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일의 일기를 에세이로 재구성했습니다.
페르메이르의 「잠든 하녀」는 평범한 순간을 담은 그림이다. 탁자 위에 놓인 사소한 물건, 창으로 스며든 빛, 졸음에 겨운 한 사람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그려낸 것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그 익숙함에 스며든 장엄함이었다.
우리의 삶도 평범한 장면의 연속 인 것처럼 보인다. 부엌 식탁 위의 소박한 반찬, 흙바닥에 앉아 흘린 땀방울, 책장을 넘기는 손끝 같은 것 말이다. 익숙하기에 놓치고 마는 순간이 너무 많다. 하지만 가끔 그 속에서 삶의 장엄함을 체험하곤 한다. 성스러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친숙한 일상 속에 은밀히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아들의 귀성길
"부시럭부시럭" 금요일 새벽 3시, 때 아닌 밤에 홍두깨 마냥 급히 짐을 챙겼다. 회식이 새벽 2시에 끝났고, 이참에 서울역에서 새벽 5시 기차를 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정보다 일찍 고향으로 떠났다.
꼴딱 밤을 새운 탓에 기차에서 곧장 잠들었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 고향 창원의 아침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작년 추석 이후 반 년 만에 밟는 땅인데도 왠지 몇 시간 전의 서울과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2호선 지하철에서 내리듯 KTX에서 내렸다. 그냥 옆동네에 온 것 같았다. 담배 냄새가 배인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집으로 향했다. 익숙한 풍경이 창밖을 스쳤다.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스무 살 무렵이 생각났다. 그때의 서울과 창원은 너무나 멀고 다른 세계였다. 만나는 친구도, 먹는 음식도, 나누는 이야기도, 심지어 숨 쉬는 공기마저도 다르게 느껴지는, 어딘가 뚝 떨어진 곳이었다. 창원행 기차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당시 내가 얼마나 많은 세상을 거쳐 이동하고 있는지를 알게 했다. 말 그대로, 전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차원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이리 덤덤할까. 창원과 서울이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첫 번째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는 마음' 덕분이다. 예전에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던 것 같다. 스무살의 나는 서울에서 창원을 그리워하고, 창원에서 서울의 삶을 걱정했다. 창원과 서울 사이의 거리가 문제였던게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요즘은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감각을 익힌 것 같다. 내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있다.
둘째로, 서울에 잘 적응했다. 나는 태생부터 스무 해를 부모와 함께 고향에서 살았다.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생활한지 겨우 1-2년 되었을 스무살 무렵에는 서울이 참 낯설고 불편했다. 새로운 곳의 설렘 뒤에는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런 숨가쁜 서울 생활을 하다가 창원에 왔으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을테다. 마음의 근육이 이완되며 편안함을 느꼈던거다.
이제 서울 생활은 10년차가 되었다. 친구와 직장 등 나를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이 서울에 있다. 10년간 스스로 튼튼히 쌓아올린 삶의 토대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지금 나는 창원에서 느끼던 편안함을 서울에서도 똑같이 느낀다.
마지막 이유로, 확장된 세계를 말하고 싶다. 3년 전에는 하와이와 보스턴에서, 재작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다. 비행기로만 8시간에서 15시간 이상 걸리는 여정을 경험했다. 한국과 16시간의 시차도 경험해보았으니, 이에 비하면 창원과 서울은 이웃동네나 다름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613km,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347km, 서울에서 창원까지 372km이다. 미국을 경험한 후로 서울과 창원이 결코 먼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한국 안에서 쏘다닐 수 있는 거리 중 긴 편에 속할 뿐이었다.
어느새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다. 퀴퀴한 택시 냄새로부터 벗어났다. 경비 아저씨께 간단히 인사드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손가락이 따라가는대로 도어락 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자 양치하던 아버지가 보였다. 식탁 위에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는 파릇한 시금치가 놓여 있었다. 그외에도 형형색색의 나물과 고기가 나를 반겼다. 어머니가 출근 전 새벽에 부리나케 차려놓은 밥상이었다. 아, 집이다.
아버지의 농장
아버지는 농장을 운영하신다. '꽃과 나무 치유농장'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파른 산길을 따라 여러 작물과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금송, 호박, 농막, 물탱크가 보인다. 아무것도 없던 야산이 이렇게 바뀐건 참으로 놀랍다. 모두 아버지의 손으로 가꾸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투박한 '시골 농장'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쉬러가고 싶은 '치유 농장'이 되었다. 고향에 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는 농장을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이다. 특히 농막 난로에 불을 지펴서 먹는 삼겹살과 고구마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고향에 내려오면 아버지의 일을 거들기도 한다. 오늘의 일거리는 무거운 철재 옮기기다. 비닐하우스의 뼈대가 되는 철재를 산 초입에서 100미터 남짓 비탈길 너머의 농경지로 옮겨야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남동생과 함께 2인 1조로 철재 두세개씩 들고 날랐다. 흥미로운건 이 일을 할 때의 동생과 나의 마음가짐이 달랐다는 점이다.
동생은 기특하게도 아버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이 힘든 일을 지금 자신이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이걸 해놓아야 자신이 서울에 가고서도 아버지가 앞으로 더 수월하게 일하실 거라고 생각한거다. 동생은 아버지의 일을 몸과 마음을 다해 도왔다.
반면 나는 약간 달랐다. 아버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그건 가스레인지 스파크처럼 시작할 때만 잠깐 타올랐을 뿐이다.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가스를 공급해주었던 진짜 동기는 '운동'이었다.
요즘 헬스를 하며 배운 지식 덕분에, 미세한 동작에 따라 사용되는 근육이 달라진단걸 알고 있었다. 땅에 널부러진 철근을 들 때는 손목과 팔, 이고 있을 때는 어깨, 비탈길을 올라 갈 때는 엉덩이 근육이 쓰였다. 그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15회씩 5세트를 반복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아버지를 위해 일을 도운'게 아니라, '나를 위해 운동을 했던'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오래, 더 많이 일 할 수 있었다. 동생이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할 때도, 나는 몇세트 더 할 수 있었다. 동생은 명분과 동기가 일치했다. 아버지를 돕는게 곧 명분이자, 동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두개가 달랐다. 외적으로는 아버지를 위한 일이었지만, 내적으로는 나를 위한 운동이었다. 이런 구조가 어떤 행동을 시작하고 지속하는데 더 유리한 것 같다.
"고생했다"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일과가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산 중턱 흙바닥 주저 앉았다. 앞에서는 푸른 강물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고, 뒤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땀 냄새와 흙 냄새가 섞여 퍼졌고, 바람이 풀잎에 스치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우리는 간단히 소회를 나누었다. 그 웃음소리마저 풍경 속에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책장
역시 어머니의 책장에는 없는 책이 없다. 이번에 내가 펼친 책은 패트릭 브링리(Patrick Bringley)가 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을 보낸 저자가 예술작품 곁에서 느낀 사색과 감흥을 담은 책이다. 매일 몇 시간씩 명화를 지켜보며 얻은 사유가 적혀 있다. 마침 나는 며칠 뒤 서울에서 열릴 저자 북토크에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 소장하던 이 책을 내게 물려주셨다.
내가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는 늘 책을 읽으셨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를 손에 들고 계셨던 모습이 선명하다. 나는 쪼르르 옆에 누워서 어머니의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었다.
책의 원제, 'Don't Eat the Marchmallow Yet'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아직 먹지말라"고 이야기한다. 눈 앞의 작은 만족과 유혹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큰 보상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수행기사가 회장의 조언을 들으며 점점 부자가 되어가는데, 회장은 끝까지 "아직 마시멜로를 먹지마!"라고 조언한다. '도대체 언제 먹는거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던 때가 기억난다.
아마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제외하고 처음 읽었던 대중서가 이 책 일 거다. 어린 나는 이 책을 통해 인내심, 근면성실, 끈기를 배웠다. 그리고 이 덕목이 나의 유년시절을 이끌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보다 초등학생의 내가 훨씬 더 인내심있고 끈기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책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도 책이 가진 힘을 알고 계속 읽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책읽기 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몇년 전 어머니는 글쓰기 수업을 들으시곤 뚝딱 책을 내셨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자극을 받았다. 블로그나 일기로 나도 나름 꾸준히 글을 쓰고 있기도 했다.
지난해에 나도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글쓰기 활동을 계속하다보면 나도 어머니처럼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을거라 믿고있다.
아버지의 일을 돕고난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집 앞 카페에 갔다. 성수동 못지않은 감성을 풍기는 카페였다. 사장님과 어머니가 서로 아는 듯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아 각자 책을 펼쳤다.
어머니 책장에서 꺼내온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 패트릭이 페이메이르의 그림, 「잠든 하녀」를 보고 쓴 감상이었다.
가끔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웅진지식하우스, 2023
나는 이 문장에 줄을 긋고 이렇게 메모했다. "아빠 일 돕기, 엄마와 책 읽기, 가족과의 저녁식사, 동생과의 서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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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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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구독자님 하이~ 댓글 달아줘서 넘 고맙다! 의도는 삶의 한조각 그 자체를 전해주자, 독자가 그자리에 같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자 뿐 ㅎㅎ 작가의 의도가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진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 잘 읽어줘서 고맙다~~! 글쓰는거 내가 도와줄게! 오늘 하루도 홧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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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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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넘 좋은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합평했을때가 떠오르네요ㅎㅎ 생에 가장 치열하게 글을써냈던 나날.. 앞으로도 피드백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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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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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잘 읽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쓰겠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지금 시대에는 맞지않을 수도 있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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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가끔 여행 중에도 한국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마음가짐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주간벤자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더 좋은 글로 찾아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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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벤자민님의 글에서는 여유로운 산들바람이 부는 것 같아요. 이런 글이야 말로 정말 AI로는 쓸 수 없는 글인 것 같네요.
주간벤자민
넘 감격스러운 댓글입니다 ㅠㅠ 항상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안나님 덕분에 계속 쓰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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