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벤자민] 가장 조용한 혁명의 시간

저녁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조용한 혁명의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그 조용한 혁명 속으로 퇴근한다.

2025.06.24 | 조회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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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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삷은 낮에 벌어지고 저녁에 바뀐다

  퇴근 후 저녁, 그때 나는 내 삶을 바꾼다. 저녁은 단순히 밥 먹고 쉬는 시간이 아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는 시간이다.

  대학생 때 나는 '저녁 있는 삶'이 뭔지 몰랐다. 평일 오전에 놀다가도 주말 밤에 시험공부를 했다. 낮과 저녁,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잡곡밥처럼 뒤섞여 있었다.

  어쩌면 저녁 있는 삶은 ‘낮이 있는 삶’의 다른 말인 것 같다. 명확한 업무 시간이 생긴 지금에서야 비로소 퇴근 이후의 시간을 '저녁 있는 삶'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얻으며 나는 월급뿐 아니라 저녁이라는 시간을 선물받았다. 그게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꽤 오래 지나서야 깨달았다.

 

버려지고 있던 시간

  입사 초반의 나에겐 저녁이 없었다. 다른 회사 면접을 준비했다. 친구들과 축하 인사를 주고받느라 바빴다. 업무에 적응하느라 야근도 잦았다. 집에 돌아오면 늘 지쳐 있었다. 시계는 겨우 여덟 시를 가리켰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내게 허락된 적이 없었다. 할 일이 없는 날엔 그저 누워서 휴대폰만 쳐다봤다.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버려지고 있는 저녁시간을 인식했다. 그 무렵 처음으로 북토크에 참석했다. 차가운 글로만 만나던 작가를 따뜻한 말로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시간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서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북토크를 통해 알게된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했다. 내가 쓴 서툰 문장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나의 언어를 다듬는 시간은 충만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나는 퇴근 후 한문장씩 내 생각과 문장을 쌓아갔다. 어느새 책읽기와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저녁이 내게 준 것들

  작년 겨울에는 오래 미뤄두었던 도전을 시작했다. 보컬 트레이닝이었다. 부를 때 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던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을 한 소절씩 배워나갔다. 목소리가 점점 가다듬어졌고 제법 잘 부르기 시작했다.

  "진짜 감동 받았어요." 같이 수업을 듣던 수강생이 내게 말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조용히 노래를 흥얼댔다. '이윽고'만 몇백 번 반복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더 다양한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노래방이 아닌 낯선 곳에서도 기꺼이 한 곡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작은 무대에도 서보고 싶다.

  헬스 트레이닝도 시작했다. 건강 유지를 넘어 멋진 신체와 강철 체력을 갖추고 싶었다. 몸을 키우고, 체력을 키우는 일은 인생 전체의 생산력을 키우는 일이라 믿었다.

  처음엔 낯설던 동작들이 이젠 익숙하다. 시작하기 전에는 어떻게 매일 운동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운동 없이는 하루가 허전하다. 퇴근 후 곧장 헬스장으로 향한다. 조금씩 탄탄해지는 몸처럼 저녁 시간도 단단해지고 있다.

  최근까지는 집을 구하는데 온 시간을 쏟아 부었다. 평일 저녁에는 부동산에 연락하고, 주말에는 방을 보러 다녔다. 이사 후에는 집을 정리하고 꾸미는데 여념이 없었다. 계약부터 대출, 인테리어까지 공부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고 있다. 달라진 공간에서 맞이할 새로운 저녁을 설계하고 있다. 훨씬 더 근사한 저녁이 될 것 같아 몹시 설렌다.

 

가장 조용한 혁명의 시간

  '저녁'이라는 작은 시간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있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운동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꿈꾸던 집에서 살고 있다.

  모든 변화는 '저녁'에서 비롯되었다. 하루 중 가장 작지만 가장 내 것인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이 조금씩 달라진다. 저녁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조용한 혁명의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그 조용한 혁명 속으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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