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방승현 [주간 묘사 제 24호]

2023.10.11 | 조회 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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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동안 짧은 소설을 쓰면서 가장 주안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제일 마음에 드는 본인의 글을 빌어 이야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비단 짧은 소설을 쓸 때만이 아니라 창작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부분인데 저는 매체의 유용성과 이야기의 필요에 대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합니다. 저는 허구가 아닌 현실 세계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 이야기가 어떠한 쓰임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것이 어떤 매체와 형식을 통해야 하는지 작가 스스로 당위를 가지고 있어야 독자와 적절히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를 찍다 보면 이 예산을 들여 이러한 영화를 찍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거든요.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관객의 심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고요. 꼭 영화여야만 하고 꼭 소설이어야만 하는 이야기이고 싶습니다.

이런 점에 부합하는 제 글을 꼽자면 ‘런드리,’ 앞서 언급한 매체의 특성과 속도감이 일치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글이라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원래 목적지였던 시나리오보다 짧은 소설이 더 어울리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타인의 마음’입니다. 미처 알 수 없었던 제 개인적 삶의 어떤 의문을 글이 풀어준 케이스예요. 특히 아이에게 말을 하는 듯이 서술되는 (C)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2. 작가 님의 글은 일면 '무성적'인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성별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 거진 없다고 느껴지고,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인물이 여성/남성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그 경계가 모호한 인물, 뭉그러진(?) 인물이 주로 떠올려지는데요. 인물의 구체적인 모양새/성별 이런 것들은 흐릿한 대신 인물의 시선과 감상/사유가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글을 쓸 때 의도하는 부분일까요? (글을 쓸 때 인물의 상을 어떻게 설정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의도한 부분입니다. 이것 역시 영화를 찍을 때 하던 고민이 소설에 옮겨 온 건데요. 저는 여성이고 여성의 시선에서 글을 쓰는 데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작가 자신이나 캐릭터의 성별이 드러나는 순간 문체부터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게 과연 어떤 사람의 말을 듣는 데에 도움이 되는 정보일까? 라는 생각으로부터 의도된 장치예요. 특별히 제가 쓰는 이야기들에 불필요한 정보라서 배제된 것들도 있고요. 영화에서는 무조건 어떤 형태를 가진 인물이 등장해야 하기에 작업이 어렵다면 소설에서는 너무나 간단하게 뺄 수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어떤 인물을 그릴 때나 어떤 사람의 입을 빌려 말을 할 때 아예 이미지적으로 배제하고 쓰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상상한 이미지와 그가 던지는 단서의 조합이 스스로 전형적이라고 느껴질 경우 그 이미지를 깨는 문장을 넣어버리곤 합니다. 처음 착상할 때는 인물보다는 어떤 사유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삶은 다른 곳에’의 경우 여전히 정해진 인물의 나이나 성별, 생김새 같은 게 없거든요. 그냥 사람 형태를 한 어떤 모양으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반면 ‘타인의 마음’처럼 어떤 명확한 사람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 적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대부분 추측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꼭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결국 무성적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3. 글을 쓰는 행위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작가 님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썼는데, 명확히 ‘이거다!’ 할만한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쓰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 돌아올 곳이 있다는 안도감, 예술가로 살고 싶은 욕망, 나만 창작하고 있지 않을 때 오는 패배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작업을 이어 나갑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는 제 작품의 열렬한 팬이고, 그래서 이 작가가 계속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왜 너무 매력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인데 10년에 한 번 겨우 내거나 중간에 그만둬 버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요. 그러면 사실 메이킹 필름이든 일기 모음집이든 보고 싶은 팬 입장에선 큰 손해거든요. 제가 지금 쓰는 것들이 좀 마음에 안 들어도 이전에 잘했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작가로서 인생을 좀 멀리 보는 편이에요. 이렇게 허황하게나마 소망하는 미래의 제 모습이 지금의 저를 굴리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4. 최근에 본 다른 매체(시/영화/공연 등)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이 있나요?

최근에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래퍼런스로 참고했던 영화인데요. 1965년 작 프랑스 영화인 행복Le Bonheur입니다. 평소 불륜 영화를 좋아하는데 아름다운 60년대의 풍경 속에 매우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라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불륜을 하는 두 사람이 가만히 누워 서로를 쳐다보거나 몸을 만지거나 누워있는 것들을 클로즈업 컷으로 담아낸 장면인데요. 그럴 때 사람이 아주 충만하면서도 또 공허한 마음이 들잖아요. 그 순간을 간단하고 예술적으로 포착해 냈더라고요. 감독은 아그네스 바르다Agnès Barda인데 2019년에 별세했네요.

이것도 래퍼런스 찾다가 발견한 사진 작업인데요. Klara Källström & Thobias Fäldt라는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듀오고요. KK+TF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2018년부터 작업한 것들을 볼 수 있어요. 단편적 디지털 소비 행태에 치명타를 받은 분야 중 하나가 사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요즘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 그걸 오히려 이용해 수백 장을 작업해 버리더라고요.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정말 수백 장의 사진이 계속 계속 쏟아져 나와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요.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것 뿐 아니라 전시 환경을 꾸미고 보여주는 것까지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하이라이트 조명을 이용해 공허함을 표현하는 작업 자체도 단순하면서 힘이 있었고요. 현대의 사진작가들이 어떻게 이 척박한 작업 환경을 뚫고 나갈지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5. 앞으로 창작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현재는 친구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어요.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저와 함께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인데요. 타이틀이 될 두 곡에 어울리는 스타일리쉬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글로는 아직 주간 묘사의 마감을 하는데도 벅차서 큰 계획은 없지만, 우선 주간 묘사를 통해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해 둘 생각이 있고요. 괜찮게 쓰인 글이나 쓸만한 소재가 있다면 활용해서 1년 안에 두 번째 장편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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