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시간: 2분 48초거대한 목표는 웅장한 결심으로 이룩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기가막힌 아이디어라 해도, 아무리 원대한 꿈이라고 해도, 이것을 끝내 이뤄내는 것은 사소한 욕구의 반복이다. 매일 나를 간질이는 작은 충동들 말이다. 무언가 대단해보이는 것들은 모두 이런 하찮은 가려움을 긁어내면서 만들어 진다.
책 읽기 말고 책 칠하기
친구들은 내 독서 습관을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곤 한다. 이 자리에서 진실을 고한다. 나는 책을 읽는게 아니다. 그저 책을 색칠 할 뿐이다.
물론 독서는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생각을 정리해주기도 하고, 인생을 살아갈 가치관을 정립시켜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냥 정말 재미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중 문제다. 책을 읽은 '후'에 발생되는 사후적 효과일 뿐이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는 이 책이 내 삶에 무슨 의미를 줄지, 과연 재미있을지 알 수 없다. "책은 도움되니까 읽으세요, 재미있으니까 읽으세요" 라는 권유는 선후관계가 뒤바뀐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책을 읽는 내가 들어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내가 책을 펼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색칠하기'이다. 나는 책을 사면 그 책의 표지와 속지에 어울리는 형광펜과 포스트잇을 꼭 같이 산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문장에 색칠한다. 원래의 책과 나의 색칠이 어우러진다. 나는 이 순간의 쾌감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광펜이 없으면 책이 넘어가질 않는다. 하루는 평소에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위해 버스로 20분 거리의 카페에 갔다. 그런데 아뿔싸, 형광펜을 집에 놓고 와버렸다. 순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억지로 몇페이지 넘겨보았지만, 아무리 좋은 문장이 내 마음에 와닿아도 색칠할 수가 없었다. 더 넘겨보기가 싫었다.
그렇게 몇분 정도 책과 씨름한 끝에, 결국 다시 집에 돌아와서 그 책의 형광펜을 가져왔다. 그제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쭉쭉 읽어나갔고, 목표한 만큼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쌓이는 만큼 형광펜도 늘어나고있다. 다이소나 문구점 등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저렴한 형광펜은 대부분 갖고 있다. 나는 '책 칠하기'라는 사소한 욕구를 통해 책 읽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인사는 진맥
나는 가능한 모든 순간에 인사하는 습관이 있다. 버스에서든, 식당에서든, 엘리베이터에서든 말이다. 인사는 분명 사회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하고, 활기찬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독서 사례에서도 말했듯, 이런 도덕책 읊는 이야기는 인사를 행하는 주체에게 별로 와닿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속에는 사실 내가 숨겨놓은 장치가 있다. 인사는 나만의 진맥법이다. "안녕하세요"라고 내뱉는 순간, 내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눈빛, 박자감, 음역대, 플로우, 딜리버리, 제스쳐 등을 통해 그 미묘한 컨디션을 스스로 검진할 수 있다.
기분이 좋으면 또렷한 목소리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한다. 지쳐있을 때는 시선을 내리깔며 억지미소로 힘없이 중얼거린다. 가끔 내 자신이 안녕하지 않을 때에는 아예 인사할 생각조차 들지 않기도 한다.
일상생활 곳곳에 '인사'라는 진맥 장치를 심어두는 셈이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불현듯 나타나 나의 컨디션을 체크해준다.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글쓰기는 비워내기
글을 쓰는 이유 역시 거창하지 않다. 물론 지난주에는 웅장한 '작가 정신 선언'을 하며 독서의 세계를 일으키겠단 원대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그 또한 숏폼으로 오염되어가는 나의 마음을 정화시키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비워내기' 위함이다.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낸다. 때로는 눈물을 '쏟아내고', 속을 '게워내는' 심정으로 쓰곤 한다.
나는 생각이 정말 많다. 뇌세포가 한번 진동할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내 머릿속 생각 덩어리들은 쌓이고 쌓여 썩어문드러지기 일쑤였다. 이런 나 자신을 위해, 쌓여가는 생각을 뱉어낼 곳이 절실히 필요했다.
시작은 일기였다. 군입대와 동시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몸이 힘든만큼 마음도 힘든 곳이 군대였다. 작은 수첩에다가 그날그날의 고단함을 꾹꾹 눌러 담았다.
빨간 펜으로 휘갈겨 쓴 페이지도 있다. 하루는 당직사령이 청소검사를 지나치게 깐깐하게 봐서 대여섯번을 다시 청소하고 또 다시 해야 했던 날이 있었다. 취침시간인 10시가 지나도록 그렇게 병사들을 굴린 탓에 나를 포함한 부대원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잠들기 직전에 휘갈겨 적은 열자 남짓한 글자들에는 얄미운 당직사령의 얼굴과 짜증으로 가득찬 생활관의 공기가 담겨있다.
전역 후로도 일기는 몇 년째 나와 함께하며 나의 희노애락을 기록해주고 있다. 일기를 쓰다보니 회고록을 쓰게 되었고, 그 회고록이 발전된게 지금의 이 에세이이다.
내게 '발행' 버튼은 '비움' 버튼과 같다. 일주일 단위로 머릿속을 비워주니, 나를 괴롭힐 생각이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숙성된 생각은 좋은 글의 재료가 되어주는 것 같다.
가려운걸 긁는 욕구
내 삶을 움직이는 건 웅장한 동기부여가 아니다. 매일 찾아오는 사소한 욕구다. 책 예쁘게 색칠하기, 스스로를 진맥하기, 머릿속 비워내기 등. 이 자잘한 '가려움'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가려운건 미루기가 어렵다. 잠에 들기 직전이라도,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가려운건 그 즉시 긁어야만 한다.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하나의 손 뻗음이 나를 점점 목표에 가까워지게 한다.
우리는 흔히 거대한 변화를 꿈꾸며 대단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런 결기의 각오가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를 간질이는 작은 욕구들이다. 꼭 이루고 싶은 원대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소한 가려움을 찾아보자. 자주 반복되고, 쉽게 해소되지만, 결코 미룰 수 없는 욕구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이 가려움을 예민하게 느끼고, 시원하게 긁으면서 작은 행동을 쌓아갈 것이다. 혹시 모른다. 긁어 생긴 부스럼이 언젠가 태산을 이룰지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 주엔 이런 따뜻한 후기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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