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잘 지내셨어요?
저는 2주간 숨을 고르며 <낯선 어휘집>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었어요. '지금의 포맷이 최선일까?', '내가 매주 보내는 글이 구독자님의 일상에 충분한 가치로 닿고 있을까?'
빈 종이에 메모를 적어 내려가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동안 <낯선 어휘집>의 주인공은 독자가 아닌 ‘단어’였다는 사실을요. 그렇다 보니 단어를 소개하기에만 바빴던 것 같아요.
제가 뉴스레터를 시작한 진짜 이유는 단어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낯선 단어를 렌즈 삼아, 구독자님이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었죠. 단어는 주인공이 아니라 준비물일 뿐인 거고요.
그 시작의 확신을 다시 품고 앞으로 조금씩 <낯선 어휘집>을 바꿔 나가려고 합니다. 함께 지켜봐 주실 거죠? 다시 만나 반가워요!

'찬탄'을 처음 만난 곳은 올해 초, 타샤 튜더 전시였어요.
나는 다림질, 세탁, 요리,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아요.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가정주부라고 적어요. 찬탄할 만한 직업이죠.
우리가 흔히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특별하고 눈에 띄는 것들인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기쁨과 가치를 발견하는 자세가 인상 깊어 사진을 찍어두었어요.
✏️ 이렇게 사용해요
K구를 다시 찾은 건 6개월 만이었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자립해 처음 터를 잡은 곳. 감당할 만한 월세와 회사까지 적당한 거리, 그렇다고 번잡하지 않았다. 임대차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K구는 뭐든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희망이었다.
4년을 살다 보니 희망은 일상으로 녹아 더이상 희망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만큼 편해져 대로든 골목이든 헐렁한 차림으로 누볐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신도시로 이사한 뒤, 가끔 약속으로 들르는 K구는 어색했다. 빳빳하게 다린 흰 셔츠에 명품 구두를 신고 방문하는 동네. 호프집 하나 없는 게 자랑거리인 신도시에 익숙해진 눈에, 다시 만난 K구는 온통 낯설었다. 눅눅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쓰레기 투기 금지를 호소하는 현수막, 서로 먼저 눈에 띄겠다고 악을 쓰는 간판들. 예전엔 그저 배경음 같던 풍경들이 자꾸만 시선을 찔렀다. 집으로 가던 골목이 어둡게 느껴졌고, 스쳐 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발걸음에도 괜한 긴장이 스몄다. 오래 품었던 동네였건만, 나는 이방인이 되어 두리번거렸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은 수없이 지나쳤을 길목에 있었다. 주황색 큼직한 간판을 가득 채운 ‘감자탕’이라는 글자. 도로를 향해 난 유리창에는 ‘맷돌 콩국수’, ‘부대찌개’ 같은 어울리지 않는 음식 이름들이 붙어 있어 썩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혼자 그 문을 여는 데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젊은 1인 가구가 빽빽한 동네에서, 나이 지긋한 종업원들은 분주했다. 괜히 잔뜩 의식한 내가 혼자 왔든, 감자탕집에서 콩국수를 시키든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투박한 대접에 담겨 나온 콩국수. 숟가락으로 퍼 올리기도 전에 묵직한 질감이 눈으로 먼저 전해졌다. 숟가락 듬뿍 진득한 콩물을 담아 입에 넣은 순간,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야트막한 찬탄이 터져 나왔다.
고소함이 혀를 짓눌러오는 그 한 숟갈에, 내가 세워두었던 소심한 편견들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감자탕집도, 어울리지 않던 콩국수도, 으슥한 뒷골목도 전부 그대로였다. 변한 건 세상을 재단하려 들던 내 좁다란 시야뿐이었다. 첫 집을 알아보던 날, 뭐든 펼쳐질 것 같던 K구의 하늘을 바라보며 품었던 찬탄을 다시 마음에 담았다.
💥<에디터의 질문> 처음 만났을 때는 찬탄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당연한 것이 되고, 어느 순간에는 낯선 것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한때 경이로웠지만 지금은 익숙함에 묻혀버린 것은 무엇인가요? 다시 바라본다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요?
첫 문장을 향한 찬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제목도, 작가 이름도 모른 채 단 한 줄의 문장만 보고 고르는 책이 있어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판매 중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에요. 상세 페이지에는 각 책의 첫 문장만 적혀 있고, 구매자는 그 문장 하나에 이끌려 번호를 선택해요. 어떤 책인지는 택배를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어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한 권 갖고 싶기도 했고, 궁금해서 구매해 봤어요. 어떤 문장을 골랐는지는 비밀이지만,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도착했어요. 이 문장이 이 책이었구나! 마침 읽고 싶었던 책 중 한 권이 와서 더 놀라웠어요. (참고: 위 스크린샷은 제가 고른 문장이 아닙니다.)
낯선 것과 처음 만나는 순간에 찬탄이 있다고 믿는다면, 시도해보세요. 어떤 문장이 간택당할지, 그리고 어떤 책이 올지. 두 개의 설렘이 한꺼번에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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