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슨레터 x 🎶 음이온 라디오 - 당신의 '최애'가 찾는 그래픽 디자이너 '정해리' 님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윌슨레터 시즌2는 하박국의 음이온 라디오와 컬래버레이션으로, '함께 하는 마음, 성장하는 관계'라는 주제로 서울라이브와 차우진의 tmi.fm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인디 음악 신 구성원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이 시리즈의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실리카겔, 한정인, 공중그늘 등과 작업한 그래픽 디자이너 '정해리' 님 편 입니다.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기 위한 요령을 알고 싶다면 꼭 살펴 보세요.

🏐 윌슨레터 X 🎶 음이온 라디오 '함께 하는 마음, 성장하는 관계'의 모든 에피소드는 애플, 스포티파이, 유튜브, 팟빵 팟캐스트 플랫폼에서 하루 일찍 풀 버전으로, 윌슨레터에서 축약된 텍스트 버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애플 팟캐스트

스포티파이 (삽입곡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팟캐스트

팟빵

🕵🏻‍♂️ 하박국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정해리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 수퍼샐러드스터프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정해리입니다. 음악 관련 일도 하고, 미술품 전시 관련, 책 디자인, 아이덴티티 같은 그래픽 디자인이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제가 실리카겔 멤버에게 질문지를 보냈어요. 본인이 실리카겔에서 악기 담당 말고 실제로 어떤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는지. 본인을 사물이나 생명체 같은 걸로 비유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본인이 생각하는 실리카겔의 이미지는 어떻고 외부에서는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는지.

🕵🏻‍♂️ 하박국

해리 님은 인디 음악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 정해리

인디 음악 쪽에서는 앨범 아트워크, 피지컬 디자인, 공연 포스터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MD 같은 것도 만들었고요. 작년부터는 뮤직비디오 관련 작업을 했어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기억하는 프로젝트는 새소년, 실리카겔, 파란노을도 LP 발매를 같이했었고, 공중그늘 작업도 했어요. 재작년엔 처음으로 일본 음악가들과도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음악 쪽 디자인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하고 있었어요. 음악도 클래식부터 현대 음악, 재즈, 노이즈, 익스페리멘털, 힙합, 록 장르 구분 별로 없이 듣는 편이거든요. 

제가 인디 음악을 좋아했을 때는 정말 어렸을 때, 쌈싸페 있었을 때 있죠. 그때 인디 음악 많이 들었어요. 전자양의 원맨 밴드 시절, 아마추어 증폭기, 몽구스 이런 팀 좋아했어요. 그러다 2010년쯤 트위터를 하게 되며, 트윗애드온즈라는 사이트와 트위터가 연동돼 해시태그로 이뤄진 커뮤니티가 있었거든요. 그때 슈게이징, 얼터너티브, 포스트록, 사이키델릭, 라디오헤드 국내 소환당 이런 게 있었어요. 거기 가입해 활동하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유난히 밴드 음악의 장르를 쪼개 당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저는 장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밴드 음악 듣는 당이라는 당을 창당했어요. 국내외에서 들어보고 좋은 곡이나 아티스트 소개하고 공연 소식도 알려주는 커뮤니티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2013 페이스북이 붐을 타며 사람들이 많이 넘어가고 저도 디자인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좀 소홀했어요.  그 사이 해시태그로 이뤄진 당들이 사라졌고요. 저도 열심히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었고 졸업하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 어쩌다 보니 갑자기 엔터테인먼트사 커리어가 시작됐거든요. YG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다 그다음에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 형식의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는데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해주어서 회사를 옮겼죠. 지금은 회사를 나왔지만 좋은 관계로 계속 협업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인디 음악 관련 일도 많이 하게 됐어요.

🕵🏻‍♂️ 하박국

그간 작업하신 디자인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해요.

🖱️ 정해리

선우정아 님, 코스모스 슈퍼스타였던 한정인, 천미지. 사실 너무 많아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저도 점점 많아지니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에 제가 작업한 음반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놨어요.

🕵🏻‍♂️ 하박국

인디 음악 쪽 작업은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 가면서 하게 되신 건가요?

🖱️ 정해리

그렇죠. 회사 일도 했는데, 제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출간된 작품의 디자인을 보고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그걸 보고 외부 인디 음악가분들이 연락을 주기도 하셔서 음악 작업을 많이 하게 됐어요. 

🕵🏻‍♂️ 하박국

정해리 님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수퍼샐러드스터프인데요. 저도 거기서 발매된 책을 많이 갖고 있고 팬이라 다 모으고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 작업하신 게 너무 많아 모을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까지 작업한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 정해리

제가 무언가를 마음에 든다고 하면 순위를 매기는 느낌이 들어 어렵네요. 그렇게 하지 말고 비교적 최근에 한 작업 중에서, 일본 밴드 사모에도(SAMOEDO)의 첫 정규 앨범 작업을 했어요. 싱글, 정규, CD, 테이프 LP까지 다 시리즈로 작업했고. 실리카겔 심볼 디자인을 작업하며 그 디자인을 처음 공개한 게 'No Pain' 뮤직비디오였거든요. 뮤직비디오 작업을 같이 해 그 두가지가 기억납니다. 

🕵🏻‍♂️ 하박국

'No Pain' 작업하며 실리카겔 멤버들과 뮤직비디오 작업하는 멜트미러 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같이 프로젝트하고 계신 것도 있지 않나요?

🖱️ 정해리

네. 저, 실리카겔 김한주 씨, 멜트미러 님이 모두 포함된 isvn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있는데 거기서 함께 게임 개발을 하기도 합니다.. 그 인연이 시작된 건 'Desert Eagle' 싱글 MD로 TRPG 게임이 나왔잖아요. 그게 처음으로 실리카겔과 같이 작업을 한 거였거든요. 이후로 자연스럽게 실리카겔 일도 같이하게 되고 isvn도 제안받아 하게 됐어요.

🕵🏻‍♂️ 하박국

작업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을까요?

🖱️ 정해리

실리카겔 심볼 만들 때 멤버 건재 씨가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심볼 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하셨거든요. '예? 제가요?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랬는데 너무 멋지고 강력한 심볼 이미지잖아요. 알겠다고 말하고 제 나름대로 시안을 만들어 보냈어요. 그중에 마음속에 믿는 시안이 있었고, 혹시 몰라 끼워 놓은 스케치 시안이 있었거든요. 근데 스케치 중에서 어떤 걸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실리카겔 멤버에게 질문지를 보냈어요. 본인이 실리카겔에서 악기 담당 말고 실제로 어떤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는지. 본인을 사물이나 생명체 같은 걸로 비유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본인이 생각하는 실리카겔의 이미지는 어떻고 외부에서는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는지.

네 가지 질문을 보내드리고 다들 재밌는 대답을 해주셨어요. 그걸 베이스로 네 가지 특성이 다른 회전축을 중심으로 돌아가거나 결합하는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만들고 특별히 크게 반응을 해주진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괜찮은가?' 이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주 씨가 '저질러 버렸습니다' 이러면서 이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심볼을 타투하셨더라고요. 

🕵🏻‍♂️ 하박국

TRPG 게임에서 캐릭터 만들 듯 디자인을 하신 거네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요. 

🖱️ 정해리

에이펙스 트윈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던 거 못 잊을 것 같아요. 사모에도와 함께 한 작업도 재밌었어요. 일본 밴드잖아요. 게다가 멤버분들이 다른 밴드를 하고 계시거나 세션, 프로듀서 활동하는 분까지 각자 개성이 또렷한 네 분이 하는 팀이거든요. 저도 약간 부담이 있어 처음에 물어봤어요. 왜 저를 선택했느냐 물었더니 일본인으로 구성된 밴드이긴 하지만 동아시아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디자이너와 하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책을 2018년부터 다이칸야마 츠타야와 몇몇 서점에서 입고를 해갔는데 그러면서 일본에서 저를 알아보는 분도 생기고, 감사하게 긴자 매거진에서 인터뷰도 했거든요. 밴드의 리더인 스가와라 씨가 그런 걸 통해 알고 있어 연락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네 가지 색깔을 딱 정해서 썼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자기들은 그 색으로 소통하겠다. 그래서 분명히 다른 색을 유기적인 선으로 표현했어요. 디자이너로서 좋았던 부분은 이분들이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플라스틱을 안 쓰고 싶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부분 말고 케이스나 패키지는 다 종이로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테이프는 오카드 방식을 사용했는데 오카드는 플라스틱 케이스 없이 테이프가 바로 종이 슬립에 끼워지거든요. 그래서 부클릿을 생략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그게 아쉬워 구조를 개발했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저렇게 실험하며 가사를 열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런 것도 되게 좋아해 주셨고 생각해 보니 사모에도와 실리카겔 프로젝트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일단 제 디자인을 되게 존중해 주시기도 했고요. 합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힘든 과정 없이 순탄하게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 디자이너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게 해주거나 현실적으로 노동 강도를 줄여주는 방법으로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하박국

일본 음악가와 작업하는 게 국내 작업과 무엇이 다르던가요?

🖱️ 정해리

생각보다 크게 다르진 않아요.

🕵🏻‍♂️ 하박국

디자인료는 원으로 받으셨나요? 엔으로 받았나요? 그때 엔저였나요?

🖱️ 정해리

엔저 때 엔으로 받았습니다. 정말 아쉽더라고요.

🕵🏻‍♂️ 하박국

전에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을 하셨잖아요. 지금 나와 인디 음악가들과 프리랜서로 일할 때 무엇이 다른지 좀 궁금해요.

🖱️ 정해리

YG처럼 대형 케이팝 음악가와 일하는 회사의 경우는 스태프가 굉장히 많아요. 비주얼적인 콘셉트, 의상, 메이크업, 마케팅 이런 것까지 큰 줄기를 아티스트가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만들어 가는 편이죠. 외부에서 저에게 의뢰하는 분은 레이블이 없거나 아니면 있어도 소규모거나 아니면 레이블에서도 음악가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개인 대 개인, 음악가의 정체성 이런 걸 더 반영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 하박국

상업적인 디자인과 인디 음반 디자인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 정해리

저는 그게 꼭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나오는 대형 기획사의 음반과 크게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요. 가장 큰 건 예산 문제인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대형 기획사에서는 그 사진 한 장을 위해 몇십 명의 사람에 거기에 관여하잖아요. 인디 쪽은 그게 안 되는 상황이니까 가능한 상황 안에서 좋아 보이는 걸 만들어야 해요. 결과물도 거기에 맞춰 갈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이 힘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방법을 찾다 보니 어떻게 보면 가끔 난해하게 되기도 하고. 디자이너가 대중적인 걸 제안 했는데 음악가가 더 특별한 걸 원하는 경우도 많아요. 

🕵🏻‍♂️ 하박국

인디 음악가는 예산을 많이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이너와 어떻게 조율하면 좋을까요?

🖱️ 정해리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예산을 많이 안 쓰는 대신 자유도를 많이 주거나. 수정 횟수를 여러 번이 아닌 한 번만 하거나 시안 개수 자체를 줄일 수도 있고요. 디자이너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게 해주거나 현실적으로 노동 강도를 줄여주는 방법으로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하박국

인디 음악가가 그래픽 디자이너와 일하며 어떤 것을 미리 말하면 디자이너가 일할 때 편할까요?

🖱️ 정해리

인디 음악가뿐 아니라 누구라도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의뢰할 때 미리 알려주시면 좋은 부분인데요. 무엇에 쓰일 어떤 디자인 품목이 필요하다는 내용. 그다음에 언제쯤 이게 릴리즈 돼야 하고, 그전에 어떤 홍보를 해야 하니 당신이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된다. 기간에 관한 부분과 그다음에 작업 예산을 물어보는 것도 좋긴 한데, 미리 예산을 알려 주시면 아무래도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조율하면서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고 좀 더 효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죠. 부수적으로 자기가 이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과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주면 일단 디자이너가 그걸 보고 뭔가 바로 떠오를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게 있으면 좋습니다.

💬 최악은 직접 디자이너의 시안을 뜯어 여기저기 배치하며 피드백을 주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식의 방법은 안 좋은 것 같아요.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 같죠. 

🕵🏻‍♂️ 하박국

처음에 작업하며 디자이너와 의견이 부딪칠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친한 디자이너에게 디자이너에게 요구해도 될 것과 아닌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의 디테일을 그냥 이렇게 바꿔 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후 대화하는 게 나아졌어요. 저희가 어떤 것을 요구하고 어떤 건 요구하면 안 될지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 정해리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나 무드 같은 게 명확하고 사운드와 이미지의 연결이 중요하다면 거기에 대해 솔직하고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디테일한 부분, 글자를 몇 포인트로 키워 달라거나 디자인을 직접 하듯이, 이거는 여기 배치하고 이건 저기 배치하고. 글자에 대해서도 이걸 이 폰트로 바꿔 달라고 말하기보다 지금 글자가 이런 분위기인데, 나는 이런 식의 분위기면 좋겠다고 말하면 디자이너가 판단해 그걸 염두에 둬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볼 순 있겠죠. 최악은 직접 디자이너의 시안을 뜯어 여기저기 배치하며 피드백을 주는 분들이 있어요.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건 잘못됐다고 말씀드리니 잘 이해해 주시고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 잘 몰랐다고 많이 사과해주어서 잘 진행이 되긴 했어요. 그런 식의 방법은 안 좋은 것 같아요.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 같죠. 

🕵🏻‍♂️ 하박국

그래도 만약 의견 충돌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음악가 입장에서는 '내가 클라이언트고 갑인데' 같은 몰상식한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 정해리

결국 대화를 통해 어떤 합의점을 찾아야 하죠. 이게 똑같은 얘기를 서로 반복하며 답을 못 찾는 대화가 아니라 얘기를 길게 하다 보면 본질적으로 서로가 어떤 부분을 양보할 수 없는지, 왜 양보할 수 없는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어떨 때는 이 사람의 입장도 저 사람의 입장도 아닌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결국 대화가 답이죠. 진짜 서로 답이 없으면 빠이빠이 해야 하고요. 음악가 입장에서는 자기가 공들여 만든 음악이 소중하고 그걸 자기가 상상한 멋진 패키지로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의견 충돌 자체가 다른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 디자이너도 뭔가를 창작하고 제작하는 사람이니 자기가 생각하는 게 전문가 입장으로서 맞는다고 생각할 테고. 그게 좁혀지지 않는다면 중간에 그냥 이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하박국

어느 디자이너는 자유도를 많이 주는 걸 선호하고, 어떤 디자이너는 명확하게 디렉션을 주는 쪽이 일하기 편하다 하더라고요. 본인은 좀 어떤가요?

🖱️ 정해리

이건 약간 디자이너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명확한 디렉션보다 여러 문답이라 해야 할까요. 음악가가 음악을 통해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지 얘기를 다 듣고 제가 해석하는 것 같아요. 해석하고 나서 디자인 들어가기 전에 저도 물어보죠. 내가 느낀 건 이런 방향인데 이게 맞느냐, 맞지 않더라도 나는 이렇게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거 되게 좋네요.'라고 할 수도 있고요. 저는 디렉션을 너무 주거나 레퍼런스 이미지를 너무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 하박국

본인을 어떤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나요?

🖱️ 정해리

저는 스스로를 딱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 하박국

그럼 어떤 작업이든 다 맡겨도 되나요?

🖱️ 정해리

그건 아니에요.

💬 앨범은 음악이 주인공이 맞아요. 제 디자인은 소스나 치즈 가루 뿌린 거 정도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퍼센티지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래도 딱 맞았을 때 몇백 퍼센트 뛰어넘은 작용을 하기는 하죠. 

🕵🏻‍♂️ 하박국

보통 디자인 작업은 클라이언트가 먼저 자신을 찾아야 이뤄지잖아요. 근데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같이 일하고 싶은 클라이언트가 있고 아닌 이가 있을 텐데요. 혹시 함께 일하고 싶은 클라이언트가 있나요?

🖱️ 정해리

좀 뜬금없는데. 하세가와 하쿠시 씨가 저를 찾으면 좋겠어요. 영국의 워프레코즈 음악가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고 한국에서는 송영남 씨나 지윤해 씨가 생각나네요.

🕵🏻‍♂️ 하박국

음악은 보이지 않잖아요. 그걸 시각화해 디자인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처럼 보이는데, 어디서 실마리를 찾고 어떤 과정으로 디자인하는지 궁금해요.

🖱️ 정해리

충분한 대화에서 힌트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키워드나 힌트.

🕵🏻‍♂️ 하박국

음악가가 음악만 보내고 '마음대로 디자인하세요'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 정해리

그럼 음악 자체를 제가 여러분 듣고 느낀 심상을 표현하려고 해요. 저는 가사를 참고하진 않아요. 음악 자체에서 제가 느끼는 걸 정리해 보는 것 같아요. 텍스트화하고 아니면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들.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 것들을 보고 산책하고 와서 다시 한번 들어보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들어보고 느끼는 바를 이미지로 표현하려고 하죠. 음악을 이루는 요소에 집중하기도 하고요. 또는 듣다가 제 귀에 걸리는 중요한 포인트 사운드가 있을 거 아녜요. 그런 게 특징적이라고 생각된다면 걔네도 같이 집어넣어요.

🕵🏻‍♂️ 하박국

장르 음악의 경우 커버에서 일종의 클리셰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걸 지키려는 편인가요, 깨부수고 싶은 편인가요?

🖱️ 정해리

둘 다 아니에요. 그걸 지키고 깨고 하는 거 자체가 클리셰라고 할까요. 형식적인 양식 스타일을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떨 때는 그런 걸 따라야 더 맛이 사는 앨범도 있을 테고요. 의식적으로 이걸 깨부숴야지 그렇게 접근한 적은 없어요.

🕵🏻‍♂️ 하박국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본인의 역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나요?

🖱️ 정해리

앨범은 음악이 주인공이 맞아요. 제 디자인은 소스나 치즈 가루 뿌린 거 정도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퍼센티지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래도 딱 맞았을 때 몇백 퍼센트 뛰어넘은 작용을 하기는 하죠. 

🕵🏻‍♂️ 하박국

음악을 직접 듣기 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음악가 이름, 제목 그리고 앨범 커버잖아요. 전에 음반을 살 때도 그랬지만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오며 전보다 더 직관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정해리

동의해요. 어떨 때는 음악이 너무 좋은데 커버가 보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요. 스트리밍으로 듣다 보면 커버가 제일 잘 보이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게 화면에 뜨는 게 싫다고 생각한 경우도 있긴 해요. 일본은 아직도 음반을 많이 사잖아요. 음반 디자인을 보고 들어봤는데 너무 좋으면, 비주얼과 사운드가 모두 좋고 너무 잘 맞으면 좀 흥분되는 게 있죠. 

🕵🏻‍♂️ 하박국

해리 님은 지금까지 작업한 디자인에 대해 대부분 만족하시나요?

🖱️ 정해리

만족하는 것도 있고 만족하지 않는다기보다 조금 아쉬운 앨범은 있죠. 특별히 거기에 대해 생각을 안 했는데 좋은 반응이 있는 경우도 있고. 저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디자인에 대해 별 반응이 없던 때도 있어 반반이라고 해야 하나.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요.

🕵🏻‍♂️ 하박국

본인의 만족도가 더 중요한가요. 사람들의 선호가 더 중요한가요?

🖱️ 정해리

그냥 디자이너로서 제 만족이 중요해요.

💬 좋은 디자인이라는 게 무조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게 아니라, 디자인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 하박국

해리 님께 아쉬움으로 남은 디자인이 있잖아요. 그런 디자인이 나오게 된 이유는 보통 어떤 건가요?

🖱️ 정해리

시간적인 이유가 좀 많은 것 같아요. 충분한 시간이 없고 결정을 빨리 해야 하는데, 중간에 결정을 못 한다거나 어떤 문제가 생겨 빨리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해 수정을 좀 더 못한 경우. 큰 회사와 했던 경우에서는 회사 측에서 갑자기 뭘 바꿔 달라거나 그런 상황도 있었죠.

🕵🏻‍♂️ 하박국

디자인하며 자신만의 원칙이 있나요?

🖱️ 정해리

원칙이라고 하면 좀 무겁고 심각한 느낌인 것 같은데, 일단 맥락 없이 레퍼런스를 따라 해달라고 요청을 받을 때요. 그런 걸 싫어하기도 하고 잘 못하기도 하고 약간 태생적 거부감이라고 해야 하나. 표절을 권유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저도 그런 걸 피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니까요. 그래서 디자인할 때도 바로 디자인으로 뛰어든다기보다 그걸 탐구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음악이나 메시지, 심상 같은 걸 생각하는 시간이 긴 편이에요.

🕵🏻‍♂️ 하박국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디자이너에게 표현하기 쉽지 않잖아요. 소통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레퍼런스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 정해리

이건 제 경우고, 어떤 디자이너는 레퍼런스를 받는 걸 더 선호하기도 하거든요. 따라 하려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된다고요. 저는 레퍼런스를 보여주는 것 자체를 싫어 한다기 보다 레퍼런스를 보여주며 '이것처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보여주는 건 좋습니다.

🕵🏻‍♂️ 하박국

음악가들이 디자인 감각을 키우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하면 좋을까요?

🖱️ 정해리

디자인 감각을 키운다기보다 본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모아보면 공통적인 게 있을 거예요. 자기가 선호하는 디자인의 공통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발견하려면 디자인을 또 유심히 봐야 하잖아요. 그럼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지 않을까요?

🕵🏻‍♂️ 하박국

평소 디자인에 관심을 안 가지고 보다 보면 가끔 이거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저희가 좋은 디자인을 찾기 위해 감식안을 키우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 정해리

좋은 디자인이라는 게 무조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게 아니라, 디자인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고깃집의 메뉴판이 엄청 세련되고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정보가 많은 전문 서적이라면 가독성이 중요할 테고요. 하지만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존재잖아요. 그걸 표현하는 데 가독성이 엄청 좋아야 할지 고민해 볼 수도 있겠죠. 일단 디자인이라는 게 어떤하나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 하박국

최근 AI 디자인 툴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MS의 디자이너, 어도비의 파이어플라이 같은. 저도 좀 써보긴 했는데 아직은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발전하다 보면 일반인이 만들기에 적합한 게 나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AI로 디자인이 가능한 시대, 그래도 그래픽 디자이너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 정해리

AI 친구들이 인간 디자이너를 대체할 만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직 안 들어요. AI는 프롬프트 입력을 해가며 이미지를 생산하잖아요. 우리는 미팅할 때 인간이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까지, 비언어적인 표현도 하고 음악 그 자체에서도 전달받을 수 있죠. 프롬프트의 단어 나열로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더 나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미 있는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잘못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디테일도 덜 다듬어져 있고요. 일단은 사람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 저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프로세스에도 관심을 좀 가져보고. 그렇게 하면 무례한 상황이 좀 덜 벌어지지 않을까요?

🕵🏻‍♂️ 하박국

인디 음악가와 디자이너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요?

🖱️ 정해리

결국 다른 직업군에 대한 이해라고 해야 하나. 존중 같은 걸 내면에 갖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프로세스에도 관심을 좀 가져보고. 그렇게 하면 무례한 상황이 좀 덜 벌어지지 않을까요?

🕵🏻‍♂️ 하박국

저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인디 음악 레이블 댈러스 레푸스(Dalas Repus)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정해리

프로젝트라고 해야 할지, 레이블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약 4년 정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있었어요. 근데 좀 지치더라고요. 음악이 한 번 발매 될 때 SNS 플랫폼에서 단계별로 공개되잖아요. 처음에는 뭔지 모를 무드만 담은 물음표를 남기는 티저의 티저 같은 게 나오고, 이후 피드 분할해 도배하면서 콘셉트 사진 같은 게 올라오고, 그 후 음원 입힌 티저 올라오고, 트랙 리스트 올라오고, D-며칠 이러며 올라오고 그러다 오후 6시가 되면 공개하겠죠. 공개까지 가는 길목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너무 형식화되어 있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고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앨범 디자인 외에 해야 할 과업이 굉장히 많아져요. 어떨 때는 디자인이 실체를 갖지도 못했는데 '언제 뭐가 나옵니다' 공표해 불안감에 떨게 되기도 하고요. 

왜 꼭 음악을 낼 때 그렇게 기대감을 부풀리며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까 생각하다 음악가분들이 사운드클라우드에 데모나 리믹스 같은 거 올리잖아요. 공식 발매와 다르게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툭. 그 방식이 주는 좋은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제 댈러스에 있는 척하며 훼이크 레이블을 만들었어요. 음악가가 아닌 분도 있고, 취미로 그냥 만든 분도 있고, 다른 이름을 쓴 분도 있고. 그분들의 음원을 그냥 툭 던져 놓는 식으로 업로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여기서의 협상이라고 할까요? 저도 그렇게 툭 올리는 것처럼 디자인에 대단한 힘을 쏟는 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받은 음원을 듣고 간단하게 편안하게 마음 가는 대로 디자인을 한다. 저는 그들의 음악에 관여하지 않고 그들도 저의 디자인에 관여하지 않는 게 이 레이블의 규칙입니다.

🕵🏻‍♂️ 하박국

해리 님과 같이 일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 정해리

언제든지 연락하시면 됩니다.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

🕵🏻‍♂️ 하박국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연락을 준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정해리

여태까지 그랬던 적은 없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 좋을 겁니다.

🕵🏻‍♂️ 하박국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정해리

디자인 관련 팟캐스트가 아니라 음악 쪽에서 저를 불러주셨다는 점이 좀 특별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에피소드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 정해리 님의 포트폴리오와 콘택트 포인트를 알고 싶다면 👇🏻

🏐 윌슨레터 x 🎶 음이온 라디오는 총 12화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최근 OTT 프로그램에서 시즌을 나눠 방영하는 게 유행이더라고요. 유행에 뒤질 수 없어 🏐 윌슨레터 x 🎶 음이온 라디오도 한 주 쉬어 갑니다. 쉬는 동안 더 좋은 콘텐츠 준비해 오겠습니다. 팟캐스트와 뉴스레터에 좋은 피드백 주는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주변에도 널리 알려 주세요. 그럼 🎶 음이온 라디오는 7월 마지막 날, 🏐 윌슨레터는 8월 첫 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모두 더운 여름날 건강히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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