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올해는 처서매직도 없나봐요. 8월 말이 되어도 더위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저는 지난 레터에 말씀드렸듯이 여름 휴가 겸 호주에 놀러 다녀왔는데요. 호주도 이상 기후의 영향을 받는 지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날씨의 연속이었어요.
비록 6년 전에 찾았던 시드니의 맑은 하늘을 내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따금씩 선물처럼 찾아온 푸른 하늘과 바다는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구독자님도 지친 몸과 마음에게 휴식이 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이 제일 우선입니다 !!!
오늘의 레터 - <알베르 카뮈 - 페스트>
오늘은 오랜만에 책에 대한 내용을 나누고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La Peste)’라는 책을 들고 왔어요.
이 책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쓴 소설인데요.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간단 줄거리를 보고 나니 떠오르는 단어가 있지 않나요? 바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코로나(COVID-19)예요.
코로나 19 팬데믹 시절, 카뮈의 페스트의 내용이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무너진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 있어 큰 화제가 되었어요.
저도 페스트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이 코로나 사태를 떠올려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임과 만남이 중지되었고, 서로는 단절되고 사람들은 재미를 잃어갔죠.
이 책 역시 인간들이 통제할 수 없는 페스트 상황 속에서 인간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대응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는 여러 등장인물에 빗대어 우리 인간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볼게요.
베르나르 리외(Bernard Rieux) - 선함과 성실함으로 부조리를 견딘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서술자가 되는 의사 리외는 카뮈가 구현하는 윤리적 인간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인물입니다.
리외는 의사로서 페스트의 발병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 잔혹한 참상을 목도하며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특히 판사 오통씨의 딸이 페스트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리외는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환자를 돌봅니다.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죠.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함입니다.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함이라고 말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싸움에서도 하루하루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요.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우리에게도 리외와 같은 무명의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코로나가 종식되고, 그 시절 코로나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것들이 코미디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당시에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코로나 감염자 수 뉴스 발표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웠고, 감염자의 이동 경로를 피해다녔고, 사람들의 만남은 금지되었었죠.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고, 케어해야 하는 의료진들에게 주어진 책임감도 매우 막중하였고, 그만큼 위험과 우려도 매우 컸습니다.
유퀴즈에 출연해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중앙보훈병원의 한 간호사의 말씀은 유재석씨를 비롯한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위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성실하게 맞서 싸우는 의료진의 모습에 인간으로서의 존경과 경외감을 느낀 것이죠.
알베르 카뮈 역시 리외라는 인물을 통해 의미 없는 세계에서도 행동을 통해 저항하는 인간의 실존적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페스트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A인지 B인지 명확한 답이 있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음을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정답이란 없는 우리네 인생 속에서 '버티는 것이 이기는거야!'라고 리외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장 타루(Jean Tarrou) - 철저한 윤리적 고민으로 가득 찬 도덕적 이상주의자
타루는 가장 복합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윤리관을 실천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보건대(=자원봉사단)를 직접 구상하고,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페스트와 맞서 싸워요. 책의 중반부까지는 그의 직업이나 신원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후반부에 리외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윤리관의 배경을 엿볼 수 있는데요.
넉넉하고,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란 타루는 어느 날 검사인 아버지를 구경하러 법정에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특별히 사악하거나 나빠 보이지 않는 피고인을 향해 아버지가 사형을 구형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빠지게 되고, 이 계기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의 죽음을 돕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죠.
자발적으로 보건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타루는 카뮈가 묘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스스로 윤리적인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죠.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타루와 같이 적극적으로 본인의 윤리적 생각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또 다시 유퀴즈에 나온 사례를 보여드리자면, 코로나 맵을 개발한 이동훈 씨가 있는데요.
이동훈 씨는 코로나 맵을 개발해서 확진자 수 및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온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이는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 확진에 관한 거짓 정보로부터 우리가 보다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전달 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여러 투자 제의가 있었음에도 사명감으로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 이동훈 씨에게 유퀴즈를 통해 정말 많은 분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TMI로 말씀드리자면 이동훈 씨는 저의 대학교 동기입니다. 잘 지내지 형? 친한 척... ㅋㅋㅋㅋㅋ)
이동훈 씨를 비롯한 수 많은 장 타루들의 행동이 페스트균 자체를 없애는 데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을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영웅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죠.
랑베르(Rambert) - 인간은 결국 개인을 넘어 타인과 연대한다.
랑베르는 파리의 신문 기자인데, 취재 차 왔던 오랑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그만 오랑에 갇히고 말아요.
생이별한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봉쇄된 오랑을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계획했던 탈출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랑 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함께 겪게 되죠.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탈출의 기회가 마침내 랑베르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랑베르는 이 곳 오랑에 남기로 결정해요.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랑베르는 처음에는 개인의 사랑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점차 공동체와 윤리의식의 중요성을 추구하는 인물로 변화하게 됩니다.
카뮈는 랑베르를 통해 인간이 개인적 욕망을 넘어 타인과 연대하는 존재임을 랑베르를 통해 묘사하고 있어요.
실제로 현실판 페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공동체 의식은 보다 중요시되었어요. 2020년 매드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전년도 대비 8% 가량 증가한 것이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 타인과 연대해야 한다는 중요성이 강조되었어요. 리외와 타루와 같은 숨겨진 영웅들의 모습 역시 개인적인 이익만을 좇는 랑베르와 같은 인물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었죠.
한 편으로는 이렇게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었기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 군상 역시 그와는 비교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동양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인종차별이 일어나는 사례가 많았고, 타지에 있는 죄 없는 동양인들은 그 차별로부터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흔히들 극한 상황에서 그 사람의 본능이 보인다고 말하죠.
코로나라는 심각한 페스트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연대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기주의라는 씁쓸한 인간의 모습 역시 발견했습니다.
구독자님이 랑베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우리는 오랑에 남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코타르(Cottard) -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어두운 거울
앞선 랑베르의 사례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모두가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하며, 인간답게 살지는 않습니다. 카뮈는 코타르라는 인물을 통해 그런 씁쓸한 인간 상을 묘사하고 있어요.
코타르는 소설 초기에 자살 시도를 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직접적인 직업이 보여지진 않지만,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살아왔을 것으로 추정돼요.
코타르는 모두가 불안하고, 괴로워하는 페스트 시대에 오히려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낍니다. 페스트 시대를 이용해 불법적인 일을 하며 부를 축적하고, 공동체의 고통에 공감하기 보다 혼란을 기회로 삼아 개인의 이익을 좇는 인물로 그려지죠.
코로나 시대에도 혼란한 틈을 타 타인과의 연대보다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씁쓸한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예방 물품(마스크, 소독제 등)들을 매점매석하여 폭리를 취하는 유통업자들도 많았고, 코로나 관련 허위 정보를 통해 이익을 본 개인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슬프지만 현실판 코타르 역시 인정해야 하는 인간 군상 중 하나임을 우리는 깨닫습니다.
책에서 코타르는 페스트의 종식 이후에 다시금 불안을 맞이합니다. 모두가 안정을 찾자 오히려 불안을 맞이합니다. 극심한 불안 증세로 인해 코타르는 무자비한 총기 난사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경찰에게 진압되어 자기 파괴적인 결말을 맞이해요.
카뮈는 이런 결말을 통해 타인과의 연대 없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파멸적인 비극을 맞이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구독자님은 누구와 닮아있나요?
지금까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통해 여러 인간 군상을 살펴봤습니다. 묵묵히 성실함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리외부터 타인의 고통을 기회로 삼는 코타르까지요.
구독자님은 누구와 닮아 있는 것 같나요?
사실 페스트는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 이외에도 우리의 삶에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전쟁, 자연재해, 개인의 문제 등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은 늘 찾아오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일 때 우리는 보다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구독자님께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통제 가능한 것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리외처럼 묵묵히 성실하게 버티고 또 버티며 견딜까요.
타루처럼 적극적으로 개인의 가치관대로 행동하며 투쟁할까요?
아니면 코타르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진 않을지요?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페스트>
카뮈는 페스트를 위 문단 내용으로 마무리합니다. 페스트가 끝난 축제같은 분위기 속에서 마치 찬 물을 끼얹는 것 같은 이 내용을 통해 작가 카뮈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인간의 삶에 부조리한 상황(페스트)은 필수불가결하게 잠들어 있다는 것이고, 그런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건 오로지 인간다움(성실함, 타인과의 연대)에 있다는 것 아닐까요.
요즘 주변에 결혼식이 많아 참석해보면, 꼭 축사나 덕담 내용에 '힘든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축제 분위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산통 깨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에 고통이란 녀석이 동반자라는 그 사실을, 그리고 그 속에서 이겨낼 수 있음은 서로에 대한 인간다운 사랑임을 알려주는 인생 선배의 무거운 충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레터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레터는 선선한 바람이 찾아올(찾아왔으면 하는) 9월 10일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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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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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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