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벤자민] Work in Life: 일과 삶을 대하는 나의 방식

일과 삶은 동등한 선상의 개념이 아니다. 삶 속에 일이 있다. 삶이 먼저이고, 그 안에서 일이 이루어진다.

2025.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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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벤자민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한 사람의 자전적 기록

일과 삶 사이

  최근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분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았다. 압박하는 상사, 끝나지 않는 업무, 수직 회사의 문화 탓이라고만 여겼다.

  그건 절반의 진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외부적 강요가 없음에도 스스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퇴근 후에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업무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놀랐다. 일과 삶의 경계는 외부요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인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행히 나는 일과 삶의 경계가 또렷한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 또한 퇴근길에 밀린 과업을 떠올리며 자책했고, 지나간 하루를 되새기며 한숨 쉬었다.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내 방식대로 'Work and Life'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Work in Life'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경험과 방식을 꺼내어보고자 한다.

 

라이프 퍼스트: 무조건 삶이 최우선이다

  많은 사람들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워라하(Work and Life Harmony)를 외친다. 일과 삶의 균형, 조화를 강조하는 사회적 흐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구호들에 늘 의문을 가졌다. 굳이 조화나 균형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나는 당연히 일보다 삶이 무조건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삶(Life)'이라고 말하는 범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삶이란 충분히 자고 제때 밥 챙겨먹는 건강한 생활이다. 더 나아가 책을 읽고, 운동하고, 글을 쓰는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고 싶은 친구와 가족을 볼 수 있는 여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한다. 이것을 나는 '삶(Life)'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일(Work)을 미룬다. 업무관련 서적 보다는 내 취향과 관심이 담긴 책을 읽는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글쓰기 수업을 듣기 위해 다음날 아낌없이 반차를 쓴다. 물론 언제나 그런 선택이 가능한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삶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일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일은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일을 게을리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일을 너무 많이 해도 삶이 고통받지만 전혀 하지 않아도 삶이 무너진다. 삶의 구성요소에서 일이 빠진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삶이 또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은 삶을 위한 수단이지, 삶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현존의 힘: 나는 그저 지금을 살 뿐이다

  한때 나는 '모드 전환'에 서툴렀다. 저녁 식사하면서 오늘 회의 내용을 복기했고, 회의 중에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눈앞의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늘 어딘가에 떠 있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듯 전환이 명확하다. 회사 자리에 앉아있을 때는 눈 앞의 업무에만 집중한다. 잠깐 산책나가면 그저 나뭇잎의 흔들림에 귀를 기울이고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낀다. 로비에서 동료를 만나면 예전에 끊겼던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시 자리에 돌아오면 바로 업무가 시작된다.

  언제나 몸과 마음이 함께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다. 일하는 중에는 퇴근 후를 걱정하지 않고, 퇴근 후에는 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회사 PC처럼, 내 머릿속에도 보안 솔루션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다.

  퇴근 후에는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억지로 뭔가를 하진 않는다. 대부분 직관과 습관, 기분을 따른다. 개인 노트북을 열면 어제의 딴짓이 남아있다. 알아보던 여행지, 쓰고 있던 글, 보다만 영상같은 것 말이다. 책을 펼치면 읽다 만 페이지가 나를 반긴다. 메신저에는 이어지지 못한 말풍선이 떠 있다.

  잡히는게 무엇이든 그저 그것을 이어서 한다. 일할 때는 워커홀릭처럼 몰입하고, 쉴 때는 백수처럼 푹 쉰다. 놀 때는 욜로처럼 논다. 일해야지, 쉬어야지, 놀아야지 이런 마음의 선언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시간, 그 공간, 함께 있는 누군가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살아내려 할 뿐이다. 그게 겉으로 봤을 때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 노는 시간 등으로 보이는 것일 테다.

 

나태주 <소망>: 오늘 다 하지 못한 일은 내일의 소망이 된다.

  물론, 끝내지 못한 일, 쓰다만 보고서, 회신이 늦는 메일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 읽지 못한 책, 무르익지 못한 대화도 정말 아쉬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못다한 것을 두려워하거나 섭섭해하지 않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소망> 덕분이었다.

오늘도 하던 일 마치지
못하고 잠이 든다
아니다 오늘도 하고 싶었던 일
다하지 못하고 잠이 든다

이다음 나 세상 떠나는 그 날에도
세상에서 하고 싶었던 일
다하지 못하는 섭섭함에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눈을 감게 될까?

하기는 오늘 다하지 못하고
잠드는 일, 그것이
내일 나의 소망이 되고
내가 세상에서 다하지 못하고
남기는 그 일이 또한
다른 사람의 소망이 됨을
나는 결코 모르지 않는다

나태주 <소망>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고개를 떨구고 오래도록 눈을 감았다. 하루를 마치지 못한 자책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다정한 기대로 잠들 수 있다는 이 감각이 나를 회복 시켰다. “오늘 다하지 못한 일은 내일의 소망이 된다.”는 한마디는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있던 초조함을 순식간에 시들게 만들었다.

  여기서 ‘지금’이라는 시간의 다정한 얼굴을 보았다. 불안함과 아쉬움을 내일의 소망으로 밀어놓으니 그 빈자리에 현재가 들어왔다. 뾰족한 불안감 대신 포근한 기대감을 가졌다. 공허한 아쉬움 대신 따뜻한 온기를 채웠다. 그 가득찬 마음으로 해야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내일 해내면 되었다.

  오늘 못다한 일은 내일의 소망으로 포장해놓으면 된다. 어제 포장된 소망을 지금 선물처럼 뜯어보면 된다. 이 사실을 알고서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Work AND Life에서 Work IN Life로

  요즘 나는 더 근본적으로 'Work IN Life'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워라하(Work and Life Harmony)등 일과 삶을 두고 여러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균형이냐, 조화냐 그 구호들마다 새로운 방법론이 제안된다. 'Work and Life' 뒤에 오는 단어에만 논쟁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점점 이런 프레임 자체에 회의가 든다.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을 던진 건 아니었을까. ‘Work AND Life’라는 말은 일(Work)과 삶(Life)이 두개의 축이라는 전제를 품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일과 삶은 동등한 선상의 개념이 아니다. 양립하거나 균형을 맞춰야 할 개념이 아니다. 이 두개를 구분해서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넌센스다.

  대신 'Work IN Life'라는 구호를 제안한다. 삶 속에 일이 있다. 삶이 먼저이고, 그 안에서 일이 이루어진다. 나는 더 이상 일과 삶을 억지로 분리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중심에 두는 연습을 계속한다.

  ‘일과 삶의 분리’를 넘어서, ‘삶 안의 일’을 실천하고자 한다. 삶을 충실히 살아내며 일을 멋드러지게 해낼 것이다. 수많은 "Work and Life" 구호 속에서 홀로 "Work in Life"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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