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핍진성을 찾아서

매끈함 너머 마음을 흔드는 얼룩들

2026.08.10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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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AI 많이 쓰시나요? 이제 AI 없이 어떻게 살았나 싶은 정도예요. 누구나 멋진 보고서를, 그럴싸한 작품을 뚝딱 만드는 세상이 됐죠. 편리하지만, 한 편으로 점점 피로해지더라고요. 훌륭해 보여도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결과물들을 만날 때가 있어서요. 휘황찬란한 수치와 문장이 가득한데 핵심이 불분명하거나, 현실과 조금 동떨어져 있기도 해요.

점점 문해력과 판단력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쏟아지는 문장 속에서 진짜를 포착하고,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안목이죠. 손은 편리해졌는데 머리는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세상에서 이번 주는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감수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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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사용해요

이번 주 낯선 단어 '핍진성'을 사용한 글을 소개합니다.

※‘핍진성’은 본래 소설이나 영화 속 허구를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개연성을 뜻하는 문학 용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단어를 가져와 일상의 영역에서 써보았습니다.

선뜻 누르지 못했다. SNS 피드에 추천된 영상 하나. 뽀얀 백사장을 배경으로 어느 손 하나. 손가락 마디보다도 작은 네 개의 생명체가 손바닥 위를 구물거리며 기어다녔다. 이름 모를 생명체들은 표면이 투명했고, 아름다운 유리 공예 작품처럼 투명한 표피 밑으로 쨍한 색깔이 비쳤다. 지렁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리고 살짝 웃고 있는 듯한 무늬가 없었다면 유리로 만든 오브제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한 꼬물이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지만 누르지 못했다. 말이 안 되도록 완벽한 귀여움. 분명 깃털만큼 가벼운 손짓을 유도하기 위한 가짜겠지.

누구에게나 마법의 요술봉이 쥐어졌고, 대단한 기술이나 배경지식 없이도 매끈한 결과를 얻는다. 매끈함이 넘칠수록 핍진성을 찾으려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소설 속 인물에게 마음을 주게 되는 건 빈틈 하나 없는 완벽함 때문이 아니다. 가끔이라도 망설이는 눈빛, 불안한 헛기침, 본능적으로 불리함을 피하려는 비겁함 같은 인간적인 흔적들 때문이다. 진짜 삶을 살아봤기에 묻어나는 얼룩과 부족함이, 역설적으로 진짜로 믿게 만드는 핍진성을 완성한다.

요술봉이 많아질수록 마법을 알아보는 눈이 더 필요해진다는 사실이 쓸쓸하다. 만드는 일은 쉬워졌고, 온전히 믿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손바닥 위를 기어다니던 꼬물이들이 진짜였는지 아직도 모른다.

 

 

 

 

 

3천 년을 견딘 핍진성의 문장들

John William Waterhouse - Ulysses and the Sirens(1891)
John William Waterhouse - Ulysses and the Sirens(1891)

〈오디세이아〉에는 외눈박이 거인, 인간을 돼지로 바꾸는 마녀, 노래로 사람을 죽이는 세이렌이 나와요. 그런데 마냥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아요. 

핍진성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뜻하지 않아요. 그 세계의 규칙 안에서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납득되느냐의 문제예요. 고대 그리스인에게 신은 판타지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였어요. 키클롭스가 실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낯선 이를 어떻게 대접하는지,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되찾는지, 서로를 어떻게 알아보는지가 더 현실적인 문제였을 거예요.

이번에 영화로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러 영화관에 가신다면, 한 가지를 기억해 두세요. 신과 괴물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얼마나 진짜처럼 느껴지는가. 〈오디세이아〉가 3,000년을 살아남은 이유는 아마 그 핍진성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낯선 단어 '핍진성'을 일상으로

[👁 눈으로] 스크롤 하다 멈춘 콘텐츠가 있다면, 왜 멈췄는지 한 번 들여다보세요. 완벽해서였나요, 아니면 어딘가 진짜 같아서였나요.

[✍️ 손으로] 요즘 만들거나 하고 있는 것 중, 스스로 가장 핍진성 있다고 느끼는 순간 한 줄 적어보세요. 부족한 부분이어도 괜찮아요.

[🚪 밖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펼쳐보세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에 돌아가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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