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값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속도를 늦춰도 괜찮은데 멈추지 마세요.”
내가 얕은 숨을 쉬며 걷다시피 달리는 걸 보고 뒤에서 따라오던 코치님이 소리쳤다.
“전 틀렸으니 제발 내버려두고 가주세요.”
없는 힘을 짜내며 받아쳤지만, 코치님은 내 어깨를 살살 밀며 달리기를 종용했다.
“끝까지 같이 가야죠.”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산길을 5km 이상을 달렸는데 코치님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동안 시끄러운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코치는 코치였다.
“조금만 더 힘내요.”
나보다 서너 발 앞서가던 팀원도 응원의 말을 건넸다.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를 슬쩍 보며 심박수를 체크했다. ‘180+’ 내 심장은 터질 것 같은 상태를 30분 넘게 유지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달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내게 이 길을 달리는 건 큰 도전이었다. 숨을 깊게 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발이 튀어 나갈 것 같은 반발력을 제공한다는 내 러닝화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나는 중력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문득 뉴턴 선생님이 생각났다. 나무 밑에서 책을 읽을 게 아니라 러닝을 했더라면, 중력의 참맛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코치님과 팀원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앞으로 1km 정도 남았다. 그리고 나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지름길로 몸을 틀었다. 이 길로 가면 도착점까지 10초면 충분하다. 이곳에 숨어있다가 자연스럽게 합류할 것이다. 그늘에 서서 그들을 기다렸다. 달릴 땐 몰랐던 모기가 느껴졌다. 팔로 온몸을 치며 모기를 쫓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코치님이 보였고, 나는 힘든 척을 하며 천천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못 달릴 줄 알았다며, 결국은 해냈다고 손뼉을 쳐줬다. 나는 자꾸만 가려워지는 팔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날 나에게 남은 건 다른 사람보다 짧은 운동 기록, 양심의 가책, 그리고 산모기에 잔뜩 물린 자국이었다.
-박현경
📖감상 한마디
글을 읽으면서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양심 고백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낸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그늘에 숨어 산모기에 잔뜩 물린 상황으로 점철되는 결말이 아주 재밌었습니다. 단순히 재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기 반성의 여지까지 남기는 의미있는 글이 되어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오광락
단순히 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그 순간으로 몰입할 수 있게 되는 흡입력 있는 글이었습니다. 산속에서 러닝을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졌습니다. 덕분에 내가 숨이 차게 달려본 건 언제더라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해온
비유가 재미있어 글을 읽는 내내 유머감각이 느껴졌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표현해서인지, 도망칠 수 없는 산길,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름길을 선택하는 과정이 크게 공감이 됐습니다.
-안나
재치있는 표현들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적절한 대화체도 글의 묘미로 느껴졌습니다. 가벼움과 위트 안에 메시지가 숨겨져있는 글이라 좋았습니다. 꼭 무겁고 거창하지 않아도 깊은 울림과 공감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글인 것 같습니다.
-SSY
무거운 제목과 가벼운 서술의 대비를 통해 독자의 기대를 흔드는 글인 것 같습니다. ‘양심의 값’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무게는 실제로는 땀과 모기 물림으로 이야기되면서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통해 유쾌하고 가볍게 풀어내어 더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숨 가쁜 달리기와 코치님의 압박, 팀원의 격려가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결말에서는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서술로 긴장과 이완을 주는 듯한 반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조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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