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주간 묘사 제 40호]

방승현 짧은 소설

2024.02.28 | 조회 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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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상미라는 애가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 단짝친구라 이름 붙여도 좋을 관계였다. 친구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무엇보다 그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를 일이 생길 때마다—그런 촌스러운 이름은 부를 일이 거의 없는데도 가끔씩 그럴 일이 생긴다—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낀다. 내가 그를 ‘상미야’ 이렇게 불렀던가 아니면 ‘상미’ 이렇게 불렀던가. 그에게도 성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왜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 그가 주로 어떻게 머리를 묶고 어떤 모양으로 뛰었었나. 머릿 속에 뚜렷하지 않은 것들을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버린다. 직업병인가. 학생들이 쓴 에세이들을 뒤적이며 나는 생각한다. 이런 나이가 되어서도 학교에 다니게 될 거라곤 그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를 오후 쯤에 드리우는 뒷뜰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해치우는 점심식사는 언제나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혼자 먹는 모습을 최대한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운동장에도 애들이 너무 많고 교실에 있기는 답답하고 그럴 때 나는 급식실 뒷편에 있는 오르막길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느낄 때면 해가 모퉁이를 따라서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만이 볼만한 풍경이었다. 대학에서 선생으로 있으면서도 그런 아이들을 가끔 본다. 내가 그런 아이였어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지 아니면 정말 그런 애들이 많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동정심을 갖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생각한다. 그 때 급식실 뒷편에 앉아 있는 나를 누군가 보았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분명 나의 하나뿐인 단짝임에 틀림이 없다고. 그 애가 전학을 간 지 오래고 나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니까 상미라는 애가 있었다. 가난하고, 꼬질꼬질하고,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애. 굴다리를 지나 둔베미에 살던 애. 짓궂은 애들 몇명이서 현장 체험 학습을 땡땡이 치고 괴담을 증명한답시고 상미의 집으로 향하던 날. 나는 그곳에 없었는데도 그 광경을 본 듯이 알고 있다. 낡은 농기구 같은 것들과 검붉은 다라이, 카세트 테이프, 옷장에 붙어 있던 한글 놀이판. 나는 그런 집에도 사람이 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린 애가 그런 환경에서 살 것이라고는. 학교에서 내노라하는 애들도 이내 겁을 먹고 도망치고 말았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상미는 마치 귀신 들린 집에 사는 양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 때 걔의 표정이 어땠나. 아마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설정해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 곧 전학을 가고 그 자리를 어떤 남자애가 차지해 버렸는데, 주인공은 그 남자애에게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었지. 남자애는 주인공의 마음도 모르고 옆반 여자애랑 사귀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난다. 주인공은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사를 가려고 짐 정리를 하던 중 발견한 수많은 이면지에 쓰인 이야기들을 발견한 시점부터이다. 주인공은 글을 조금 더 쓰다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글을 읽고 채점을 하는 교사가 된다. 그리고 이전에 차마 끝내지 못했던 글들을 마치 진짜 있었던 일인양 몽롱하게 떠올리면서 헷갈리는 것을 취미처럼 즐기게 된다. 만약에 내가 그 글을 채점하게 된다면 어떻게 고쳐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주인공이나 상미를 진짜라고 믿게 될까.

 

  학교가 일찍 끝나 할 일이 없는 두 친구는 그들의 아지트로 향한다. 20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 층이 코 앞에 보이는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 공원. 노인들이 가끔 조깅을 하러 다니지만 계단이 많아 자주 오르지는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학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주공아파트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현관문과 베란다문을 열어둔 채 바람을 맞고, 놀이터에서 다른 학교 애들과 서슴없이 어울린다. 지난 번에는 친구가 싸온 구운 고구마를 나누어 먹었다. 두 친구는 시간이 너무 많아 달력을 찢어 그 뒤에 그림을 그리고 각자를 상징하는 캐릭터 같은 것도 만들어 이야기를 짓는다. 한 친구의 캐릭터는 물리치료사다. 물리치료사가 뭐냐고 물으면 친구는 허리나 발이 아픈 사람을 전문적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공원에 올라오지 못하는 노인들이나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혹은 가난해서 온 몸이 매일매일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리고 너는 글을 잘 쓰니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널리 알리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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