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TV나 신문으로 부터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받았다. 알고리즘 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먹기 좋게 차려놓은 편향된 답을 제공받았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한 사람의 뇌를 해킹하여 생각 자체를 대신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매스 미디어든, 알고리즘이든, 인공지능이든 우리를 동일화 시키고 복종시키려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것도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이번 글은 매스미디어, 알고리즘, 인공지능 시대를 지나며 나의 생각을 단단하고 뾰족하게 날세우는 이야기다.
매스미디어 시대: 목장의 양떼
방송사, 신문사에 의해 세상이 움직이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 영화에서 떠드는 것이 기정 사실로 여겨졌었고, 여론도 그 물결을 따라갔다. 더 큰 확성기를 든 사람과 더 날렵한 펜을 쓰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외 나머지 다수는 그를 추종하고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매스미디어는 대중들이 한 방향으로 향하게 거대한 행렬을 만들었다. 그 행렬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이리저리 휩쓸렸다. 진실인지도 거짓인지도 모르고 양치기 소년을 따랐다.
뉴스 뿐만 아니라,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대중매체가 처음 등장했을 시절,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를 '문화산업'이라 칭하며 비판했다. 대중 문화는 동일화의 도구로 작용함으로써, 대중을 포섭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득권 세력이 '문화산업'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재생산시킨다고도 주장했다.

소셜 미디어 시대: 알고리즘에 갇힌 개구리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소셜 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방송사와 신문사는 힘을 잃었고, 다양한 사고방식과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중 행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꼈다. 뉴스나 신문에서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대신, 주체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선택했다. 개인이 방송국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관련 기사: 지상파, 여론 영향력 하락…유튜버 새 여론 형성자로 등장)
대중은 알고리즘의 간판을 걸고 작게 모둠을 이루었다. 하지만 알고리즘 하나의 크기는 작았을지 몰라도, 한 사람의 세상 전체를 뒤덮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휴대폰 화면을 점령했다. 그 작은 세계에 갇힌 이들은 순식간에 알고리즘의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렸다. 얼마전만 해도 그들은 매스미디어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전문가 칼럼: 에코챔버, 필터버블)

소셜 미디어 시대는 매스미디어 시대에 비해 자유롭게 정보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건 충실한 알고리즘 덕분이다. SNS는 유저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제시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보를 '선택'했다고 느끼지만 그건 매우 협소한 선택지 중 하나였을 뿐이다.
큰 호수가 여러개의 작은 연못으로 나뉘어진 것 같다. 그 작은 물결 속에 속해있는 개구리들은 그 물결 만이 세상의 흐름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알고리즘에 갇혀 있으면서,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알고리즘을 뚫고 여러 연못을 이곳저곳 오갈 수 있는 개구리는 거의 없다.
과거 매스미디어가 그러했듯, 소셜 미디어도 그들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유튜버, 인플루언서는 더 많은 지지자를 모으기 위해 혈안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당하다'고 말해줄 구독자를 필요로 한다. 일부는 선동과 날조를 컨텐츠 삼으며 소위 '어그로'를 끌고있다. 이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더러운 술수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시대: 몸 없는 AI의 숙주
매스미디어가 대중에게 폭격을 가했다면, 인공지능은 저격 소총 꺼내들어 개인의 뇌를 정조준 한다.
최근의 인공지능 기술은 과거의 알고리즘보다 훨씬 정교한 커스터마이징을 시도하고 있다. AI Agent를 필두로 인간 한명 한명에게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AI는 개인의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보다 강력한 AI 성능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지식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 생각까지 말이다.
"독후감 써줘.", "과제 작성해줘." 이런 단순한 프롬프트 속에는 "생각 좀 대신해줘."라는 말이 숨어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AI에게 생각을 맡기는 행위는 존재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생각없는 인간은 몸 없는 인공지능의 생물학적 숙주로만 활용되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잠들지 말고 깨어있기
뉴스와 알고리즘, AI는 우리가 '잠들어있기'를 원한다. 뇌를 비운채 그들이 제공해주는 정보만 받아먹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수면제를 맞은듯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이들을 모두 뚫고 지나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있는 것'이다. 즉, 생각하고 글쓰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생각하지 않는 자는 무언가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목장의 양떼, 알고리즘에 갇힌 개구리, 몸 없는 AI의 숙주 말이다. 뉴스에 내 의견을 맡기면 안된다. 알고리즘에 내 세상이 잠식 당하면 안된다. 인공지능에 내 생각을 빼앗기면 안된다.
깨어있자. 생각하자. 그리고 글을 쓰자. 깨어있기 위해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하며, 그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한다. 실제로 내가 과거에 써놓은 글은 다시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잠들어있던 나의 의식을 깨우는 거다.
스마트폰을 덮고 책을 꺼내들자. 조각난 콘텐츠 대신, 사유의 문장을 하나씩 읽어가자. 그리고 자신만의 온전한 생각을 백지에서 써내려가자. 나는 이런 식으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스스로를 깨우고있다. 가끔은 뉴스와 알고리즘, AI로 부터 의도적으로 등을 돌린다. 그 반대편에 가려진 진정한 나의 생각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
생각 능력과 글쓰기 능력
머지않은 미래에 생각 능력과 글쓰기 능력은 가장 최상위 능력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인류가 마지막까지 고수할 수 있는 고귀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AI가 훨씬 더 유려하고 일관성있게 글을 잘 쓰는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글쓰는 동안 인간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다. 글을 시작하고, 글을 끝 맺을 때까지의 전과정 말이다.
문장을 짜맞추다 마침내 천년 퍼즐을 완성시킬 때의 웅장함. 나의 글이 다른 사람의 진심에 닿아 울려퍼지는 황홀감. 생각하기와 글쓰기는 천년 아이템 만큼이나 럭셔리하고 대체불가능하다.
AI를 활용하여 누구나 그럴듯한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 그런데 AI를 잘 활용하면 뭐하나, 자기 생각이 없는데.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생각하는 사람이 더욱 희소해진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 날고긴다 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 통찰의 안목으로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

생각하는 자로 살아남기
뉴스의 시대에도, 알고리즘 시대에도, 인공지능 시대에도 생각하는 자는 살아남는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오늘도 처절히 생각하며 온힘 다해 글을 쓴다.
보다 더 과격하고 치밀하게 생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매스미디어나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묻지 않은 온전한 나의 생각 말이다. 내가 진정으로 믿는 것, 진정으로 경험한 것, 진정으로 고민 한 것을 계속해서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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