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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4회차 모임 공지입니다.

느슨한 연대

'돈이 다가 아니다.' 정말일까?

구독자님, 한달에 얼마까지 벌어보셨어요? 전 728만원이요.

2024.03.04 | 조회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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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글쓰기 좋은 질문과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첫 직장을 일년도 다니지 못하고 퇴사했다. 

 

주변 친구들은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고, 해외 파견을 갔다.  온 세상이 커다란 톱니바퀴로 맞물려 굴러가고 있는데, 나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공장 바닥을 굴러다니는 나사가 된 것 같았다. 아귀가 맞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쓰이지 못하는 여분의 나사. 막 대학을 졸업해 반짝반짝 빛나던 때가 있었다고 추억하며 누군가 날 찾아주기를 기다렸다. 

 

큰 꿈을 꿀 수록 더 비참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더욱 정교해졌고, 내가 들어갈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게 뼈아팠다. 방황할 시간에 회사를 다녔으면 대리는 달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늦은 말이었다.  명함과 직위가 없이 살아갈 위기에 처했다. 잠재력이나 꿈 같은 건 더 이상 힘이 없었다.

 

분노와 열등감으로 서른을 맞이한 나는, 사회에서 ‘나의 쓸모’를 발견해야 했다. 

 잃어버린 기회 비용을 되찾고 싶었다. 전 직장 동기들이 버는 돈 만큼 나도 벌어 보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들이 좋다는 회사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연봉 1억은 한달에 655만원 정도를 실수령액으로 받는다. 그럼 월급 외로 부업을 몇 개 더 하면 연봉 1억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N잡을 시작했다.

 

일단 내가 가진 것들을 살폈다. 학벌, 화술, 블로그, 인맥, 외모 그리고 젊음. 이 정도면 쓸만한 일꾼이었다. 일거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학원 보조 강사 부터 교재 집필, 심지어 헬스장 데스크 직원까지. 합격한 곳 중 가장 시급이 좋은 곳에서 일했다.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평일 저녁은 모조리 부업으로 채웠다.  


그 중 하나는 고등학교 입시 컨설팅 학원이었다.

고등학생 대상으로는 일요일, 공휴일, 평일 밤 10시까지도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인사팀에서 일했던 경력이 도움이 됐다. 입사 면접과 대학 면접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나만의 비결이 있는 분야였다.

첫 수업의 시급은 5만원이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해 상담지를 직접 만들고, 입시 통계 사이트를 뒤져 컨설팅을 했다.  곧 실력을 인정받아서 시급은 12만원까지 올라갔다. 한번 수업에 2시간이었으니, 한 번 가면 최소 24만원을 벌었던 셈이다.

 시즌이 되자, 수업을 열기만 하면 학생들이 꽉 찼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7시에 다시 학원으로 출근해 10시까지 강의를 했다. 3시간 수업을 하면 36만원을 벌었다. 집에오면 밤 11시. 녹초가 되어 집에 와 다음날 강의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 단체 수강생을 받으며 시급은 2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그렇게 평일 저녁에만 일해서 한달에 200만원 넘게 벌었다.

하지만 입시학원 특성상 일감이 들쭉날쭉했다. 어떤 달은 쉴 틈이 없었고, 어떤 달은 한 시간도 일이 없었다. 불규칙한 일정에 회사와 병행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결국 일년만에 그만 두었다. 

 

 시급으로 일하면서 일 분 일 초에 사회에서 어떤 값을 매기는 지 알게 되었다. 만원에서  25만원까지 시급이 올라가면서, 돈과 시간을 교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도 그뿐이었다. 

이상했다. 마음이 허전했다.

매달 600만원 이상을 벌어도 사고 싶은 게 없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건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책 읽고,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J를 만났다.

 

후배 J는 남편의 아는 동생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의류 쇼핑몰과 악세서리 쇼핑몰을 런칭한 꼬마 사장님이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J는 형님, 누님 하면서 우리를 잘 따랐다.

나는 J가 좋았다. 고작 스무 살이 대학도 가지 않고 혼자서 사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대단했다. 고정관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순수함이 귀여웠다. 그러던 중 내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자 J는 눈이 똥그래져서 말했다.

 

"와 누님, 저는 서울대 나온 사람 실제로 처음 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똑똑할 수 있어요?"

 

나는 J가 읽어보면 좋을 책을 추천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 출근하기 전 새벽에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해리 포터를 읽고 감상문을 쓰고, 어떤 날은 경제학 책을 함께 읽었다.

 

J는 내가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당시 내 주변에는 나랑 비슷하게 좋은 대학을 나와 직장을 가진 사람들 뿐이었다.

사는거? 다 똑같지 뭐. 하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사람들.

불편한 길로는 절대 제 발로 걸어 가지 않는 사람들.

머릿속으로 잇속을 계산하느라 마음이 가는 곳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직장을 선택할 때, 사람을 만날 때에도 계산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

사회적인 지위로는 나무랄 곳이 없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부류들.

 

 

하지만 J는 달랐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릴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않았다. 다만 진실했다. 마음이 동하면 바로 움직였다.

J가 사업을 해내는 방식을 보면 존경할수밖에 없었다. 현금이 부족하면 그저 며칠동안 묵묵히 쿠팡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고도 돈이 부족하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상가 매물을 보면 바로 계약금을 날렸고, 원하는 제품이 있으면 공장으로 당장 달려갔다.

중요한 건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J처럼 몰입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얄팍한 계산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는지 반성했다. 6개월 동안 J와 새벽에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 뿌옇던 안개가 걷혔다.

N잡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생겨난 질문이 부유하다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첫 취직을 하며, 하루 온종일 회사에 메여 있으면서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오늘의 나는 이렇게 답한다.

돈이 다가 아니라고. 회사를 다니던, 사업을 하던 충분히 노력한다면 먹고 살 만큼은 벌 수 있다고.

진짜 중요한건, 스스로 삶을 책임지는 태도라고 말이다. 그러니 남의 답을 훔쳐보느라 시간을 쓸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을 살펴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부양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삶을 책임지기로 마음 먹으면 나를 굳건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직장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다. 독신일수도, 임신 중이거나 아이가 하나, 둘,셋 일수도 있다. 떤 일을 하더라도 나의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그게 나의 충실한 삶이 될 것이다.

 

 해가 끝나갈 무렵, 나는 두 개의 직업을 남겼다. 본업(회사)과 블로그다.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결심했다.

 

돈은 잘 버냐고?

적당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만 번다.

더 벌지 못해서, 더 근사한 직장을 가지지 못해서 미래에 아쉬워하지 않겠냐고?

아니, 내 삶을 설명하는 건 돈 뿐만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뭐.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테다.

 

좀 낙관적인거, 그게 뭐가 나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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