 있던 터라 더욱 떨리더라고요. 먼저 온 후배가 이 곳에서 제가 제일 긴장해 보인다며 놀리기까지 했답니다.

5. 떨림은 즐거움으로

 본 식 시작 10분 전 사회자의 자리로 이동했고, 안내를 시작으로 저의 사회 첫 데뷔(?)는 시작됐어요. 처음에 진짜 많이 떨렸는데, 앞 순서였던 사회자 소개 순서에서 아래 대사를 말하니 긴장감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전문 사회자는 아니지만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열심히 진행해보겠습니다.'

 원래 앞에 나서서 이야기할 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지양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회사에서 발표를 시작하는 데 '제가 이 분야는 잘 알지 못하지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경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되고, 내용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지만 이번 결혼식은 전략적으로 진심에 호소하기로 판단했어요. 전문성보다 진심이 더 통하는 곳이니까요. 저렇게 말하고 나니 제 맘도 편해지더라고요. 

 청심원과 '전문가 아니다! 선빵 효과' 탓인지 비교적 편안하게 식을 준비한 대로 진행했어요. 사회자의 천적인 정적이 중간 중간 찾아왔지만, 사회자 선배들이 조언해준 '무조건 박수 유도'법칙을 떠올리며 떨렸던 마음은 기분 좋은 즐거움으로 변해갔고, 성공적으로 사회를 마쳤습니다. 

6. 가벼운 마음으로 즐긴 아름다운 밤

 저의 모든 역할을 끝내고, 2부 피로연과 준비된 애프터 파티를 가벼운 마음으로 맘껏 즐겼어요. 식은 물론이고, 파티에서도 곳곳에 녹아 있는 형과 형수의 정성에 많은 하객이 즐거움을 느낀 행복한 밤이었어요.

 하객들의 귀한 토요일 밤을 절대로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듯 즐거운 이벤트가 많았는데, '맥주 빨리 마시기 콘테스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남자부 우승자는 맥주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역시 전문가는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ㅋㅋㅋㅋ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있었는데, 형과 형수의 스토리를 담은 저의 멘트가 울림이 있었다며 칭찬해주는데 너무 뿌듯했습니다. 전문성보다 진심으로 승부 본 전략이 통했구나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밤은 저물어갔고, '형식'보다 '의미'에 초점을 두고 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결혼식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되었어요. 

7. 결혼식 사회를 보고 느낀 것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봤지만, 사회자를 하게 되다 보니 이렇게 집중한 결혼식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제게 참 많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참 많은 축하를 하고 또 받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축하는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한 축하인 것 같아요. 과거에 어떤 노력과 성취를 한 것에 대한 격려를 해주는 것이죠. 예를 들면 졸업이나 취업, 승진 같은 일이죠.

 그래서 결혼이 특별한 것 같아요. 앞으로 두 사람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축하거든요. 결혼식에 '축하'라는 단어보다 '축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이유에요. 두 사람의 배경과 과거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없이 존재 자체를 응원하고 축복하는 거에요.

 저는 사회자로서 하객들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어요. 그리고, 그 표정에서 이 축복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예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자의 특권을 제대로 누린 순간이 더 있었는데요. 신랑 아버지의 덕담을 듣고 울컥하는 하객들. 친구의 축사를 듣고 눈시울을 붉히는 양가 부모님들.

 신랑신부를 중심으로 소중한 인연들이 모여 서로 감동받는 것. 결혼식이 아니라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일 아닐까요? 결혼식이 생각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임을 느끼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잊지 못할 순간들을 선물해준 두 사람에게 깊은 고마움과 축복을 남기며 이번 레터를 마칩니다!! (T.M.I 쿠키있음)

[T.M.I] 사회를 준비하며 알게 된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

한국의 결혼식 역사

 돈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구려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군말 없이 결혼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성혼 선언의 의미

 위에서 말했듯이 지금의 결혼식은 서양식 예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즉, 종교적인 의미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서양식 예식은 교회나 성당에서 많이 이루어졌고, 주례와 성혼 선언은 '신의 대리인' 자격을 갖춘 성직자가 담당했죠. 

 그러나 현대에 들어 '신' 중심 문화가 와해되고, 세속주의가 팽배하면서 종교적 의미는 줄어들었고 이 성혼을 선언해줄 성직자의 권위가 줄어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를 대신하여 '법'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적 자격을 갖춘 사람을 주례인으로 세워 엄숙한 성혼 선언에 권위를 더했다고 해요. 그리고 하객들은 이 '법적 사건'의 증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혼식에 성혼 선언은 꼭 빠지지 않는 답니다. 이번 결혼식에서도 제가 성혼 선언을 하게 되었는데, 요즘에는 이렇게 '형식'보다는 '의미'에 중점을 두고 사회자가 선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