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공원 벤치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늦은 저녁에 그는 장을 보다가 함께 사는 연인에게 산책을 하고 가겠다 문자를 보내고서 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그는 벤치에 누웠다가 앉기를 반복했다. 잠깐 걸어서 저수지가 있는 다리 쪽을 향해 걷다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벤치를 오고 가고 그러기도 했다. 그가 벤치에 있는 동안 공원에서 마주친 사람은 셋, 또는 넷. 그들 모두 벤치가 있는 길목을 걸어와 벤치를 지나쳐 벤치로부터 멀어졌다. 아무도 공원에 있는 벤치를 벤치에 있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사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금 공원은 깜깜하고 고요하다. 그는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는 대신 벤치로부터 몸을 일으킨다. 공원 저편의 커다란 시계탑이 보인다. 그가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면 간신히 시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민다. 그가 내밀 수 있는 만큼 고개를 내밀고 오래 본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공원 벤치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함께 사는 연인과 이곳에서의 생활을 생각했다. 그는 연인과 함께하기 위해 수개월 전에 낯선 타지로 이사를 했다. 일도 그만둔 채로 그랬다. 연인을 너무 사랑한다거나 어떤 확신이 있다거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거나 혹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거나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답답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어느 때고 명치 언저리부터 목구멍까지 뭐가 꽉 찬 것처럼 답답해서 그래야만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멀리 도망을 쳐도 하루 종일 연인과 함께여도 그는 똑같이 답답하다. 속이 터질 것 같아서 정말 속이 답답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는 이제 아무 데나 머리를 쿵쿵 받아버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답답했던 속이 괜찮아진다. 오늘도 그랬다. 그는 연인과 함께 있는 집에서 침대맡에 주저앉아 침대 프레임 모서리에 이마를 쿵쿵 아주 세게 받아버렸다. 뭐 때문에 그랬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았고, 당시 연인은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가 있는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연인은 아마 그렇게 집 밖을 나서고 산책을 하러 갔을 것이다. 연인은 자주 그런다. 그러다 몇 시간이 지나면 연인은 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문자로 보낸다. 그러면 그가 장을 보고 음식을 요리해 준비하면 된다. 연인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함께 식사를 하면 된다. 그렇게 조용한 사과를 주고받으면 그날에 있었던 모든 일화가 적당한 것으로 무마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자정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그와 연인 사이에 아무런 연락이 오가지 않는다. 여전히 벤치에 누워 있는 그는 연인의 마지막 표정을 떠올리다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살살 만져본다. 이마가 봉긋하게 부풀어 있다. 이내 그는 이마에 손바닥을 대었다가 꾹 누른다.
그는 이제 등받이가 있는 벤치보다 등받이가 없는 벤치가 눕기에 더 편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는 등받이가 없는 벤치에 누워야 하늘이 더 잘 보인다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똑똑히 기억해 두려 한다. 그가 기억하려 애쓰는 일이 공원에 있는 이 벤치의 사실일 때, 그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오늘 그의 연인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이것저것 떨어뜨리고 방금 잼이 들어있는 병을 떨어뜨려서 또 깨트렸어. 안에 있던 잼이 엉망으로 터져 나왔고 내 글씨체도 엉망이다. 때마침 공원 저편 저수지가 있는 쪽에서 풍덩 무언가가 빠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그는 몸을 일으켜 저수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쭉 내민다. 조용하고 아주 고요했다가, 이내 다시 풍덩 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두 번째 소리가 저수지에 빠지는 소리인지 저수지에서 빠져나오는 소리인지 가물해한다. 아직도 연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는 오늘 이곳에서 연인을 기다렸다가 연인을 만난다면 등받이가 없는 벤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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