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슨레터 X 🎶 음이온 라디오 - '요조' 님의 비결 없이 오래 하는 법

윌슨레터 시즌2는 하박국의 음이온 라디오와 컬래버레이션으로, '함께 하는 마음, 성장하는 관계'라는 주제로 서울라이브와 차우진의 tmi.fm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인디 음악 신 구성원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디 음악 신에서 다양한 정체성으로 일해 온 요조 님 편입니다. 처음 '오래 하는 비결'을 듣고 싶다고 섭외를 드리자 '그런 비결은 없다'고 말씀하셨던 요조 님. 함께 마주 앉아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왠지 그 비결을 알 것 같더라고요. 

🏐 윌슨레터 X 🎶 음이온 라디오 '함께 하는 마음, 성장하는 관계'의 모든 에피소드는 애플, 스포티파이, 유튜브, 팟빵 팟캐스트 플랫폼에서 하루 일찍 풀 버전으로, 윌슨레터에서 축약된 텍스트 버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애플 팟캐스트

스포티파이 (삽입곡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팟캐스트

팟빵

🕵🏻‍♂️ 하박국

오늘은 오래 하는 법에 대해 📚요조 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 요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뮤지션이자 작가이기도 하고요. 제주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 하박국

저랑 요조 님과 동갑이에요. 제가 나이 개념이 없는데, 동갑내기 친구들은 좀 관심이 있어요. 저희가 MZ세대의 끝자락인데, 저희 위로 있는 X세대분들은 잘 뭉치는 편인데, 저희는 잘 안 뭉치고 성향도 다르더라고요. 저희 또래가 하는 음악 레이블은 붕가붕가 레코드 같은 곳부터 소프트 록, 테크노 등 성향이 다양하고 서로 안 친해요.

📚 요조

저도 생각해 보니까 음악 하는 친구가 거의 없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81년생 친구는 없는 것 같아요.

🕵🏻‍♂️ 하박국

그리고 저희가 홍대 음악 신에서 활동을 한 시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2002년도에 MDM이라는 잡지에 글을 쓰면서 이 일을 시작했고, 요조 님도 솔로 앨범 나오기 전에 허밍어반스테레오 피쳐링한 것까지 포함하면. 근데 같은 신에서 같은 시기에 활동했어도 저희가 일로 마주친 건 딱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려 인사도 나누고 서로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 요조

동갑이라는 사실부터, 저희가 같은 신에서 서로의 이름과 존재감은 지속해 봐 왔을 텐데 정면으로 마주 보는 순간이 없었다는 게 신기해요. 그래서 저희가 가볍게 앉아 있지만 마음이 그렇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느낌이에요.

🕵🏻‍♂️ 하박국

제가 처음에 섭외할 때 오래 음악 한 음악가로서 어떻게 오래 했는지 비결을 알려달라고 요청을 드렸어요. 근데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 그런 비결이 없어, 섭외에 응할 수 없다고 말씀하셔 제가 비결이 없는 것도 비결이라고 말씀드렸거든요.

📚 요조

진짜 하루 종일 생각을 해봤거든요. 오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게 과연 있나? 있다면 무엇일까? 계속 고민 해봤는데 진짜 없는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면 이거 말고 할 게 없었다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재주가 많았다면 나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해 본 다음에 음악은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방향을 틀어 다른 직업이나 다른 가능성을 타진해 봤을 텐데,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해 온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 하박국

저도 누가 레이블 10년 넘게 하는 비결을 물으면 '그만두지를 못했다'라고 답변 하거든요.

📚 요조

그런 분이 많이 계실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면 중간에 음악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가진 분을 보면 쉽게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했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슬기로웠다. 재능이 많고, 똑똑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거죠.

🕵🏻‍♂️ 하박국

그렇죠. 삶에는 정말 다양한 갈래가 있으니까.

💬 저도 2, 30대 때 선배 음악가들이 조언을 해줬는데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이 있는데 아웃풋이 확실히 옛날과는 달라요. 음악이나 글뿐 아니라 매사가 그래요.

🕵🏻‍♂️ 하박국

저희가 오늘 나름 큰 주제를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해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 요조

하루를 어떻게 보낸다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스케줄이 있느냐 없느냐, 날씨가 어떻냐에 따라 그때그때 많이 달라요. 스케줄이 있으면 그 스케줄에 맞춰 지내고. 스케줄도 없고 평범한 날씨일 때 어떻게 지내나 생각해 보면 저는 보통 낮 12시가 되기 전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집 안 청소하고 제가 고양이 두 마리와 같이 지내고 있는데, 화장실 청소 밥 주고 물 주고 고양이 털 제거하고 그런 집안일. 아침에는 간단하게 하는 운동이나 아침 식사. 그런 걸 12시 전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어요. 왜냐면 시간이 12시를 넘어가면 속도가 빨라지더라고요. 12시 전에는 느긋하게 흐르는 것 같은데 12시가 넘어가면 순식간에 하루가 진행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12시 전에 해야 하는 일을 다 맞춰 놓고 12시가 넘어가서 작업도 하고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그러면 그 쉬는 시간을 12시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가진다든지, 약속이 있어도 그때 이후에 잡고. 그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려는 것 같아요. 

🕵🏻‍♂️ 하박국

요조 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이 있나요?

📚 요조

네 있어요. 누구에게나 조금 절박한 사안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먹는 일이 진짜 중요해서, 예를 들어 떡볶이를 먹으러 갔는데 너무 맛이 없으면 누군가는 대수로이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맛있는 일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런 떡볶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화나고 인정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게 중요한 일은, 하루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뒹굴할 수도 있는데 제가 그걸 약간 못 견뎌요. 소파에 누워 핸드폰 보고, TV 보고 보낼 수 있는데 저는 그걸 못 견디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 날은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해서 그렇게 보내지 않으려 해요. 

🕵🏻‍♂️ 하박국

매일 이것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는 일이 있나요?

📚 요조

요가가 됐든 달리기가 됐든 하다못해 맨몸 스쾃이 됐든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고, 뭘 먹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어요. 안 그러면 계속 안 먹거든요. 

🕵🏻‍♂️ 하박국

강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사소한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일상이 생각보다 금세 무너지게 되는 것 같아요.

📚 요조

그 공포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우울감에 사로잡히면 너무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식사나 움직이는 일을 조금도 할 수 없게 돼서, 역으로 제가 먹고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같아요. 건강에도 좋지 않겠지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겁이 있어 억지로라도 환경에 내모는 성향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 하박국

정신, 마음, 몸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을 쓰게 되셨나요?

📚 요조

자신에 관심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약하고 그런 자기 파악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살면서 저를 파악하게 되며 내가 이런 거에 취약하고, 약해질 때, 내가 이런 경향이 있고 이렇게 되면 위험해지는구나. 내가 여기까지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야 하겠구나 파악되고나서부터 이런 경향이 심해진 것 같아요.

🕵🏻‍♂️ 하박국

젊었을 때 그런 걸 미리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많이 후회돼요. 그래서 저도 저희 아티스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런 거 미리미리 해두라고. 근데...

📚 요조

와닿지 않죠.

🕵🏻‍♂️ 하박국

그런 것 같아요.

📚 요조

저도 2, 30대 때 선배 음악가들이 조언을 해줬는데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같이 라디오 진행하던 윤상 선생님께서 저보고 그렇게 빨리 작업을 하라는 거예요. 나이 들면 안 나온다고, 지금 빨리해 놓아라. 그때는 이건 제 페이스고 빨리하고 싶다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내 삶이 있는데, 한 귀로 흘렸는데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이 있는데 아웃풋이 확실히 옛날과는 달라요. 음악이나 글뿐 아니라 매사가 그래요.

🕵🏻‍♂️ 하박국

저는 나이를 먹고 자신을 잘 알게 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확실해지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전보다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 요조

이제 소위 사린다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고, 예전보다 덜 무모해지면서 그게 지혜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답답해지는 거죠. 

🕵🏻‍♂️ 하박국

하루를 마무리하며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나요?

📚 요조

그때그때 다른데 고민이 많은 하루를 보냈을 때는... 제가 종교가 있다 없는 사람이 됐거든요. 그리운 것 중 하나가 기도하는 거예요. 의심 없이 믿었던 신이 존재했을 때는 신에게 기도를 열심히 하고 그게 저를 지탱해 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기도할 대상이 사라졌으니까요. 기도는 너무 하고 싶은데 대상은 없고 어떻게 하지 하다가 최근에는 제 주변의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기도하고 있어요.

🕵🏻‍♂️ 하박국

저도 이름은 하박국이지만 종교가 없거든요. 저도 기도를 안 드리다, 최근에 드리고 있어요. 누구에게 드린다기보다는, 전에는 '화이팅!' 같은 말도 싫어했거든요. 하면 하는 거지 기운 같은 게 어디 있다고. 근데 최근에는 다른 이에게 '화이팅'이라고 말을 건넨다든가 제가 갖고 있는 뜻을 빈다든가, 이런 게 의식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요조

신이 있나 없나를 떠나 기원한다는 사실이 귀중한 일 같아요. 사람이 기도하거나 소망할 때 어떤 에너지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고 그 에너지가 전달될 때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기도를 좀 많이 하고 싶고 기왕이면 좀 확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어 세상을 먼저 떠난 존재를 소환해 그들에게 기도드리고 있어요. 

🕵🏻‍♂️ 하박국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하루와 지금의 하루는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 요조

커다랗게 보면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는 무서운 게 없고, 지금은 무서운 게 많아졌어요.

💬예술가라는 직업도 다른 여타의 직업인들처럼 성실해야 하고요. 정신과 몸도 잘 관리해야 하고. 예술가라고 해서 일반적인 상황을 뛰어넘는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 하박국

요조 님이 처음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였나요?

📚 요조

허밍어반스테레오, 이지린 씨를 아르바이트하던 재즈바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어느 날 지린 씨가 '너 노래 잘해?'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나 노래방 가면 8, 90점 나와' 그랬더니 가이드 하나만 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마침 이지린 씨가 사는 집도 집에서 가까워 슬리퍼 끌고 가 '이렇게 부르면 된다'고 해서 두 곡을 불렀어요. 그때 부른 노래가 '샐러드 기념일'과 '바나나 쉐이크'였는데 이지린 씨가 그걸 그대로 앨범을 낸 거죠. 저는 그냥 가이드라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데뷔하게 됐어요. 

🕵🏻‍♂️ 하박국

강제로 데뷔하셨군요.

📚 요조

저는 그 사실을 앨범이 나오고 알게 됐어요. 제가 던킨도너츠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는데, 옆 맥도날드 매장에서 제가 부른 노래가 나오고 있는 거예요. 그 앞에 교복을 입은 학생이 그 노래를 듣고 '이 노래 진짜 좋지 않아? 목소리 너무 예쁘지?' 이려먼서 칭찬하더라고요. 아, 이거 내가 부른 건데, 내가 부른 노래가 누군가를 이렇게 기분 좋게 할 수 있구나, 그 학생들 붙잡고 이거 내가 불렀다고 자랑도 하고 싶고 그런 여러 마음을 느끼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고 비장하게 했던 것 같아요.

🕵🏻‍♂️ 하박국

그때 노래들이 싸이월드 BGM으로 인기를 많이 끌었는데, 최근에는 스페드 업 버전이 틱톡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더라고요.

📚 요조

저도 얼마 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 하박국

20년 넘게 '바나나 쉐이크'가 사랑받고 많은 이가 좋아해 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기분이 참 이상할 것 같아요.

📚 요조

그렇죠. 그때는 이지린 씨가 좀 야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는데, 지나고 나서는 너무 고맙고 이지린 씨 덕분에 내가 음악을 하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의 인생의 방향을 만들어 준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 지금도 가끔 안부 묻고 지내고 있어요.  

🕵🏻‍♂️ 하박국

어쩌다 보니 음악가가 되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 비교해 어땠나요?

📚 요조

음악가에게 신비감이나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음악 하는 사람이 되어 주변에 음악 하는 동료를 보거나, 오랫동안 동경했던 음악가 선배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경우도 생기니까. 음악가라는 직업도 다른 직업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예술가라는 직업도 다른 여타의 직업인들처럼 성실해야 하고요. 정신과 몸도 잘 관리해야 하고. 예술가라고 해서 일반적인 상황을 뛰어넘는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 하박국

본인의 직업을 음악가라고 스스로 의식하게 된 건 언제쯤인가요?

📚 요조

두 번째 앨범 <나의 쓸모>를 낼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아까 무서움이 없다 이제는 있다고 얘기했던 것도 <나의 쓸모> 때부터 시작된 감정인 것 같아요.

🕵🏻‍♂️ 하박국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 요조

제가 불안이 좀 큰 편이에요. 무서움이 불안과 결부된 감정이잖아요. 두렵고 불안할 때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지, 도망치지 않고 대면하고, 그 후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내가 덜 불안해질 수 있을지 대안을 발견하려고 해요. 잘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반고흐의 <영혼의 편지>라는 책이 있어요. 동생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인데, 그 책을 보면 정말 대단한 구절이 나와요. 20대 때는 발견을 못 했는데 얼마 전 또 읽으면서 발견했어요. 고흐는 생전에 인정을 못 받은 화가잖아요. 그런데도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열정적으로 예술을 했단 말이죠. 그게 의아했는데 책 속에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나는 내가 뭘 그려야 되는지 안다'라고 적혀 있어요. 그 힘으로 반 고흐는 계속 그린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반 고흐처럼 내가 뭘 부르고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상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저는 반대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는 것. 이 노래가 괜찮은 곡일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지 안 받을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저는 계속 모르쇠로 나가는 거죠. 작업하고 있으면 제 안의 또 다른 수진이가 튀어나와 아는 척을 하거든요. '그거 좀 별로인 것 같은데' 그러면 '넌 조용히 해. 넌 아무것도 몰라' 스스로에게 아는 척하지 말라고 말하며 계속 그냥 하는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반 고흐에게 배운 불안에 대처하는 처세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글을 쓸 때도, 앨범을 만들 때도. 이게 세상에 나와 어떤 노래가 되고 어떤 책이 될지 전 아무것도 모르고 앞으로 그렇게 모른 채로 계속 작업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하박국

음악을 하며 가장 힘든 건 그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 업무를 주고 사업을 하면 재무적 목표 같은 게 생기잖아요. 근데 음악가는 누가 옆에서 채찍질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마감을 만들고 지키고 내놓아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걸 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 요조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어느 정도하고 하면 할수록 더 나은 결론이 나오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언제나 불안하고 결과가 좋을지 안 좋을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안한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제 확실한 일에 조금 의지하며 음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달리기처럼 육체를 써서 하는 일은 하는 만큼 결과물이 정비례해 좋게 나오잖아요. 그런 일을 하며 정신 건강을 도모하고요. 채찍질하는 존재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제 경우는 없는 것 같진 않아요. 홍달님 매니저가 '언니 올해는 앨범 내야 해' 다 계산하고 있어요. 지난 앨범 낸 지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지금쯤은 뭐 나와야 해. 이런 식으로 옆에서 짜요. 진짜 생각해 보면 저의 지난 작업물이 제가 자진해서 내놓은 게 거의 없고요. 거의 달님이 옆에서 짜주면 하기 싫어 징징거리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하긴 해요. 글도 편집자분께서 마감을 정해 주시니까 그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마감을 맞추기 위해 쓰기도 하고요. 재촉하는 존재가 있다는 게 굉장히 고마워요.

💬 음악가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상상해 보는 순간이 있다면 그 노래들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 하박국

지금까지 음악을 하며 전환점이 된 일이 있을까요?

📚 요조

가장 최근에 느낀 전환점은, 저는 보컬로 데뷔해 싱어송라이터로 앨범을 내고 활동하고 있잖아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만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책방도 하고, 작가로서도 활동하면서 전처럼 음악가의 삶에 임할 수 없게 된 거죠. 근데 그때 누가 옆에서 '네가 다 해야 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다 이번 EP <이름들>을 낼 때 이능룡 씨와 함께 작업했는데, 제가 내주었으면 하는 색깔을 그가 생각하고 리드하고 저는 그에 발맞춰 작업을 했어요. 근데 앨범을 내고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이 '너무 너답다'였어요. 그게 저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노랫말을 다 쓰기도 했고 제가 만든 노래도 있지만, 전반적인 만듦새는 이능룡 씨가 리드해 만든 작품인데 그게 나답다고 하니까요. 다시 말하면 남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파악하고 만드는 게 내가 만드는 것보다 더 나다울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덕분에 내가 만들어야 나다운 걸 할 수 있겠다는 고집을 완전히 내려놨어요. 그러다 보니 앞으로가 되게 기대되더라고요. 더 의지하고 싶어요.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어떤 면을 타인이 볼 수 있다고 아는 사실에서 오는 기대가 생겼어요. 

🕵🏻‍♂️ 하박국

그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요조 님은 협업할 상대를 찾는 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 요조

일단 제가 그 음악가의 팬심이 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껴야 작업물이 어색하지 않게 나오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을 때도 그 사람이 사진을 잘 찍는 것보다는 이 사람이 나와 얼마나 편안한 관계이냐가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렌즈 앞에서 긴장을 안 하게 되니까요. 저는 예술의 어떤 적이 있다면 긴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긴장, 불안. 그게 다 저를 망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밴드 공연할 때도 세션들과의 내가 얼마나 편안한 관계인가를 우선순위에 둬요.

🕵🏻‍♂️ 하박국

인생을 살며 자신이 이렇게 살아서 너무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과 불만이라는 부분이 있다면요?

📚 요조

날씨에 휘둘리며 살아도 되는 게 참 좋아요. 제가 날씨에 휘둘리는 성격이라는 게 단점이라고 느낀 적도 있거든요. 근데 지금은 이 직업을 갖고 있어 얼마든지 휘둘릴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불만인 건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투정일 수도 있는 게, 요즘은 모든 사람이 다 불확실성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서요. 언제나 결과를 알 수 없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며 살아야 하는 이 삶의 어떤 기본 성격에 관한 투덜거림이 늘 있는 것 같아요.

🕵🏻‍♂️ 하박국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내놔도 반응이 없을 수 있고, 그냥 생각 없이 냈는데도 반응이 좋을 수 있고. 이런 게 이 일의 힘든 점인 것 같아요.

📚 요조

그러니 매 순간을 그냥 대충대충 할 수도 없고 매 순간을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것도 너무 미련한 짓처럼 여겨지고. 중용을 지키고 자신을 컨트롤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내야 하나 약간 현타 비슷한 감정이 오는 것 같아요.

🕵🏻‍♂️ 하박국

반응이 크게 오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제 음악이 잘 가닿고 있다는 마음만 들어도 안정이 되는데 가끔 그런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정말 불안한 것 같아요.

📚 요조

맞아요. 그리고 요즘 SNS가 너무 빠르잖아요. 거기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고. 성향이 거기에 맞으면 좋은데 어떤 사람은 SNS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게 기질에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 요즘은 신곡을 내면 챌린지를 하기도 하는데, 저는 쑥스러워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이 세상에서 나는 음악을 대중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안 되는 건가, 같은 부정적인 생각까지 들 때도 있어요.

🕵🏻‍♂️ 하박국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있어 오르락 내리락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계속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까 그걸 기반으로 계속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오래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요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얼마 전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기 직업이 되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래서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예상했는데, '저는 더 힘을 빼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예상한 대답과 다르더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자기가 생각할 때 진짜 중요한 일은 힘을 주면 줄수록 못하는 것 같다고, 무리하고 기대하는 것도 커지고 그래서 그르치게 되는 것 같다고. 나는 이 일이 의미 있고 중요해서 오래 할 거니까 힘을 빼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임해야겠다고 생각한대요. 저는 그게 되게 현명해 보이더라고요. 저 역시 오래 하고 싶어 힘을 더 빼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하박국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 요조

일단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고요. 음악 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열심히 소비하면서 음악에서 들리지 않는 다른 영역의 어떤 삶에 대해서도 시간이 될 때 상상하고 가늠하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지면 그 음악이 더 의미 있고 풍성하게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빠르고 음악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그만큼 빨리 잊히잖아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워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가가 그럴 텐데 앨범을 내면 너무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퍼요. 이게 또 얼마나 빨리 잊히게 될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 오는 슬픔이 있거든요. 음악가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상상해 보는 순간이 있다면 그 노래들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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