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즐거움 보다는 침묵과 고통에 무게가 더 실려있다. 인생은 보통 시간의 축적으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올라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경험으로 치환되어 하나의 다채로운 사람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고양이를 놓아줘'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으로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이야기를 살짝 해보자면 (등장인물의 이름과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한 쌍의 부부가 있고 그들은 서로에게 칼 끝을 겨누고 있는 상태이다. 언제든 찔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가까이,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듯 했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를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랑과 미안함, 자세한 이유는 그들의 세계에서만 알 수 있지만 언젠가 우리도 느껴봤을 감정이었을 테다. 당장 우리 곁에 있는 연인과 마주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부부는 여느 계기로 인해 꽉 막힌 틈 사이로 약간의 공기가 통하는 것을 느꼈고 이를 놓치지 않았다. 더 많은 공기를 느끼기 위해 조심스럽지만 거침없이 틈을 벌려갔고 끝끝내 나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까 옛날의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잊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현실을 다시 살아간다.
영화는 잔잔하고 긴 호흡의 장면들로 진행 됐다. 영상 중간엔 말없이 걷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에 대한 궁금증이 있던 찰나에 GV(Guest Visit)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관객이 질문을 했다. 걷는 장면이 자주 나왔던 이유와 주변으로 초록색이 많았던 이유 (실제로 영상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자연과 가까웠다). 다이스케 감독은 말했다. "영상미에 관해 걷는 것이 자연과 어울렸기 때문에, 걷는 것 자체로 의미가 부여된다, 그 순간에는 어떤 의미없는 대화도 이유가 충분히 생긴다." 그랬다. 우리는 종종 고요 또는 침묵에 대항할 힘이 없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침묵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아무 말 없이 걸을 때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같은 속도와 발걸음, 같은 곳으로 닿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사랑. 그 사랑은 곧 침묵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침묵이 존재하고 그 고요함 덕에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고양이를 놓아줘' 라는 제목은 기억의 불확실함 또는 내 안에 얽힌 불안한 과거를 놓길 바라는 마음에 짓게 됐다고 한다. 고양이를 빼고 많은 단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누구에겐 사랑이 될 수 있고 현재의 나, 어제 있던 일 또는 미처 본인의 힘이 닿지 못했던 일까지.. 참으로 다양한 일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고양이를 놓고 싶은 것일까? 내가 두고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분명 손에 쥔 욕심을 버려야만 이 작은 병에서 손이 빠질 수 있을텐데 여전히 내게는 아쉬운 것들이 많다. 그래서 손에 병을 끼운 채 오늘을 또 살아간다. 나의 손에는 참으로 많은 상처가 있지만 이 상처를 통해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고 내일의 내가 되어갈 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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