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이벤트] 독서의 이유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벌써 1월도 보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신년 목표는 잘 세우셨나요? 그리고 그 목표를 세울 때의 열정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계신지요?

친구들과 신년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목표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독서'입니다.

'한 달에 한 권 읽기' 혹은 '1년에 몇 권 읽기' 등 많은 분들이 아마 독서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계신 듯 합니다.

이렇게 독서가 모두가 추구하는 목표라고 한다면 마치 '건강 챙기기', '가족에게 잘하기'와 같이 꼭 해야하는, 혹은 하면 당연히 좋은 행위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독서가 과연 왜 좋은 걸까요?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요.

저 역시 30년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책과 담 쌓고 살다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불과 3~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요. 수천 권의 책을 읽은 독서광도 아니고, 글과는 거리가 먼 공대생으로 살아왔기에 독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을 꾸준히 읽으려는 사람으로서 또 글을 꾸준히 쓰려는 사람으로서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깊이 사유해보는 시간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번 레터를 준비했습니다.

독서란 무엇일까

독서의 이유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피기 전에 독서. 즉 책을 읽는 행위란 무엇일까요?

회사에 친한 부장님이 한 분 계시는데요. 평소에 조금 얄미운 말과 행동을 하셔서 가끔 미워할 때도 있지만, 책을 20년 넘게 꾸준히 읽어오신 대단한 독서광인 부분 만큼은 리스펙하고 있어요.

이 부장님께 어느 오후에 뜬금없이 물어보았습니다.

'부장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행위인가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부장님은 당황하셨지만,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행위'야. 주변에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드물어지거든.

그래서 나는 책을 읽어. 수백 년 전에 훌륭한 생각과 재미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잖아.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읽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정의가 다소 싱거울 수도 있지만 저는 묘하게 설득이 되더라고요.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 위해서, 지적 수준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멋진 이유들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자 책을 펴는 것이잖아요.

우리의 상황에 맞는 책을 읽었을 때 더 잘 읽히는 이유이기도 해요. 나의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의 말에 귀를 쫑긋하게 되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도 독서를 하고 싶은데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친구에게 베스트셀러를 사기 보다는 현재 관심이 있는 분야와 관련한 책으로 시작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답니다.

독서의 차별점

앞서 부장님의 독서의 정의가 '이야기를 듣는 행위'라고 한다면, 독서가 다른 매체들과 비교해서 갖는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은 정말 많습니다. 영화도 있고요. 오징어게임과 같은 엄청난 TV 드라마도 있어요.

그렇지만, 신년 목표로 '넷플릭스 200편 보기', '유튜브 결말포함 영화 150편 보기'와 같은 목표를 세우진 않잖아요.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크게 보면 2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첫째로 독서가 영화/드라마보다 실제로 뛰어나기 때문에

둘째로 독서를 하면 멋있어 보이기 때문에(지적 허영심)

내가 가본 도서관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두 번째 이유는 조금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요.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독서가 영상 매체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있어 갖는 뛰어난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가장 큰 이유로 독서가 '고도의 몰입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 영상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웬만한 자극적인 내용이지 않고서야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없어요.

TV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동시에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을 하곤 하죠. 시선을 모니터에 두지 않아도, 청각으로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 수 있기에 최소한의 집중력만 할애하기도 해요.

심지어는 빠르게 지나가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빨리 감기로 넘겨가며 그 속도를 맞추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책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일단 주위가 산만하면 책 자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작정하고 책을 읽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죠.

집중이 잘 되는 카페에 가거나, 책상 앞에 앉아 자세를 잡고 시선을 책에 내리 꽂습니다.

이런 독자의 노력에 실력 있는 작가의 작품이 더해지면 다른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별점을 만들어내요.

저는 지난 번에 소개해 드렸던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그 정수를 느꼈는데요. 디테일한 감정과 장면의 묘사는 제 머릿속에 장면 장면을 그려주었고, 저만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고도의 몰입을 통해 만들어지는 독서의 경험은 비교할 수 없는 책의 차별화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오디오북도 독서일까

이렇게 책이 강력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매력은 오디오북에서도 통할까요?... 오디오북도 독서일까요?

최근에 밀리의 서재, 교보리딩트리 등 전자책을 넘어 오디오북의 형태로 책을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요.

미국에서도 유명 스트리밍 서비스인 Spotify(스포티파이)가 오디오북 시장에 진출했다고 화제가 되었어요.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게 되면, 몇십 권의 책에 공간을 할애할 필요도 없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핸드폰으로 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IT기술력을 통해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책을 실시간으로 번역해 자국어로 책을 들을 수도 있고요.

어쩌면 10년 뒤에는 '책을 본다.'라는 말보다 '책을 듣는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르는 것이죠.

그런데 오디오북은 독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 근거는 듣는 것은 수동적 행위라는 것이에요.

장시간 운전을 하게 될 때 세계사에 관한 오디오북을 들은 적이 있어요. 들을 당시에는 되게 재밌게 잘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머릿속에 기억이 잘 남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듣게 되니 일정 부분 놓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다시 되감기를 하는 경우도 없었고요.

그에 반해 책을 읽을 때는 충분히 사유할 수 있어요. 내 손으로 직접 책장을 넘겨가며 독서의 속도를 내 페이스로 맞출 수 있고, 감정이 닿은 곳에서는 그 문장을 여러 번 곱씹으며 짙은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런 점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듣거나 보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의미보다는, 직접 내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좇아가며 책을 내 것으로 흡수하는 능동적인 행위에요.

'들리고', '보이는'것과는 다르게 '읽힌다'라는 말의 어감이 어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은 '읽는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을 고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서와 지적허영심

앞서 이야기했던 독서의 차별점 중 2번째 이유인 '독서를 하면 멋있어 보이기 때문에(지적 허영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행위입니다.

아는 동생은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기도 하더라고요.

어렸을 적부터 책은 신성한 존재. 독서는 고도의 지적 행위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있기 때문에 저 역시 책을 읽는 행위는 긍정의 의미를 넘어 상당히 멋있는 행위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이 멋있는 행위가 책을 읽는 이유와 동기가 되기도 할까요? 그리고 그렇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까요?

독서모임에 가야하는 데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어요. 그런데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이더라고요. 휴대폰으로 밀리의 서재를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유난떠는 사람같이 보일까봐 민망함에 다른 사람의 신경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지적 허영심에서 온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해서 '지하철에서 책 읽는 나'를 멋있게 생각한 것이죠.

인스타그램에 독서를 인증하는 '북스타그램'도 결국 이런 지적 허영심에서 나온 유행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저는 지적 허영심은 책을 읽는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작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책을 급속도로 사는 사람들을 보며, 평소에는 관심도 없더니 노벨상 작가가 나오니 책을 읽는 척 한다라며 풍자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적 허영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거죠.

그런데 이런 지적 허영심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의 책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자주 ‘있어 보이니까’라고 농담처럼 답하기도 합니다.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이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일 거예요."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허영심이라는 것이 본인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물론, 책을 지하철에서 펴고, 북스타그램에 책을 올리는 그 행위만으로 이 허영심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허영심으로 펴게 된 책의 어느 한 구절이 우리의 빈 곳을 채워줄 지 모르잖아요.

책을 피지 않으면 가능성은 0입니다. 이런 허영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내면의 깊이를 채워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