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마를 거스르지마

가장 나다운 모습은 내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때 나타난다.

2025.10.02 | 조회 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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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브런치북 <서른의 나는 세살의 나를 불러본다> 연재중

읽는 시간: 4분 35초

 

 

  "70일 만에 오셨네요?" 미용사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었다. 지난번 42일 만에 방문했을 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이제 70일. 최장 기록 경신이다.

  사실 미용실 가는건 치과 가는 것 만큼이나 미루고 싶은 일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던 머리가 남의 손에 '정돈'되는게 싫기 때문이다. 어딘가 인위적이어지는 느낌이라, 미용사가 얼마나 잘 자르던 간에 만족했던 적은 거의 없다.

  물론, 자연스러움이 지나쳐 지저분해지면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어쩔 수 없이 미용실을 방문해야 하긴 하다. 오늘이 바로 그 숙제 날이다.

  바리깡의 '바아앙' 쇳소리가 빗을 타고 귓바퀴를 긁어댔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 손잡고 미용실을 다녔던 시절, 그때는 이 소리가 정말 무서웠다.

 

 

스포츠 머리

  그 미용실은 내가 다녔던 어린이집 아래 1층에 있었다. 바로 앞에 늘 친구들과 놀던 놀이터를 마주보고 있었다. 나를 키워주던 할머니가 파마하러 다니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 애 스포츠로 해주세요." 엄마 손잡고 미용실을 다녔던 시절엔 미용을 '당했다'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마치 반려견 털이 너무 길어져서 애견샵에 데려간 강아지와 주인 같았달까.

  형형색색의 타일 바닥을 걸어가서, 엉거주춤 각진 의자에 앉았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내가 다시 내려오지 못할 만큼 의자를 밟아 올렸다. 그러곤 분무기로 내 머리에 물을 뿌렸다. 차가운 물방울이 목덜미에도 닿았다. 그리곤 그 소리가 들렸다.

  '바아앙' 기계소리가 두개골을 타고 뇌까지 울렸다. 구레나룻을 지날 때면 귀를 찢어 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가냘픈 내 머리는 '바아앙' 소리와 함께 잘려나갔다. 잘린 머리카락들이 목과 얼굴에 내려앉았다. 가렵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야 했다. 어른들이 원하는 건 얌전한 아이였다. 샴푸로 머리를 씻어낼 때까지도 얌전히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머리 자르니까 시원하잖아. 얼마나 깔끔하고 좋니?"

  엄마가 말했다. 사실 시원했던 건 내 머리가 아니라, 아들 머리카락을 잘라낸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이고 우리 손주 인물이 훤하네."

  옆에서 파마하던 우리 할머니도 거들었다. 손주 얼굴을 가리던 머리카락이 사라져 좋으신 듯 했다.

  "애기가 원래 잘생겼는데, 머리 자르니까 더 잘생겨 보이네요." 미용사 아주머니도 맞장구쳤다.

  모두가 칭찬했다. 모두가 만족해했다. 나만 빼고.

  나는 잘 잡히지도 않는 짧은 머리카락을 괜히 쥐어뜯었다. 허전한 머리는 마음까지 허전하게 만들었다. 거울을 다시 봤다. 낯선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맑은 눈이 그렁그렁했다.

 

 

두발 검사

  "시장 옆에 가. 거기가 제일 잘해." 고등학교 두발 검사를 앞두고 한 선배가 내게 귀띔해주었다.

  시장 옆 이발소는 30년은 된 듯한 곳이었다. 희한한 폰트로 강렬하게 쓰인 간판은 언뜻 봐서는 이발소라고 알아보기 힘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쿨민트향 샴푸와 무스 냄새가 뒤섞인 특유의 냄새가 났다. 가죽이 다 뜯어진 낡은 소파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넌 얼마나 자를거냐?"

  같은 반 친구를 만나면 머리 이야기만 했다. 어떤 쌤이 검사하는지, 예전에는 어느정도 잘랐는데 안 걸렸었는지, 두번째 검사는 좀 대충하는 편이라든지 등. 우리는 '안 걸리는 법'에 대해 토의했다. 예쁜 머리, 멋진 머리,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직 '최대한 덜 자르기'가 목표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이발소 주인 아저씨 앞에 앉았다.

 "학생, 언제 검사야?"
"모레요."
"그럼 이 정도."

  어떻게 잘라달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이발소 주인의 손놀림은 빨랐다. 가위가 째각째각 소리를 냈다. 머리카락이 투두둑 떨어졌다.

  '저 머리카락은 내가 원해서 잘린게 아닌데', '학교가 말하는 단정한 학생이란 뭘까?' 반항심 넘치는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이발이 끝나있었다. 애매하게 잘려진 머리가 내 얼굴 위를 둥둥 떠다녔다. 며칠 뒤에 있던 두발 검사는 통과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예쁘고 멋진 머리는 너무 큰 욕심이었다. 두발검사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만 잘라내면 성공이었다. 그시절 나에게 머리카락은 억지로 잘려야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저 피해를 최소화하려 애썼다.

  머리카락을 어쩔 수 없이 자르듯, 나는 내 마음을 잘라내는 법을 배웠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내키지 않은 일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살폈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잘라냈다. 두발 규정에 내 머리를 맞추듯, 세상의 규칙에 나를 맞춰갔다.

 

 

유행하는 머리

  스무살 봄,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미용사는 색깔 판을 펼쳐 보였다. 몇십가지 색이 있었지만,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다.

  "무슨 색으로 하시겠어요?"
  "음.. 갈색이요."
  "요즘 애쉬브라운 많이 하셔요."
  "네.. 그걸로 할게요."

  미용사의 추천을 그대로 따랐다. 내가 원하는 색이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안전한 선택'을 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색, 너무 튀지 않는 색 말이다.

  염색약을 바르는 건 마치 내 머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 같았다. 레몬에 절인 쇳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요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몇 십분 가만히 거울을 보고 있는건 정말 고역이었다.

 

  머리를 꾸미는 데에 엄마의 허락도 필요 없었고, 두발 규정 같은 것도 없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머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래서 '애쉬 브라운' 염색도 하고, '투블럭 컷'도 하고, '베이비 펌'도 했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이 늘상 기분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왁스를 묻혀 머리를 매만지고, 드라이로 볼륨을 살려봐도, 거울 속 모습은 늘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왁스 냄새는 적응되지 않았고, 바람이 불면 머리가 흐트러질까 신경쓰였다.

  하루는 미용사가 왁스를 발라 앞머리를 올려주었던 적이 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화들짝 놀란 나는 미용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장 앞머리를 털어내렸다.

  내게 이마를 드러내는 건 속살을 드러내보이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꼭꼭 이마를 감추며 살았다.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듯, 나는 내 모습도 일부 가렸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남들이 선호할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 쓰고 다녔던 것이다.

  두발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엄마나 학교가 아니라, 유행과 타인의 시선이 내 머리를 규정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다만 남들처럼 보이면 '안전하다'는 것만 알았다.

 

 

드러낸 머리

  변화는 장발을 하며 찾아왔다. 20대 중반, 충동적으로 머리를 길러보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해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로나도 겹쳐서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날 일이 적은 시기이기도 했다.

  앞머리가 점점 길면서 눈을 찔렀다. 귀에 걸었다. 이마가 드러났다. 머리는 더 길어져서 묶고 다녀야 했다. 묶으면 이마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났다. 그렇게 이마가 드러나는 만큼, 나의 진짜 성격과 기질도 점점 바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르마'를 발견했다. 머리카락은 저마다의 방향이 있었다. 갈라지고 흘러내리며 자연스러운 선을 만들었다. '가르마를 탄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단걸 머리를 기르며 깨달았다.

  신기했다. 장발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알아서 모양을 완성해갔다. 그저 머리가 자라는 대로 두었을 뿐이었다. 드라이도, 왁스도, 고데기도 필요 없었다. 그저 감고 말리고 손으로 몇번 쓸어 올리기만 했을 뿐이다.

  억지로 만든 모양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나던 머리였으니 손질이 참 편했다. 이때부터 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즐겼다. 아무리 센 바람을 맞아도 손빗질만 해주면 되었다.

  머리를 만졌다. 부드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흘렀다. 기분이 좋았다. 내 머리에 기분이 좋았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가르마를 거스르지마

  새해를 며칠 앞둔 한 겨울 날, 머리를 잘랐다. 미용사는 내 머리를 크게 묶고, 내게 가위를 쥐어주었다.

  "직접 잘라보실래요?"

  싹둑. 묶인 머리카락 다발이 손에 쥐어졌다. 2년의 시간이 손 안에 들어 있었다. 쇄골까지 닿던 긴 머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 말처럼 엄청 시원하고 좋았다.

  샴푸를 하고 거울 앞에 앉았다. 미용사가 드라이를 들며 물었다.

  "가르마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냥 원래 타는 대로요."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렸다. 눈썹까지만 닿는 머리카락은 바람을 타고 제자리를 찾아갔다. 가르마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이마가 드러났다.

 

  그동안 나는 내 가르마를 거스르며 살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머리를 자르고, 학교 두발 규정에 맞추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 앞머리를 억지로 내렸다. 세상 안팎의 규칙과 시선에 매여 가장 나다울 수 있는 흐름을 역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억지로 바꾸려 들고 있었다.

  규정과 시선을 놓아버리자 비로소 가장 나다운 모습이 드러났다. 나의 앞머리는 4대 6으로 나뉘어 한쪽은 왼쪽 위로 올라가고, 다른 한쪽은 오른쪽 아래로 깔리는 가르마다. 이 앞머리 가르마를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머리가 자꾸 제자리를 찾으려는 것 처럼, 기질도 억지로 눌러봤자 결국 드러난다. 까불거리고 싶었지만 억지로 얌전한 척 하던 순간들,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꺼내며 분위기를 맞추던 시간들. 그 모든 노력은 늘 어색하고 힘들었다.

  본연의 특성, 성격, 기질을 거스르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제 나는 내 흐름대로 나답게 흘러가는 삶을 추구하며 산다.

  머리카락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억지로 거스르지 말라고, 원래 흐르는대로 두라고,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아름답다고 말이다. 나는 내가 가진 본연의 이 가르마가 정말 마음에 든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 주엔 이런 따뜻한 후기가 있었답니다.

잘 읽었어요. "가려워 긁은 부스럼이 태산이 될 때까지 " 제목에 끌렸는데, 일상에서 소재를 가져와 편안하게 풀어나가는 솔직함이 좋네요. 느낄수는 있어도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기록하는 모습 귀감이 됩니다. 읽고 쓰고 공유하는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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